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展

LEE, YOUNG-MIN

 

인연 - 인간의 무늬

CAUSES AND CONDITIONS THE DESIGN OF PEOPLE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한국천연염색박물관

 

2018. 8. 15(수) ▶ 2018. 9. 9(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379 | T.061-335-0091

 

 

 

 

나는 이영민이다

주거·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다.

엄밀하게 직시하면 포기가 아니라 거부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위안이며 정신적 승리다.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졸업까지 7년의 시간이었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독립적인 생활인으로서

그림 작업을 이어가려고 동기들과 공동작업실을 꾸려 작업을 하면서 버텼다.

택배기사를 하며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얼마간의 자금을 통해 버텼다.

짬내어 제작한 작품은 내 처지만큼이나 외롭고 심지어는 그로데스크(공포)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는데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지 않았다.

 

숨었다.

방구석 한 귀퉁이 가상의 공간 인터넷 세상이 위로였고 살아있는 힘이었다.

2017년 초여름 사부 몽피를 만났다.

몽피는 사제지간이 아닌 함께 같은 길을 공부하는 도반 (道伴)이기를 원했다.

몽피 사문에서 한달 80만원의 소득을 위해 일했다.

정규직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노예(노동하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선택했다.

주변의 충고와 염려는 개의치 않았다. 가야 할 길이었다.

몽피가 말했다. 작게 벌고 적게 쓰고 그나마 남는 것을 드림정신으로 꾸려 가자고 했다.

‘드림’ 나에겐 생소한 말이었다. 드림=모심=Dream=꿈이었다.

자연과 사람, 세상 얻어먹고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며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베풀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대곡자(代哭者). 인간에 대한 연민과 모든 우주만물의 영혼을 위해 울어주는 자.

그걸 알아가는게 예술가의 길이라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몽피의 주변은 넓고 깊었다.

만난 사람들 중엔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들도 많았고

이 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적인 인물들도 많았다.

잔 심부름하며 곁눈으로 보고 들으며 배웠고, 친견했다.

돌이켜 보니 이름 있는 사람이나 이름 모를 사람 모두가 스승이었다.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모아 그렸다. 어설프고 부끄럽다.

 

이 만큼.

지금 이 자리까지 저를 이해하고 믿어주신. 아버님(김용복). 어머님(김옥영)께

나에겐 이 의미있는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2018. 8. 이영민           

 

 

 

 

 

 

 

 

 

 

 

 

 

 
 

이영민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전공  졸

 

2014~ CHOSUN UNIV 64TH EXHIBITION 조선대학교미술관 | 2015~ 동아리 ‘타래’ 그룹전 ‘감’ 조선대학교미술관 | 2015~ 청년작가 그룹전 ‘[ ]’ 조선대학교 미술관 | 2015~ 동아리 ‘타래’ 그룹전 ‘그림을 읽다’ 장덕도서관 갤러리 | 2016~ 동아리 ‘타래’ 두 번째 정기전 조선대학교 미술관 | 2017~ ‘COVERGENCE - 길을 열다’ 화순 소소미술관 | 2018.7 섬진강문화축제 설치미술 ‘색으로 물들다’ 하동섬진강 송림공원 | 2016-2018 전남 도교육청 지정 마을 예술학교 ‘나주아이’ 강사 전라남도 교육청 | 2015-2018 지리산 행복학교 미술반 교사 | 2017.10 순천만 국가정원 외부 벽화 제작 (순천시) | 2017.11 나주시 노안면 장림마을 벽화제작 (나주시청) | 2017.5 나주시 영산포 근대화거리 벽화제작

 

Email | mongpi6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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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815-이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