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화 展

 

반지의 초상肖像

 

 

 

사진위주 류가헌

 

2019. 9. 17(화) ▶ 2019. 9.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106 | T.02-720-2010

 

www.ryugaheon.com

 

 

‘나는 살아있지 않은 것을 돌본다. I선배가 선물로 보내 준 실물크기의 쌍봉낙타를 베란다에서 돌본 지 5년이 넘었다...(중략) 아침마다 낙타 눈알을 닦아주며 그날 낙타가 바라 볼 시야를 마련해주는 일...(중략) 나를 둘러 싼 것은 모두 살아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돌볼 때 이것들에게 말을 걸 때 이것들을 들여다 볼 때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거기에도 있다. 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경화의 사진 <반지의 초상>을 볼 때, 이원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안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냥이와 댕댕이, 꽃과 나무 등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들’에 열광할 때, 누군가의 시선은 ‘살아있지 않은 것’에 머문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도 살아있는 것에 못지않게,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듯이 제 생의 내력을 몸에 새긴다. 이경화의 사진 속 ‘반지’들이 그것이다.

시인이 낙타의 눈알을 닦아주며 그날 낙타가 바라 본 시야를 마련해줄 때, 이경화는 자신의 생의 둘레를 둥글게 감싸 온, 내력이 새겨 진 사물인 여러 숱한 반지들을 사진에 담았다. 엄마의 손가락에 30여 년을 끼워져 있다 이제 자신에게로 온 한 쌍의 은가락지, 주름살 같은 혹은 상채기 같은 흠집들이 가득 찬 그 반지는 작가가 생애 지쳐 흔들릴 때마다 위안을 주는 사물이었다. 임종을 앞 둔 그녀의 아버지가 딸을 잘 부탁한다며 사위에게 건넨, 오랜 세월 아버지의 손가락 관절에 의해 변형된 가느다란 금반지에는 아버지의 세월이 축약되어 담겨 있었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거기에도 ‘내가 있는’ 것이다.

무생물이면서도 제 물성 안에 생을 새긴 ‘반지’들. 착용한 사람의 몸의 일부처럼 그 사람과 세월을 같이 살아온 반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녀는 빛을 비추어 대상의 디테일을 드러내는 ‘라이트페인팅’ 기법을 사용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정도의 작은 빛들을 오랜 시간동안 드로잉 하듯이 반지에 비추고, 셔터를 활짝 열어서 장타임으로 촬영을 한 것이다. 화려하되 생물감이 느껴지지 않는, 익히 보아 온 귀금속 광고 사진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사물의 ‘초상사진’이라고 할 만큼 낯선 반지 사진들이 그렇게 해서 얻어졌다.

사진가는 말한다. “반지에 새겨진 사연들을 되 내이는 긴 시간동안 반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고.

이경화 사진전 <반지의 초상>은 9월 17일부터 2주간 사진위주 류가헌 전시1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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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0917-이경화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