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누리 展

 

 CROSSING THE COLOR TIME

 

 

 

갤러리도스 본관

 

2018. 7. 18(수) ▶ 2018. 7. 24(화)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https://www.gallerydos.com

  

 

버려진 것들의 가치

모든 물건은 쓰임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 생산된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수명을 다한 물건들은 다른 물건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물건들은 자연스레 그 가치가 하락하게 되며 쉽게 버려진다. 그러나 사용의 효용성과는 별개로 사람의 손길을 거친 물건들은 각각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똑같은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선택되고 사용되는 과정을 통해 그 물건에는 추억이 깃들고 사용자와의 특별한 교감이 이루어진다. 더 이상 손길을 받지 못하는 물건일지라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져야 하는 이유이다. 허누리는 버려진 것들 위에 남겨진 삶의 흔적들을 발견해나가는 행위를 시작으로 그들의 가치를 재조명해나가며 잊혀진 기억들을 하나 둘 불러낸다.
일정 기간의 사용을 끝으로 필요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물건은 쓰레기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는다.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지만 작가는 버려진 것들이 정말 가치 없는 것들인지 사유하고 우리에게 되묻는다. 어떤 형태로든 사용자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는 물건들을 쓰레기라고 명명해버린다면 지나온 삶은 물론 더 나아가 자신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허누리는 쓰고 버려진 물건들을 선택하고 수집하여 이를 전시공간에 놓음으로써 누군가의 삶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의 흔적을 읽어나간다. 이처럼 잊혀진 기억들을 되찾아줄 수 있다는 점이 작가의 작품이 지닌 특별한 힘이다.
작가에게 있어 버려진 물건을 토대로 과거의 흔적을 찾고 다시 기억해내는 행위는 사라져 버린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버려진 것들이 쌓이고 쌓여 그 형체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지만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작업들 중에서 하수구 덮개로 보이는 설치작업이 눈에 띈다. 하수구 덮개 사이사이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세계는 현재와는 다른 세계이지만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는 아니다. 하수구가 그 자리에 존재하고 이를 받아들일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그곳에서 기억들의 흔적들로 가득 찬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이처럼 물건들이 지닌 사용 가치는 하락했을지라도 그 물건을 통해 잊혀진 삶의 모습들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가치를 지닌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잠시 흐릿해질 수 있지만 삶의 흔적이란 쉽게 지워지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은 때로는 낡아져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현재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인생 일부를 같이 보내며 과거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특별한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수집해 놓은 버려진 것들을 토대로 그 물건이 품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유추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버려진 물건을 통해 현재와는 다른 시공간에 분명 존재하였던 잃어버린 세계를 마주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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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718-허누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