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展
Dazzling Shadow_recollect scene
갤러리도스 본관
2018. 8. 8(수) ▶ 2018. 8. 14(화)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https://www.gallerydos.com
찬란한 인생의 순간
특정한 시공간에서 획득한 경험을 저장하여 필요한 상황에 이를 재생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그런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은 놀랍다. 누군가는 하나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고, 또 누군가는 기억을 현재의 나에게 투영시켜 기억 속 과거를 이어나간다. 그만큼 기억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박혀 있으며 때때로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기도 한다. 기억은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기억을 회상하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주희는 예술로 하여금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순간을 우리에게 부여하며 잠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작가가 준 순간을 누리며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려 그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마치 판화 같기도 삽화 같기도 한 박주희의 작품은 상당히 색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먹과 호분 등 동양화 재료를 사용하지만 만들어진 이미지는 동양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여백이 없는 빽빽한 화면 구성이 주를 이루며 서양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아기자기함이 물씬 느껴진다. 화면 안에서는 동양화의 재료들과 서양화의 재료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우러지는데 동양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본인만의 회화적 기법과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어울리기 힘든 재료들이 섞여 나온 결과물은 틀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지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에게 시각적인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작품에 줄곧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이런 이미지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동심과 더 나아가 현재보다 더욱 본능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품 속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잔혹동화를 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연출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림에 밝고 행복한 모습을 그려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어두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다. 동화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모순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욱 위험한 존재이며 공통적으로 자리하는 집의 이미지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처럼 작품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는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박주희는 언제나 세상의 단면만을 바라보지 않으며 양면성을 고찰하는 시선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작가는 그 수많은 낱장의 인생 속에서 우리에게 기억되어지는 장면이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연출해준다. 우리는 작가가 제시한 그 무대 속에 들어가 각자 과거의 순간순간으로 되돌아가 볼 수 있다. 작가가 주는 선물은 어쩌면 잠깐의 추억이 아닌 평생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스스로도 잊고 살았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박주희는 그저 표면적인 그림을 그린 것뿐만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우리의 인생에 다시 한 번 빛을 비춰주며 기억을 상기시켜주는매우 뜻 깊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종종 어떠한 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때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에 작가는 그 가치를 찾는 시간을 우리에게 기꺼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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