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아롱 展

 

위안의 시간

 

 

 

성북예술가압장

 

2018. 8. 9(목) ▶ 2018. 9. 2(일)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3길 10

 

https://www.sbculture.or.kr/culture/index.jsp

  

 

채집의 풍경

엄아롱은 채집을 한다. 도시의 한편, 섬과 숲, 그리고 바다에서. 곳곳에서 건져 올린-수집된 물건들은 개별 장소에 대한 작가의 ‘읽기’와 ‘다시 쓰기’ 과정을 거쳐 작품이 된다. 버려지거나 쓸모를 다한 오브제를 업사이클링하고, 미디어를 사물화-재맥락화 하는 그의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감정은 물론, 물건을 수집한 장소와 연동되어 채집된 풍경을 이룬다. 성북문화재단 성북도원에서 기획한 융복합창작캠프 <피치피치파티>의 연계전시로 진행되는 《위안의 시간 (Time of Comfort)》은 ‘어떤 풍경’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엄아롱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현시대가 제공하는 편리함이 아닌, 개인에게 꼭 맞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장소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생각은 작가는 물론, 관객 역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며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가상의 ‘공원’을 형성하게 했다. 이 공원에서는 작가에게 휴식과 위안이 되었던 순간-초록, 바람의 흔들림, 위안을 주는 동물 혹은 사건 등-의 기억을 담아 그동안 선보여왔던 여러 작품들이 함께 소개된다. 자신의 기저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매개체로서 그가 택한 오브제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관객과 마주한다. 따라서 켜켜이 쌓아 올려져 있거나, 나열된 형태로 놓여진 오브제는 그 자체로 공간을 가득 메운 감정 표현이다. 동시에, 작가는 “일회성, 혹은 소수의 전시 이후 작품이 휘발되어 버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며 그의 작품들이 공원에 배치되는 과정을 통해 작품마다 의미가 재발견되길 희망했다.
엄아롱이 설정한 채집의 공원을 걷다 보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물은 물론, 여러 형태의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그의 작업에서 자라난 식물에는 뿌리가 없다. 식물에서 뿌리를 대신하는 것은 작가가 수집하여 재배열하거나 구매한 개별의 오브제이다. 의자, 테이블, 플라스틱 상자와 이동형 거치대까지. 뿌리내리지 않은 식물들은 작가가 택한 사물을 뿌리 삼아 땅을 딛고 서 있거나, 채집한 식물의 기억을 담은 오래된 모니터, 그리고 낱장의 필름을 넘기며 식물의 모습을 투사하는 영사기를 통해 빛을 발한다.
정지된 시간 속 움직임을 가진 식물들은 관객의 개입에 의해 선택되고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공원에 투영된 작가의 사적 기억이 관객의 개별적 경험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제공하며, 쉼의 공간이 되게 한다. 보다 적극적인 관객 참여의 일환으로, 전시 기간 중 성북동 일대를 투어하며 작가와 관객이 함께 식물을 채집하고 재배열의 과정을 거쳐 전시되는 방식을 통해 《위안의 시간》을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여름이 깊어가는 계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와 걸었던 몇몇 길들이 생각난다. 오래되고 낡은,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거기서 마주한, 낯설지만 그리운 풍경을 보며 말보다 앞선 몸의 기억이 일깨우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무용한 것들, 그리고 채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발끝으로 지금을 딛고 있는 엄아롱의 식물과 그가 선택한 오브제가 관객에게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는지. 그가 초대하는 채집의 풍경을 걷자. 그것이 당신에게 적정한 온도이자 위안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글. 안성은 (성북문화재단 성북도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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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809-엄아롱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