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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희 展
스페이스나인
2018. 11. 16(금) ▶ 2018. 11. 22(목)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39, 2F | T.02-6398-7253
대학 졸업 후 쭈욱 영화 컨셉 디자이너로 일 했다. 그러다 이제는 내가 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영화 현장을 떠나 문래동에 작은 작업실을 꾸렸다. 그러나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상상들을 글로 옮겨 내는 것은 생각 했던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절해 질 수록 마음이 조급 했고, 잘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어느 한 글자도 가벼운 마음으로 써 내려 갈 수가 없었다. 텅빈 노트를 들여다 보며 멀뚱히 책상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즐겁기는 커녕 곤욕 이였고,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해야만 했다. 현실도피 목적으로 시작된 낙서는 작업실을 구한 후 2년여 간이나 아무 것도 적어 내지 못한 빈 노트를 대신 채우려는 듯 선들이 빼곡 했다. 복잡하고 조밀하게 얽혀 있는 선 들을 보고서 잘 그린 그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오늘은 무언가를 해낸 것만 같아 위안을 얻었고, 이만하면 오늘은 괜찮다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하루종일 종이와 펜을 붙잡고 있어 봐야 어차피 글 이라고는 몇 자 적어 내지도 못 할 텐데, 낙서들은 글자가 있어야 할 자리를 최대한 넓게 남겨 두려고 모퉁이에 자리한다. 그러면 나는 구석으로 내몰린 낙서들을 사진 찍고, 포토샵에서 최대한 중앙으로 한 자리에 모아 출력한다. 그 출력본 위에 무언가를 또 덧그리고, 다시 사진 찍는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 하다보면 여러 날 동안 던져 놓았던 서로 다른 낙서들이 마치 제 자리를 찾은 듯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된다. 다 그려진 그림을 다시 투명 필름에 출력하고, 감광액을 바른 종이 위에 얹어 햇빛을 쪼인다. 그리고 종이가 햇빛에 반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조금 더 기다릴지 아니면 너무 오래 기다린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시간을 죽인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그림을 그리느라 너무 바빠서 오늘도 역시나 시나리오는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는 완벽한 핑계가 만들어 진다. 삶의 조각들이 합쳐져서 내가 되는 것 처럼 내 그림도 여기저기 끄적여 놓은 낙서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 낸 이야기다. 낙서를 끄적일 때에는 어디에 어떻게 배치 되어 어떤 그림을 만들어 낼지 생각하지 않았고, 감광을 하면서도 그 날의 구름의 양 이나 해의 위치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얼마만큼 파랗게 될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나마 죄책감 없이 시간을 죽이는데에 골몰 했을 뿐 이다. 비록 시작은 오늘 나는 아무 것도 ‘안’ 하지는 않았다는 자기 위로 였지만, 그려냄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모든 행위가 꼭 생산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수 있다. 그래서 그저 무엇이든, 꾸준히 시간을 죽이는데에 몰두한다. 그러면 어느새 무언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Hang in there_Cyanotype of Pen drawing shadows_117x91cm_2018
때를 너무 오래 기다리면 벌어지는 일_Cyanotype of Pen drawing shadows_117x91cm_2018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_Cyanotype of Pen drawing shadows_117x80cm_2018
두더지_Cyanotype of Pen drawing shadows_117x91cm_2018
All for one_Cyanotype of Pen drawing shadows_162x11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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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vol.20181116-김두희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