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경기 시각예술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生生化化

 

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

 

강호연, 김민정, 라오미, 최윤, 황혜인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19. 12. 12(목) ▶ 2020. 2. 9(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 T.031-99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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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 안테나를 작동시키는 다중세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는 ‘2019 경기 시각예술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生生化化’의 하나로, 《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 전시를 개최한다. ‘생생화화 生生化化’는 경기 예술창작지원 중 시각예술분야에 선정된 작가들의 연례 성과발표전으로, 그동안 경기도미술관과 고양문화재단에서 개최하던 것에 이어, 올해에는 사립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이 합류하여 전시를 기획하고 개최하게 되었다. 화이트블럭이 전시에 참여하는 강호연, 김민정, 라오미, 최윤, 황혜인은 ‘유망작가 창작지원’에 선정되어 제작한 신작을 발표한다.

 

올해 4월, 처음으로 다섯 명의 작가, 강호연, 김민정, 라오미, 최윤, 황혜인을 만났다. 그날 그들은 ‘피카츄’, ‘국내 산업 광고물’, ‘개항도시의 사라진 근대 영화관’, ‘평택에 새로 이주한 미군기지 마을’, ‘지구를 품은 행성계’, ‘영상 매체와 상영 환경의 성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것은 멀고 어느 것은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이것이 펼쳐질 화이트블럭 전시공간을 떠올렸다. 화이트블럭의 각 전시실은 벽과 바닥으로 서로를 구분 지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문 없는 벽, 곳곳의 자연창으로 스미는 채광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같은 공간 구조는 다섯 작가가 관찰한 서로 다른 세계의 시간이 각자의 자리에서 끊이지 않고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9년 경기예술창작지원 시각예술분야에 선정된 24명의 작가 중, 화이트블럭과 함께하게 된 다섯 명의 작가들은 모두 ‘유망작가’ 분야에 선정되었다. 경기문화재단의 시각예술분야 지원사업은 개인전과 작품집 지원을 제외하고 ‘유망작가’와 ‘우수작가’ 트랙으로 나뉜다. 재단의 기준을 따르면, ‘유망’작가의 일차적 조건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1979년 이후 출생자로, 비교적 젊은 작가에 속한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수도권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젊은 시각예술가가 바라본 ‘지금, 여기’의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측 대상의 범위는 미시적이고도 광활하지만, 결국 이를 집합해보면 저마다 피부로 느낀 동시대 상이한 현상들의 교차 지점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다섯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들의 꼬리를 물다 보니 서로 다른 연극이 각자의 무대에서 동시에 상연되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연상되었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그의 저서, 『평행우주』를 통해 멀티플렉스 극장을 언급한다. 그의 논리를 따르면 멀티플렉스형 무대에서는 다른 상영관의 세계는 까맣게 모른 채, 내 무대 위의 세계가 유일하다고 믿는다. 만일 어느 하나의 무대가 붕괴하여 다른 연극판으로 추락하게 되면, 비로소 나의 세계가 유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책에서 멀티플렉스 극장은 우리가 속한 이 우주가 전부가 아니라 별개의 무수한 우주 또한 동시에 어딘가에서 존재한다는 이론, ‘다중우주론’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은유적 소재로 쓰였다. 이번 전시 《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는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관측한 세계들이 하나의 미술관에 모여 동시에 공개되는 것으로, 이와 같은 다중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관측된 각각의 세계 속 시간이 지금도 미술관 밖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 또한 전시를 통해 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 명의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하는 안테나 외에도 여타 안테나를 다른 세계에 세우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창작에 있어 한 작가가 하나의 주제, 하나의 재료만을 파고드는 사례도 있지만, 이곳저곳 다양한 안테나를 세우고 다발적 관심망을 그때그때 포착해 작업하는 작가도 있다. 《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에서 미술관은 무수한 나머지 안테나 또한 작가들의 미공개 우주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플랫폼으로써 설정되었다. 따라서 전시는 ‘무대’가 무너지지 않고서도 다른 상영관의 무대를 상상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제시한다. 전시실을 서로 연결하는 미술관의 통로나 계단, 엘리베이터는 이번에 서로 다른 우주들의 가교가 되어주는 웜홀(Worm Hole)처럼 작동한다.

 

강호연은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우주’의 행성계를 지각하도록 유도한다. 태양계로 거대하게 확장된 강호연의 전시실은 화성< 火 >부터 토성< 土 >까지 다섯 개의 행성 조각으로 채워진다. 이 행성 덩어리의 표면은 욕실 타일이나 나무, 양초, 장판 등의 일상 사물로 덮여있다. 그런가 하면 물을 분사시킴으로써 생명에 필수로 요구되는 물 분자를 촉각화하기도 한다. 관람객은 매달린 행성 조각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재료들과 물이라는 존재를 일상에서와는 다른 감각으로 감지하게 된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는 “작업이 가능한 평생의 시간 동안 지속해서 수행할” 장기적 프로젝트, 의 연장선이다. 강호연은 이 프로젝트에 따라 지금까지 경유해온 전시마다 ‘지구’, ‘태양계 지형도’, ‘소행성지대’라는 개별 컨셉을 설정했다. 이 유기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관람객이 작은 일상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처럼 확장 지각되는 것을 주문한다.

 

강호연의 우주에서 벗어나 미술관의 복도를 따라 수평으로, 그리고 계단을 따라 위 층으로 이동하면 지구의 특정 장소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사라져가는 장소나 역사적 인물에 관심이 많은 라오미는 인천의 ‘미림극장’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다. 미림극장은 1957년 천막 극장으로 시작해 잠시 사라졌다가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재개관한 곳으로, 라오미에게 있어 상징적인 장소다. 최근에는 미림극장과 닮은 일본 요코하마의 ‘잭앤베티극장’과 이를 둘러싼 장소들의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 반경을 넓혔다. < 동시적 환상 >은 라오미가 인천과 요코하마라는 개항도시에서 마주한 산업화의 풍경과 그 주위 서사를 삼면화로 담은 작업이다.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중국의 단둥을 다녀오며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때 접한 풍경 또한 회화 < 상상의 정원의 진짜 두꺼비들을 >에 중첩되었다. 라오미가 인천과 요코하마, 단둥에서 수집한 역사적 서사와 오브제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얽혀 전시장에 구현된다. 대학 졸업 후 영화미술과 무대미술 현장을 접한 라오미는 배경을 조사하고 서사를 구조화하는 작업 방식이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릴 대상을 디지털로 콜라주하여 화면을 구성해보고, 이를 토대로 회화 평면에 옮기는 식이다. 이번 전시 작업도 이 방식을 이어오고 있으나, 최근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예전에는 산수화를 참고하여 풍경을 구상하고 구성했다면, 이제는 직접 만나는 사람과 경험한 것을 토대로 스스로의 풍경을 펼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웜홀을 따라 한국의 작은 마을, 평택시 팽성읍으로 이동한다. 황혜인은 미군기지가 이전하며 변화를 겪은 팽성읍 안정리의 풍경을 관찰한다. 미군 관련 집단이 이주하며 ‘작은 미국’처럼 변한 이 도시의 이야기가 황혜인의 사진에 담겨 공개된다. 사진은 안정리에 살아온 주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는 < 기억과 기록 >, 안정리로 이주해 온 사람과 타지역으로 이사한 사람들의 변화를 담은 < 이주와 정착 >, 그리고 팽성에 급격하게 증가한 미국 이미지를 아카이빙한 < 팽성읍 a.k.a 아메리칸 빌 >과 같이 세 가지의 소주제로 전개된다. 황혜인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안정리 마을에서 그려지고 있는 독특한 ‘이주문화지형도’를 전시장에 가시화한다. 황혜인은 하나의 사진을 위해 작업 대부분의 시간을 안정리에서 보내고, 그 장소의 ‘진짜’라고 할 수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그 마을의 삶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 황혜인의 이번 사진을 얼핏 보면 미국 도시를 연상시키지만, 차근차근 살펴보면 한국적 장치들이 발견되어 낯선 풍경을 자아낸다. 읍면리 단위 작은 마을에 외국인과 외국어가 섞여 있는 풍경과 그들을 위한 각종 상업광고물 또한 생경하다. 황혜인이 그곳에서 보낸 긴 시간의 지층이 사진에 고스란히 녹아기에, 이러한 이질감이 관람객에도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사진은 단 몇 장으로 추려졌지만, 황혜인은 안정리와 관련된 이 프로젝트가 이번 전시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 같다고 말한다.

 

3층에서는 최윤이 관찰한 비교적 동시대의 한국 풍경이 드러난다. 최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자꾸만 눈에 밟히게 되는 기이한 조형들을 포착해오고 있다. 이번에는 특정 만화 캐릭터, 피카츄가 ‘짝퉁’과 같이 아리송한 모습으로 소비되다 못해 변종 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전시장에 공개한다. 1999년 만화영화 ‘포켓몬스터’의 첫 방영과 함께 센세이션처럼 한국에 스며든 피카츄는, 게임과 영화산업에서도 위상을 쌓아왔고, 2017년에는 ‘포켓몬 고(Pok&eacute;mon GO)’의 출시로 속초의 고속버스표를 매진시키는 기이한 풍경까지 벌이며 화제가 되었다. < 노란 귀여움 >은 하나의 캐릭터가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한국 사회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포착한 최윤의 안테나 파장이다. 한편, < 바닥글 > 시리즈는 2000년대 초, 길 위에서 밟고 지나쳤던 흔한 통신 산업의 광고물을 미술로 환기한다. 통신사 대리점은 “초고속”과 “최저가”를 외치며 끊임없이 진화되는 기술과 편리함을 앞다투어 홍보하지만, 이를 위한 광고물은 밟히거나 젖어 하찮게 보이기도 하다. 이는 촌스럽다 못해 ‘공포’스럽다고 언급된 한국 곳곳의 미감들을 다룬 최윤의 2018년 < 공포물 >연작, < 게시판 1, 2, 3 > 그리고 2017년의 < 광고판 1, 2 >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이처럼 최윤은 캐릭터의 일그러진 형태나 찢기고 짓밟힌 광고물 등 아름답지 않은 조형물에 관심을 두고, 시각예술가로서 이러한 기이한 미감에 동하게 되는 마음의 근원을 좇아본다.

 

1층에서는 인간의 중심에서 살짝 빗겨가, 매체 본연의 메커니즘에 집중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김민정은 주로 영상 매체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성질, 그리고 상영 환경과의 관계에 관해 작업해온다. 이번에는 촬영 &#8226; 영사기기의 속성과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미지의 시각성을 탐구한다. 전시장은 김민정이 올해 기록한 제주의 영상 이미지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도록 연출된다. 이번 작품 < “The Red Filter is Withdrawn.” >은 보는 이미지와 보이는 이미지에 관하여 김민정이 던지는 질문을 담았다. 촬영된 제주 이미지는 미국의 실험 영화 감독,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 1936-1984)’의 2012년 퍼포먼스, 와 오버랩된다. 이 퍼포먼스는 ‘(필름) 이미지를 본다는 것’의 환기한 것으로 이번 김민정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김민정이 촬영한 제주 이미지는 보는 이의 망막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프레임을 거치며 보이는 이미지, 혹은 이미지 너머 무언가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 다섯 작가가 공유하는 세계는 서로 다른 장소와 공간으로 나뉠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 또는 환상이라는 상이한 시간성을 드러내며 서로 교차한다. 예컨대 강호연이 가시화하는 행성계와 최윤이 호명한 광고물, 캐릭터는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다. 한편, 라오미와 김민정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몇 가지 재설정을 실행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근대극장의 주변 장소성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라오미의 현재를 거치고, 때로는 환상적 소스가 가미되어 평면에 박제되었다. 과거의 상처를 품은 제주 동굴 밖 바다의 끝없는 움직임은 김민정이 영상에 기록되어 새로운 필터를 덧입고 현재의 무대에 일시적으로 새겨진다. 마지막으로, 황혜인의 사진은 평범했던 일상에 미군기지가 이주하면서 기이한 생활양식과 문화가 자리 잡아가는 ‘변화의 궤적’을 포착한다.

 

이 공간은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세운 안테나에 주목하여, 각자의 관측 과정과 결과의 일부분을 한시적으로 붙잡아 공유한다. 또한, 작가들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존재하여 서로의 세계가 공존하는 것, 그리고 이번에 공개되지 않는 세계들 또한 끊임없이 흐르는 것을 드러낸다. 즉, 《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를 통해 미술관은 ‘작가의 안테나를 작동시키는 다중세계’의 공유지로 기능한다. 이는 국내에서 연간 실행되는 ‘성과 보고전’의 실효성에 관한 의문에 전시가 긍정적 좌표가 되려는 시도이다.

 

(김유빈,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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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1212-다중세계를 향해 작동하는 안테나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