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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展
" After The Rush Hour "
갤러리가비
2018. 6. 27(수) ▶ 2018. 7. 11(수)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69 2층 | T.02-735-1036
www.gallerygabi.com
주, 야간으로 쉴 새 없이 가동되는 산업현장에서 나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낮을 보내고 모두가 떠난 저녁이 될 즈음 그림을 그린다.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은 개인의 미학적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더불어 생계비를 벌기 위한 노동자로서의 의무, 의식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것은 같은 하루이지만 다른 두 개의 시공간에 사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퇴근길을 비추는 운전석의 헤드라이트는 모든 사물이 명백하게 드러난 낮 시간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 속 대상들을 조명한다. 이를테면 가로수, 담벼락,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 같은…….그것들은 무대의 막이 오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기자를 무대에 오르기 전엔 볼 수 없는 것처럼 같은 공간에 있으나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있어서 인공의 조명 빛을 이용하여 대상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은 창이 없어 낮에도 조명을 밝혀야 할 정도로 컴컴한 사무실 벽에 '창'을 만들어 보려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밤, 낮 없이 가동되는 공장의 기계소리처럼 낮과 밤의 경계를 허무는 것 같기도 했고,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질적 느낌들을 하나의 새로운 인상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하게 하였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공간과 대상은 나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느슨한 매개로서 현재의 순간만을 지각하게 한다. 그것이 밤인지, 낮인지 혹은 그 경계선의 시간 위에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거리의 네온사인은 환락의 밤을, 주택가에 켜진 불빛은 누군가가 돌아갈 안식처란 것을 연상시키곤 한다. 이러한 빛의 메타포는 다시 일몰 끝에 찾아올 암흑과 같이 섬광처럼 빗겨간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빛의 몽환적 이미지에 대한 존재 규명은 어쩌면 백지 위의 쓰이는 독백처럼 개인적인 감상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스포트라이트는 가물거리며 타오르는 촛불의 빛과 달리 잠정적 지속성을 가지며 연속적인 시간의 생성, 이미지의 계속된 연상 작용을 부른다. 다가올 어둠 앞에 사라지지 않는 일몰의 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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