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아트랩 대전

 

김경호 展

 

 

 

이응노 미술관

 

2019. 8. 13(화) ▶ 2019. 8. 31(토)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7 | T.42-611-9821

 

www.leeungnomuseum.or.kr

 

 

김경호의 풍경사진 :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


김주원(미학/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김경호의 사진 프로젝트 ‘The Foggy Night’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밤거리에 초점을 맞춘 풍경사진이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움푹 패인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일명 ‘안개 도시’ 혹은 ‘서부의 파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같은 도시의 애칭은 샌프란시스코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도시 환경과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다시 말해, 샌프란시스코는 자연과 인공이 만들어낸 지형적 특성인 ‘자연으로서의 안개’와 미국의 서부개척 이후 잘 ‘조성된 도시’ 이미지로 대변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Foggy Night’ 시리즈는 풍경사진의 형식을 띠지만 그 풍경은 장소적 선명성이나 구체성을 띠지 않는다. 작가의 유학시절 우연히 발견(?)하게 된 안개 낀 도시의 밤거리라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사진기록이기보다는 도시인/이방인이라는 실존적 현실이 보고 싶었던 환상적 풍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바로크회화의 연극적 형식을 인용하는 듯 보이는 김경호의 사진은 ‘자연’과 ‘인공’, 즉 밤/‘안개’와 거리/‘가로등’이 주요한 기제로 등장하면서 낮과 밤, 사진과 회화, 그리고 실존과 환상의 차원을 오간다.
더욱이, 빛이 없는 안개 낀 도시의 밤은 두터운 무게를 지닌 색채 공간 속에 풍경을 숨기기 마련인데, 가로등 빛 속 풍경은 부분적으로 혹은 환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빛의 내부에는 모던한 건축외벽, 도로 위 승용차, 아스팔트와 주차라인, 핑크색 지붕의 버스 정류장, 나뭇가지 등의 풍경의 부분이 있다. 범위가 한정된 가로등 빛으로 인해 빛의 외부 풍경은 모두 실루엣으로서만 가늠된다. 드러난 빛의 내부/부분과 은폐된 빛의 외부/전체(풍경)은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샌프란시스코라는 특정한 도시 이미지는 발설하지 않는다.
시리즈의 캡션들은 모두 ‘무제(Untitle)’라는 타이틀과 해시번호(#목록 번호), 그리고 제작년도로 표시되고 있음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형/풍경을 대상으로 하는 김경호의 이번 사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무제’라는 타이틀을 붙임으로써 특정한 장소의 장소성을 감추고 중성화 한 채 사진의 제작 년도, 즉 시간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토록 간명한 캡션은 예술적 맥락에서 풍경사진에 붙여지는 이름의 형식에 이반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줄곧 자신의 이번 시리즈가 ‘새로운 지형학 사진’(New Topographics)에 기초한 작업임을 고백해 왔다. 잘 알다시피 1970년대 등장한 ‘새로운 지형학 사진’은 19세기 미국의 서부개척에 대한 탐사사진이자, 기록사진의 성격으로 출발한 ‘지형학적 사진’(Topographic Pictures)과 관련 있다. 성격과 시대가 다른 두 유형의 사진들은 지형/자연을 대상화하고 기록하는 풍경사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지형학적 사진’이 자연을 인간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그 숭고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주목하고 있다면, ‘새로운 지형학 사진’은, 산업화의 가속화와 함께 인간에 의해 점차 개발되고 변형되는 자연과 이로 인해 변모되고 파괴되어진 지형/풍경을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으로 포착해 왔다.
그러고 보면 해안가 물안개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밤풍경을 대상화한 ‘The Foggy Night’시리즈는 작가의 말대로 ‘새로운 지형학 사진’의 형식적 계보에 속한다. 작가의 유학시절 제작된 이 작업들은, 산업화 자본화의 가속에 따른 개발과 변형의 논리 아래 인간에 의해 개조된 인공적 자연이자 지형인 도시의 내부를 탐색하고 그 속성을 살펴보고 있기에. 그러나 김경호의 작업은 1970년대 ‘새로운 지형학 사진’들이 기록해 온 지리적 물리적인 지형의 변화와 폐해의 객관적 중립적 도큐멘트라기보다는 도시인이자 이방인이라는 이중주체인 작가의 도시에 대한 두 개의 다른 시선일 수 있다. 즉 전지구화 자본주의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소외와 욕망이 엄존하는 사회문화 현실의 지형학이자 나아가 심리적 지형학 사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풍경 이미지는 그것이 고상하건 아름답건 장대하건 세속적이건 간에 문화적 가계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취사선택되고 구성된 하나의 텍스트였다.”는 데보라 브라이트(Deborah Bright)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The Foggy Night’의 풍경들은 초월적 자연 풍경사진도 아니고 프로파간다적 기록을 목적한 풍경사진도 아니다. 이 풍경들은 카메라를 든 작가로 대변되는 도시인/이방인을 둘러싼 새로운 지형에 대한 바라보기 이다. 그리고 그 지형의 실재에 대한 탐사이다.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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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09813-김경호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