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빛나 展
The place where they were
갤러리 도올
2018. 9. 14(금) ▶ 2018. 9.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 T.02-739-1405
https://www.gallerydoll.com/
밤하늘 언덕 아래서 잠을 청하는 여인과 강아지, 꽃과 나무가 즐비한 동식물의 형태를 생각하면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자연풍경이 되지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검은색으로 처리된 인물 실루엣이 심상치 않다. 루소의 그림에서 여인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고 있지만 이 작가의 인물은 자세만 보여줄 뿐 표정은 알 수 없다. 그냥 아름답다고만 결론지을 수 없는 묘한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형태로 동시대 회화 풍경의 범주에서 하나의 특정한 사건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면 전체로 잘 정돈된 것이 관찰해 남겼다기보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으로 표현된 초현실적 성격이 강하다. 작품마다 밤하늘이 등장하고 원근법 없이 화면 가득 채워진 동식물 형태가 있어 편안함도 있지만 캔버스 안에 또 다른 사각형 하늘과 땅을 구분 짓기의 면분할은 자연스레 남긴 것이 아닌 가상의 공간 또 다른 세계로 이행되는 경계 같은 것이다. 작품마다 균등하게 수를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다시 동식물 뒤로 배경으로 보이는 완만한 경사의 겹침과 페인팅은 붓터치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근접한 대상이 자주 보이는데 가끔 등장하는 인물이란 조형적 요소이다. 인상착의는 알 수 없고 캔버스 전체와 어울리면 누군가 바라보는 듯한 응시가 생겨 화면 안 분위기는 조용하다.
인도유학 시절 매력으로 다가온 미니어처 페인팅 miniature painting은 작가에게 다양한 소재를 제공했다. 작고 화려한 정밀한 세계로 글과 함께 적힌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당시 외롭고 힘들었던 감정들을 달래고 그 안의 장소를 기억한다. 작품에서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으나 불특정의 공간으로 관찰되는 조형요소란 이곳이 있을 법 하나 동시에 허구임을 과거와 현재 간극의 차이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말해준다. 곡선처리가 돋보이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이곳은 명확하지만 동시에 그렇지 못한 편이다. 특히 조형적으로 올라온 화면을 경계 짓는 사각형 그리고 앞쪽으로 대문으로 보이는 형태가 있어 클리셰 같은 성격이 있다. 자연스럽다기보다 인위적인 미가 있다.
오래됨 보다 새것이란 느낌이 강한데 새롭다는 것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점이 강하고 동시대로 연결시키면 자본주의 하에 얻어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로 지역 안 허물고 짓기가 반복되는 현상들로 쉽게 결정짓지 못하는 저마다의 신념과 욕망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반복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도시로서 태어나고 그 안에 문화코드 역시 빠르게 흘러간다. 그 부속물로 본연의 성격보다 용도로서 변화한 가로수는 길가의 들어선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도 잘 닦여진 도로와 건물이 들어섰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로 밤마다 들리는 동물의 울음소리는 직접적 영향 보다 간접적인 막연한 불안감으로 안타까움이 있다. 모호한 경계 장소의 이동으로 정원은 확연하게 무엇을 드러내지 않는 상징적 표상들이 즐비한 추상의 공간이며 붓의 흔적 아닌 완벽한 채움을 자랑하며 패턴처럼 식물은 나열된다. 소재로서 완성된 새로움으로 무장된 공간과 그렇기에 오래되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표현한 축소된 세상으로 가끔 등장하는 인물 표현은 그래서 동작도 표정도 없다. 경쟁사회 맹목적인 욕망보다 갈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앞선다. 이루고 싶지만 이루지 못한 꿈, 동경도 내포된다. 결국 완성된 공간 안 자연풍경은 사실에서 오는 재현보다 지나간 사건들 흔적이 포함되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바탕에 두고 만들어낸 정원이다. 이곳엔 어제와 오늘이 함께 일어나는 진행형의 공간으로 작가 역시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으며 현재 그곳 장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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