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월드비전 공동기획 展

 

" I AM , 나를 희망한다 "

 

이준헌 作

 

 

사진위주 류가헌

 

2018. 6. 19(화) ▶ 2018. 7. 1(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106 | T.02-720-2010

 

www.ryugaheon.com

 

 

이준헌 作

 

 

작업노트

 

김영민
난민 포르노는 찍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모금 활동 위해 TV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영상들 때문에 난민하면 떠오르는 불쌍한 난민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것 같다. 난민 이미지가 넘쳐 난다고 사람들은 주장하지만, 난민의 실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 출장 준비하면서 지난 1년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배포된 난민관련 사진을 찾아보았다. 지난해 주요 뉴스로 다뤄졌던 시리아와 로힝야 난민에 대한 이미지는 많았다. 하지만, 우간다의 남 수단 난민에 대한 사진은 많지 않았다. 취재 가능한 3일간 볼 수 있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아프리카로 출발했다.
“전시를 보실 분들이 난민을 그저 쳐다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마주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난민이었습니다. 일제의 학정을 피해 만주로 간도로 상해로 떠난 사람들. 6‧25 때 고향을 떠나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사람들도 난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준헌

난민촌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모두가 천진난만했다.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 보다 호기심이 더 많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술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그림에선 해맑은 천진난만함을 찾을 수 없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봤다. 선생님은 아이들 스스로가 사는 곳을 그린 그림이라 말했다. 하지만 내 눈에 그것은 그저 파편이었다. 집으로 추정되는 그림 하나만 있었을 뿐 파편들의 집합으로만 보였다. 그날의 수업은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이 애벌레, 곰, 아이들, 개, 코끼리, 나비, 고양이, 뱀 등 살아있는 무엇을 그렸고 집과 축구공도 있었다. 젓도 못 땐 아기 때 부모 품에 안겨 시리아를 탈출했거나 이곳 난민촌에서 태어난 5, 6살 이 아이들은 개를 제외하곤 살아있는 동물을 본 적이 없다. 모든 동물을 그림과 사진으로만 배웠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그림 속 동물들 역시 일부분만 그려진 파편들이었다. 지금 사는 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황무지. 그곳에서도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 모래와 흙이 아닌 다른 것을 밟을 수 있는 것은 임시 건물로 된 집과 유치원 아니면 축구장 절반만 한 크기의 인조 잔디 운동장뿐이다.
난민 어른들의 삶은 더 팍팍했다. 난민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지만 나간다 해도 황무지로 둘러싸인 난민촌에서 가까운 도시가 차로 한 시간 거리니 나갈 이유도 없다. 몇만 명의 난민 중 극히 일부만이 공공시설에서의 근로가 허용됐다. 남자들은 쓰레기 재활용 센터에서 일했고 여자들은 식료품 가공시설에서 일했다.
난민촌에서의 생활을 거부하고 요르단 수도인 암만에서 거주 중인 난민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르단 정부로부터 일할 수 있는 허가는 드물게 나오고 그마저 6개월마다 바뀐다. 한 집의 식구는 6~7명이 넘는다. 어떤 난민들은 불법으로 일하며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난민 관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7년 넘게 이어지는 전쟁에 목숨 걸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을 며칠 만났던 것으로 그들의 삶을 논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지금 형편이 좀 어려운 것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김영민 作

 

 

김영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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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619-I AM , 나를 희망한다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