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 · 김민희 展

 

Soft Kill

 

 

 

위켄드

 

2019. 12. 20(금) ▶ 2020. 1. 12(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https://weekend-seoul.com

 

 

기억이 없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름이 끊겼다고 하죠. 잘 알려진 알코올의 효능 중 하나입니다. 술을 많이 마신 뒤 정신을 차리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뭔가 떠오른다고 해도 그것들은 순서를 잃고 조각조각 떠다니죠. 기억인지 환각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그러다 머릿속에 없는 지난 시간의 흔적이 몸이나 폰에 남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제 기억의 파편들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냅니다. 그것들은 위태롭게 날아다니며 천천히 살을 에고, 부드럽게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몸서리치면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연스레 손을 뻗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만져보아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미끌미끌 말랑말랑 잡힐듯한 이미지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확실한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헛것으로 흩어집니다. 단서를 찾기 위해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져보고,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까지 거슬러 오릅니다. 머릿속의 손과 몸에 붙은 손을 모두 열심히 움직입니다. 이래서 기억을 더듬는다고 하는가 봅니다.

기억은 이미지를 담아내는 물질인 필름에 비유되곤 합니다. 흩어져 버린 기억들은 평소처럼 롱테이크가 아니라, 짧은 클립들로 쪼개져 있습니다. 더 작은 파편들은 움짤에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말소리도 몇 가지 같은 문장들만 반복적으로 재생됩니다. 어떤 부분은 엄청나게 클로즈업되어 떠오르기도 합니다. 열화된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거나, 필터를 씌운 듯 색깔도 뒤바뀝니다. 심지어 기억의 조각들은 몽타주처럼 이리저리 연결되기도 합니다.

기억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일 때도 있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될 때도 있고,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되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무병장수와 김민희는 사라진 기억을 더듬는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빚어냅니다. 전시장에서는 무빙이미지와 공간 전체를 뒤섞어버리고, 전시와 연동된 웹페이지에서는 뒤죽박죽 쌓여있는 이미지들을 손으로 더듬어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때로는 다시 술에 취하기를 권하기도 하죠. 물리적인 공간과 가상의 공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눈과 손과 귀와 혀의 감각들을 교차하며 그 자리들을 바꾸어 놓습니다.

필름이 끊긴 건 사실 있었던 기억이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이 애초에 기억되지 않은 것이죠. 술에 거나하게 취하면 뇌의 기관이 시공간을 백업하는 기능을 멈추어버립니다. 그렇게 몸에 기입된 시간의 빈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올려진 타임라인 속 포스팅처럼.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공백은 엄청난 불안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공백을 덮어버리려고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빈자리는 그 자체로 우리 세계 전체의 구멍입니다. 풍선에 구멍이 뚫리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빠져나가듯. 단단해 보이는 주체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였는지가 그 작은 공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백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감각하는 것부터 역설적으로 다시 삶은 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글: 권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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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1220-무병장수 · 김민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