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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평 展
2019. 12. 25(수) ▶ 2019. 12. 31(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02-737-6669
국민의 물고기 - 멸치
바다, 대양(大洋)의 거대함과 그 막막함은 짙푸른 색이 더해져 알 수 없는 너머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주로 대륙붕 이내에 서식하며 연안 회유성 어종인 멸치에게도 먼 바다는 미지와 동경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가졌던 그 어떤 갈매기도 하지 못했던 일, 어둠속을 가르는 야간비행을 결국 성공하는 열정이 멸치에게도 있다면, 우린 아마 광활한 대양 한 가운데서 군무를 펼치는 멸치떼를 보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근래에 들어 여성의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분분하다. 지금까지 여성의 성(性)이 생명의 고귀함과 종족의 보전이라는 본연의 정체로 인류문화에 투영된 것 보다는 생존의 현실적 이익을 증명해주는 전리품과 같은 보상과 증거로 더 소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생존의 구조를 지탱하는 질서는 종속을 수반하는 힘과 지배라는 양식을 끌어안고 있다. 정의와 평등, 진정한 자유는 인간 관념에서 출발하는 의식이며 개념이다. 컴퓨터의 CPU나 메모리 제조처럼 발전 예측이 가능한 “무어의 법칙”이나 “2배수의 법칙”과 같은 정량화가 인간의 경험칙에 의거하여 가능한 것과 달리 인간의 정신 양식과 관련된 관념은 정량적 유추를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초극 의지가 관여된 이타적이고 숭고한 희생이라는 현실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전제조건이 따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결국에는 성(性)약탈도 힘과 지배의 양식에 따른 구조적 피해로 귀결이 된다. 멸치가 무리를 지어 유영을 하는 시각적 인상 이면에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밀집대형을 이루어 암수 가릴 것 없이 어느 정도의 불운한 희생을 담보로 약탈자에 대응하는 먹이사슬 내의 위치와 피동적(被動的) 상태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대가족하에서 어린이나 부녀자들, 또는 하인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쓰던 크고 둥근 밥상을 ‘두리반’이라 한다. 원래 원반(圓盤)이라는 전통적인 소반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상다리를 개폐 할 수 있는 소반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두리반이다. 집안의 어른들은 사용하지 않는 두리반은 다리를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재빨리 정리 할 수 있었으므로 서열상 하릴없는 위치에 있던 아녀자들에게는 제격이었던 밥상인 셈이다. 집안에 일이라도 생기면 어른들의 횡포에 대책 없이 나뒹굴던 밥상은 대부분 두리반이고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면서 음식들을 사방에 전쟁터의 잔해들 마냥 흩뿌려 놓던 불쌍한 신세이기도 하였다. 멸치는 생선 구경을 변변히 하지 못했던 산간벽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서민적이다. 두리반에 올려 졌다가 콩자반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내던져진 멸치볶음은 그야말로 국민의 물고기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 해주던 먹거리이며 서민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채수평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들 속 원형들은 강력한 절대왕권을 지닌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를 상징하는 태양도 아니고 완전함을 나타내는 원도 아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거나 혹은 일부만 화면에 잡힐 정도로 커다랗거나 반대로 여럿으로 나누어진 그것은 국민물고기 멸치가 소중한 반찬으로 놓인 소박한 둥근 밥상이며 가끔 불행하게도 힘 있는 자의 발길질에 나뒹구는 두리반이기도 하다.
축제의 불꽃놀이처럼 사방으로 확산하는 화면 속 원을 구성하는 멸치들은 물과 대기를 가리지 않고 유영하거나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포식자의 강력한 공격이 가해진 타격점에서 최대한 벗어나려는 순간으로 밀집대형이 흐트러지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투를 벌이는 이러한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그럴듯하게 아름다운 형상으로 보이기도 하니 멸치에게 있어서 갈매기 조나단의 열정과 꿈은 먼 바다에서 현란하게 군무를 펼치는 것 마냥 요원한 일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에 쓰인 멸치들은 지난 작업들에 쓰인 지점토로 만든 멸치들과 달리 금형을 뜬 플라스틱 소재로 제작되었다.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가 화면을 박차고 나와 공산품 그 자체로 실재하는 셈이다.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시시한 반짝거림을 무시하고 투명한 해파리, 또는 하늘거리는 나비의 섬세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멸치에게서도 느끼고자 투명하거나 약간은 영롱하게 색을 발하는 플라스틱 소재가 주는 느낌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현 시대에 이르러 플라스틱 폐기물이 야기하는 환경공해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이 후로는 자연분해가 되는 신소재로 재료의 성분을 바꿀 것이라 한다.
채수평의 멸아(鱴我)가 말하는 것은...
진은영의 시 [멸치의 아이러니]에서 멸치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작고 반짝이지만 결코 폼 나지 않는 피상적 외양 뒤에 자리한 진정한 대상을 헤쳐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은 경험이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었던 무한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더욱 알게 되었다고 했다.
멸치를 ‘작가적 제의(祭儀)’를 거친 오브제에서 생명의 물음에 대한 기호로 변환하기 까지가 지난 작품들의 여정이라면 이번 전시는 멸치를 모티브로 한 ‘단상(斷想)의 프리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 서문에서 언급했던 - ‘어린왕자’의 별이 어느 별을 특정한 것이 아닌 어린왕자의 별인 것처럼 딱히 어종이 정해지지 않은 작가가 상상한 어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 작가의 멸치는 이번 전시에서 조금 더 작가 자신과 동형화(同型化)되어 해석된 멸치로 나타난다.
아직은 그 ‘동형화’가 구체적인 세련됨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의 ‘멸아(鱴我)’가 외부세계와 대립하거나 흔들리듯 연동(聯動)하는 불안정함을 노출하고 있다. 멸치를 의미하는 멸과 자신을 뜻하는 아의 결합에서 보듯 멸치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보잘 것 없는 존재 전반이기도 하다. 작가 본인이 자신을 어느 정도의 피동적 존재로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작가 자신도 그 정도를 확연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태나 과정이 작가가 ‘멸아’를 해석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함이 진리가 아니다”는 앙리 마티스의 견해에는 진정한 대상에 대한 예술가의 해석이란 보다 더 근원적인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멸아’가 흔들리듯 부유할 때 멸치는 같은 처지의 존재이기도 하고 포식자가 된 작가에게 약탈당하는 피동적 존재이기도 하는 부침을 겪는다. 이번 전시에는 부유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황 속 해석들이 ‘단상의 프리즘’을 거치며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현란한 색들로 작동한다. 힘과 지배의 양식이 관념을 주재하는 사회에 속한 대중은 상위 지배층이 제시하는 종속의 조건들을 대부분 받아들이는데 이는 상위 포식자에 대응하는 멸치의 밀집대형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그럴 듯 해보이지만 사실은 약자의 서글프고 수동적인 ‘군무(群舞)이기도 한 대중 뒤에 자리하고 있는 진정한 대상을 작가는 부유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임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다.
폼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조형적 물음과 관념적 지각에 가려진 실체를 보고자 하는 작업 의지가 단상의 파편들로 확산하는 이번 전시작들은 작가의 의식에 내재된 존재에 대한 고찰이 더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 상 완 (미술평론, 조형예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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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평 | 蔡洙坪 | Chae su pyeong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졸 및 동국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수료
개인전 | 제16회 이즈갤러리(인사동) | 미국 마이애미 | 싱가폴 | 홍콩 | 중국 및 국제아트페어(8회) 및 기획초대전7회
단체전 | 270회 | 2019.청주공예비엔날레(청주시) | 서울인사동국제아트페스티벌 | 남해안남중권문화예술제-gs칼텍스예울마루 | 아트천년-전남일싱가폴호텔아트페어(샹그렐라호텔) | 5인전(가가갤러리) | G옥션작가선정(광양시) | 2018.싱가폴SIAF아트페여(썬택시티) | 홍콩어포터블아트페어(홍콩켄밴션타) | 봄의향연-80인초대전(엑스포아트갤러리) | 한성백제(송파미술제) | 영호남교류전(3.15아트센타) | 아트천년전(순천문화거리일대) | 2017.마이애미아트쇼Scope(마이애미비치) |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초대작가(YIAF-여수엑스포전시장) | 의왕시국제플래카드아트전(의왕시백운호수일대) | 2016한중예술문화교류은천행(은천미술관) | 그리go회원전(광양문화예술회관) | 2015.어포터블아트페어-서울(동대분DDP) | 제4회사대문전(국제전)-전북문화예술회관 | 항저우(카키갤러리-중국) | 베이징울림픽주경기장(센터갤러리) | 2014.기획초대전(도솔갤러리) | ACAF아트페어(예술의전당-한가람) | 제3회사대문전(국제전) | 2013.광양포항교류전(광양문예회관) | 누리무리27정기전(인사아트센타) | 2012-파리루브르국제살롱전
작품소장 | 서울SK본사100호 | 호서대학교 | 전남대박물관 | Tirol Resort | 미술과미평(주) | EDIYA매장 | 가가화랑 | 골드비치리조트 | 나래식품(주) | 광양시
저서 | 정물수채화기법(우람출판사1997) | 채수평작품도록(2017) | 애니카툰기법+이해(2001)
출강 | 세종대학 미술대학강사 | 호서대학교 미술대학강사 |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영상학부 전임겸임교수 | 국립전남대학교 대학원 강사역임
현재 |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회원 | 한국 영상미디어협회 회원 | 한국CDAK디자인협회 회원 | 광양미술협회 지부회장 | 한국미술협회 서양화이사 |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 나혜석미술대전 심사위원 | 전남도전 심사위원 | 전국섬심강미술대전 운영. 대회장역임(2017-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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