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규 展

 

"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 "

 

 

 

KSD갤러리

 

2018. 7. 4(수) ▶ 2018. 8. 14(화)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4길 23 | T.02-3774-3314

 

https://www.ksdgallery.kr

 

 

감각, 번역, 알고리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전시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은 송민규가 기획한 전시 3부작 <SF 드로잉 3부작 SF Drawing Trilogy>(2016~2018)의 마지막 섹션에 해당한다. 작가에 따르면 SF 드로잉이란 영화나 소설에서 환상, 상상의 장면을 위해 사용하는 그래픽, 특수 효과에 기대어 오늘날의 풍경을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 편집하여 추상으로 위장하는 작업을 이른다. 지난 3년간 진행해온 전시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이 전시는 시리즈라는 틀 안에서 계획되었기에 일차적으로 전작과의 연장선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송민규는 그간 풍경을 다루어 왔다.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그는 결이 다른 풍경을 중첩시키고 이를 본인 나름의 상징 기호로 표현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전시 3부작 중 제1편이라 할 수 있는 <수영장 끝에 대서양>(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2016)전은 작가가 경험한 일상의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누군가와의 만남 등 일상의 소소한 경험-사건을 문구로 표현하고 각 단어를 추상적인 시각 기호로 옮기는 실험을 시도했다. 추상적인 기호를 덧입은 풍경은 재현적이라기보다는 기하학적인 패턴과 유기적인 형상이 어우러진 불투명한 외관을 띤다. 한편 100장에 이르는 그림은 당시 훈련과 연습을 거듭했던 작가의 수영 배우기의 풍경이자 수영 연습과도 같이 반복했던 시각 기호로의 번역 훈련의 풍경이기도 하다.
2017년에 개최된 전시 <낮보다 환한>(스페이스 캔)에서는 밤 풍경이 펼쳐졌다. 칠흑 같은 검은색을 배경으로 배열된 점, 선, 면의 조합은 추상화로 보이지만 각 요소마다 분명한 지시 대상을 갖는 풍경을 구현한다. 작가가 경기창작센터에 머무는 동안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인천공항으로 선회하는 비행기의 궤적, 대부도의 인공위성, 인천항의 조명, 야구 경기에서 야구공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작가 자신만의 기준인 수치 계산을 토대로 한 상징 기호로 \'번역\'함으로써 대상을 향한 직접적인 시각적 지시성은 차단되며 풍경은 검은 장막 위에서 새롭게 재편된다. 동시에 이 풍경은 사회적 풍경을 표상한다. 부조리한 권력의 탐욕이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작가의 눈에는 \'암흑기\'와 다름없던 2016, 2017년 당시 한국 사회의 풍경이 어두운 밤하늘 풍경과 포개진다. 어지러운 세상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착잡한 심경이 그래픽과도 같은 정교한 짜임새와 붓질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매끄러운 표면, 간결한 형태로 번안되면서 이질감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처럼 송민규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풍경은 주변 세계의 풍경과 작가 개인의 삶 또는 시대의 풍경이 교차되는 와중에 자신의 속내를 투영하는 다층적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데, 작가가 고안한 고유의 상징 기호로 번역된 까닭이다. 표층(겉 이미지)과 심층(의미, 내용)으로 구성되며, 보여주되 드러내지는 않는 어법을 구사하는 그의 작품은 위장과 은폐, 노출이 교차되는 꽤나 복잡다단한 풍경을 펼쳐 놓으며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체계를 구축한다.
전시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이 보여주는 작품들 역시 중첩의 풍경이라는 점에서는 전작의 노선을 따른다. 작품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이미지는 주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포르노그래피, 광고, 영화 이미지 및 사물의 이미지다. 작가는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를 결합하는데,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의 이미지 트레이스(Image Trace) 기법의 도움을 빌려 벡터 이미지로 변환한다. 컴퓨터 스크린 상에 이미지를 띄워놓고 래스터 방식에서 벡터 방식으로 전환하는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픽셀의 재현 논리에서 수학 방정식의 수치의 논리로,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 위상으로 이동하며 대개의 경우 디테일의 측면에서 핍진성을 잃는다. 재현성이 훼손된 이미지 위에 작가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는 손 가는 대로, 다시 말해 \'감\'대로 벡터 이미지 위에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며 매만진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미지를 조작함에 따라 사실적인 재현과는 더욱 멀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컴퓨터 화면 속 이미지를 종이 위에 물감으로 옮김으로써 작품을 갈무리한다.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천 이미지와의 시각적 유사성을 결여하지만 작가 고유의 상징 기호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며 자유롭고 즉흥적인 결정을 따른다는 점에 있어서 전작과는 다르다. 다만 구사하는 조형 언어는 외관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작가가 짧지 않은 기간 작업을 이어오면서 상징 기호들을 체화한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는 여러 차례 예고했던 대로1 이번 전시에서는 내러티브를 소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포르노그래피, 광고, 영화 이미지 등 작가가 여러 갈래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은 꽤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는 이미지의 내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미지에는 이야기가 없을뿐더러 함께 결합한 이미지 사이에도 개연성이나 상관관계가 부재한다. \'금속과 설탕\'처럼 무관한 것들을 무작위로 한데 합침으로써 내러티브 없음, 무의미성이 한 번 더 강조된다. 정리해 보자면 이미지는 의미로부터 벗겨 낸 표피일 뿐이고 작가는 표면을 자의적으로 매만지는 작업을 할 뿐이다. 마음대로 그리기가 목표라면 수고스럽게 이미지를 수집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그리면 될 것을 왜 작가는 굳이 기존 이미지(레디메이드 이미지)를 수집하고 재구성하여 다시 그리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작가의 오랜 문제의식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내러티브, 촌철살인, 이면을 \'콕\' 찔러주는 은유나 비유 같은 장치들을 갖춘 작업이 \'좋은\' 작업이라고 학습 받아왔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그는 그 가르침을 꽤나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왔다…그렇게 거창한 무언가를 주입해야만 하는 것일까. 촌철살인적인 그 무엇이 없다 하더라도, 이면을 짚어 주는 그 무엇이 없다 하더라도 \'좋은\' 작품일 수는 없는 것인가.\"2 오래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속을 비워낸 <금속과 설탕> 연작에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태여 이야기가 있는 이미지를 가져와 그 이야기를 지워낼 때 작가에게는 다른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미술을 공부할 때 금어였던 \'느낌\'을 담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그저 느낌을 표현한 작품은 개념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설명될 수 없으며 설득력 없는 것으로 터부시 되었지만 만약 감각을 설명 가능하도록 옮겨주는 알고리즘을 찾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3 작가가 주변 세상에서 박리한 껍데기 이미지들은 그가 받아왔던 교육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던 \'의미\'가 부재하는 풍경을 이루는 동시에 작가의 감각의 풍경이 펼쳐지는 화면이다. 형태와 색을 구사하는 작가의 조형 감각을 비롯해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편집 감각, 주변 환경으로부터 유발되는 정신, 심리적 반응 감각 등이 주눅 들지 않고 표출된다. 작가는 걸림돌과 같은 의미를 표방하지 않고 혹은 의미에 구속되지 않고 감각을 온전히 시각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체계를 구한다. 때문에 의미(내용)를 갖는 이미지를 가져와 의미 작용을 불식시키는 길항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금속과 설탕> 연작은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전작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표리부동의 체계를 구축했다면 이 연작에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표리일체의 체계를 구축한다.
우리는 작품을 외부 세계로 끄집어내는 데 익숙하다. 대개 작품의 외연을 확장하고 여러 겹의 의미로 작품을 두텁게 감싸는 독법을 따른다. 송민규는 거꾸로 그 두터운 겹들을 뚫고 외부 세계를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가 감각으로 소화하며 오직 이미지로서만 발화할 수 있는 언어 체계를 모색한다. 독해하는 텍스트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보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각 알고리즘의 설계자인 것이다. 이미지가 오롯이 이미지가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탐구하는 그의 도전에 건투를 빈다.
주은정(독립기획)


1. 최정윤, \"시각 매뉴얼을 따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수행자: 작가 송민규 인터뷰\", 『퀀텀점프 2016』(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2016.7.19 &#8211; 8.15) 전시도록, p. 73.
이성휘, \"회화, 기호, 내러티브\", 『낮보다 환한』(스페이스 캔, 2017.8.24 - 9.9)
송민규 개인전 전시도록, p. 59.
2. 주은정, \"갑옷을 벗어 던진 후의 고해성사\", 『작계: 알레고리』(아트라운지 디방, 2012.6.1-6.22) 송민규 개인전 전시도록, p. 2.
3. 작가와의 대화(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1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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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704-송민규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