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展

 

 더스크

 

 

 

아트선재선터

 

2018. 8. 11(토)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87 | T.02-733-8949

 

https://artsonje.org

  

 

<더스크>는 삶에서 드물게 마주하게 되는 각성의 순간을 기억하고 이를 감각 가능한 형식으로 공유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 특정한 순간을 신체로 재매개하고 이를 다시 음악, 영상, 설치,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의 형식을 빌어 번역하며 그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인 안무로서 구축하기 위한 실험이다.
공연은 8월 11일 토요일 아트선재센터 전시장 2층에서 정오로부터 해가 완전히 지고 난 여덟 시까지 총 여덟 시간 동안 이어진다. 안무가 자신의 움직임과, 사운드 아티스트인 류한길의 소리, 조명 디자이너 노명준이 변환하는 빛이 함께한다. 신체와 소리, 빛은 각각 조, 하, 큐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각각의 행위 단위를 갖고 있고 이의 가능한 경우의 수의 조합을 바탕으로 총 101개의 모듈로 구성한 장면이 하나씩 차례로 시연된다. 조, 하, 큐는 일본의 가무극인 ‘노’의 리듬구조이다. ‘조’는 시작이나 발단을 ‘하’는 파괴 또는 발전을 ‘큐’는 빠름 혹은 절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천천히 점차적으로 빠르게 정점을 향해 가속화하는 리듬적 신체 행위의 패턴을 의미하지만 반드시 시작, 중간, 끝의 선형적인 전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단계들은 서로 순서를 바꿀 수도 있고, 개별 단위의 내부에 무수한 전개 가능성과 미시적인 리듬을 품고 있다. 이 공연은 조, 하, 큐의 원리를 참고하되 신체, 소리, 빛이 조합에 따라 에너지를 증폭시키거나 산란시킬 수도 있는 여러 상황과 관계를 형성한다. 공연 시간동안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관객은 이 중의 특정한 순간만을 마주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조합의 변주를 목격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진되는 신체를 통해 이 구조가 변주되거나 때로는 흩어져 버리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작업은 안무가 자신이 십년 전에 겪었던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 이후, 예기치 않게 멈춰버린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으로 작가는 한 동안 혼돈의 시간을 겪는다. 매일 강가를 걷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해질녘, 작가는 깊고 푸르스름한 시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순간을 경험한다. 미지의 시공간에 혼자 서 있는 듯한 환영의 경험과 그 시공 속의 자신에 대한 깊은 인식이 몸과 기억에 각인되었고, 작가는 지난 십 년간 ‘더스크’라는 주제 아래 그 순간을 지표로 삼아 텍스트, 사진,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이어왔다. 그러나 더스크는 개인의 사적인 초월의 경험 혹은 자각의 인식 과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자신과 신체 외부의 시공간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인식한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과 외부의 시공간과의 상관관계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 중 작가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외부 시공의 동요, 전율됨(trumbling)과 주체를 둘러싼 ‘네거티브 스페이스’에 대한 인식, 이 두 가지를 선택하여 공연, 지면, 화면을 통해 이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구축한 후 이것이 각자에게서 발생할 ‘더스크’ 경험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더스크>는 2011년 뉴욕 라이브 아트에서 쇼케이스 형식으로 먼저 공연되었다. 스토리텔링, 춤, 노래로 구성되었던 이 작업은 3층 전시장에서 영상으로 상연된다. 과거 작업의 기록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기존 작업 기록의 부분적 장면들이 랜덤으로 상영되는 구조를 만들어 각각의 관객에게 고유한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각각의 시간, 각각의 사람마다 자신만의 장면을 보게 된다는 퍼포먼스의 관람의 원리와 특성이 기록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에서도 발생하는 이 공간은 오롯이 한 사람만을 위한 시공간, 즉 ‘더스크’의 시공을 의미한다.
<더스크>의 마지막 장은 지면 위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지난 십 년간 단시(Epigram)의 형식으로 저장해 온 텍스트를 기반으로 디자이너 이경수와 함께 하나의 ‘공연으로써의 책’, ‘책으로써의 공연’을 만든다. 공연예술의 특성과 한계점을 지면의 공간 안에서 실험하고자 하는 이 시도는 페이지의 전환이 장면의 전환이자 동작의 발생이 되는 공연이 된다.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연을 의미하는 이 책은, 공연에 참석하는 관객들에게 추후 우편으로 전달된다.
한국 전통 무용을 배운 안무가 이양희는 전통 무용의 형식에서는 미약했던 ‘안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을 자신의 안무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여기서 더욱 확장하여 안무의 대상과 범위를 움직임에만 국한하지 않고, 글자, 이미지, 공간, 극장, 심지어 관객과 자연 등 자신의 인식을 둘러싼 모든 부분으로 지평을 넓혀 안무의 의미와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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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811-이양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