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모양 展

 

다이애나밴드

 

 

 

문화비축기지 T4

 

2018. 6. 23(토) ▶ 2018. 7. 29(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증산로 87 | T.02-376-8410

 

parks.seoul.go.kr

 

 

사운드 프로젝트 <위로의 모양>은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전시이다. 석유를 비축했던 탱크 내부 전시장은 관람객이 발을 구르기만 해도 터-엉, 터-엉 길게 흩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마치 쇠로 만들어진 커다란 종 같은 독특한 이곳은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한편, 내부의 특정 소리를 기이하게 뭉개는 방식으로 증폭시킨다. 특히 음성 언어로 발신된 것은 의미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공간에 흐트러져서 퍼진다. 그러나 ‘누구씨~’ 하고 이름을 불러도 잘 전달이 되지 않는 탱크에서 뜻밖에 명료하게 들리는 것은 설치된 소리 오브제에서 나오는 언어 아닌 소리들이다.
관람객은 어두운 탱크의 중앙에 앉거나 서서, 둥근 원을 그리며 이동하는 사물들의 행렬을 본다. 희미한 빛을 받으며 각자의 소리를 내는 사이렌들의 원형 행진.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유혹적이지 않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일관된 규칙이나 약속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휘잉 하고 바람이 부는 소리, 공사장에서 움직이는 기계 소리, 풀벌레 소리,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을 때 체인이 움직이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목에 종을 단 양 떼가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오래된 돌림노래(Summer has come in)의 허밍. 이 모든 소리들은 점점 커지지고 팽창하며 또 다른 복잡하고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점으로 끌어당기는 사이렌의 노래가 아니라, 각각이 무수히 많은 사이렌이 되어 내는 소리,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가 만드는 리듬.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과 시간이 어디에선가 끌어당겨져서 온다.
걸어가거나 굴러가거나 옆에서 소리 내고 있는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위로의 모양>은 존재들의 다른 관계와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 오브제들은 관람객에게 어떤 시간, 어떤 공간을 환기시키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환기. 나에게는 아주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이에게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면 흩어지거나 아주 멀어져버리는 것, 살갗에 닿았다가 사라지는 감각 같은 것. 이 이상한 환기로 인해, 적어도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만난다. 언어의 땅에 발 딛고 있지 않은, 허공에서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으로. 각자의 공상이 리듬을 만드는 이 우주에서는 마이크 모양의 조명이 깜빡이고, 나선형의 네온사인, 자동으로 가끔 연주되는 북이 논리나 개연성 없이 만난다. 여기에 관람객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명확한 사물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 관람객의 소리가 행렬의 어느 오브제에서 어떻게 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관람객의 소리는 어둠 속 어딘가에서 불규칙한 맥박처럼 뛰며 이 리듬에 합류한다. 리듬 전체를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한다. <위로의 모양>이 만들어내는 이 리듬, 이 우주는 들뢰즈&#8226;가타리가 리토르넬로에 대해 설명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안정을 되찾는다. 그는 노래에 이끌려 걷다가 멈추어 선다. 그는 길을 잃었지만, 할 수 있는 한 몸을 숨길 곳을 찾거나, 조그마한 노래를 의지해 겨우겨우 방향을 잡는다……” 그러나 석유 탱크 전시장의 외부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내부의 소리들은 먹먹히, 하나도 들리지 않게 된다. 연약하고 불확실한 리듬에만 의지해서 나아가는 이 행진. 언제고 부서지기 쉬운 연결인 한에서만, 이것은 관람객에게 실낱같지만 분명한,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하나의 모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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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623-위로의 모양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