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 초

Omyo Cho

 

- TAXIDERM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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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6(토) ▶ 2019. 11. 30(토)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5길 27 | T.010-2563-7499

 

nslasha.kr

 

 

Dear Thomson1_170x220cm_powder coated and airbrushed steel, airbrushed wood_2019

 

 

TAXIDERMIA

Taxidermy + -ia의 합성어. Taxidermy는 박제, 접미사 -ia는 병이나 특정 상태를 의미한다. 박제는 동물의 사체를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다. 박제는 장식품이자 사치품이다. 산 것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비싼 이상한 현실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것을 등한시하고 죽은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찰나를 이미지화해서 그 순간을 영원히 떠받든다. SNS는 개인의 생활 중 일부만을 영원히 박제하고, 정치도 한순간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박제된 호랑이는 언제나 포효하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와 괴리된 실제의 삶은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음으로 살해당한다. 나는 박제된 이미지만 기억되는 현대 사회를 TAXIDERMIA 라 부른다.

 

이미지는 죽음과 함께 탄생한다. 영웅이 일찍 죽는 것이 아니라, 일찍 죽은 자만이 영웅이 된다. 죽음은 순결을, 삶은 추악함을 남긴다. 이미지는 실체가 사라지는 순간 등장하며, 실체가 사라졌으므로 오히려 변하지 않고 영원히 박제된다.

동물 박제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생동감이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다. 마치 진짜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 껍데기만 가져와 이미지화한 것이 박제다. 박제된 호랑이는 1년 365일 24시간 내내 포효한다. 반면 살아있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순간은 삶의 1%도 되지 않는다. 호랑이는 삶의 대부분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어딘가에 엎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호랑이는 포효하므로 박제된 호랑이는 포효한다. 아니다. 박제된 호랑이가 포효하므로 우리는 호랑이를 포효하는 모습으로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예술도 박제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예술이 현실을 이미지화한 것이라 말한다.  예술 속에 삶의 정수가 녹아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포효하는 것이 호랑이의 정수가 아니듯이 예술도 삶의 정수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삶을 이미지화한다. 사람들은 동물원에 퍼져있는 호랑이가 아니라 보지도 못한 포효하는 야생 호랑이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이데아일 뿐이다. 우리는 삶을 예찬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은 것만이 진정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 글에서 발췌>

 

 

Dear Thomson2_130X190cm_powder coated and airbrushed steel, airbrushed wood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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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

 

개인전 | 2018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시대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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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1026-오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