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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중 展
" phase haze "
갤러리조선
2018. 6. 16(토) ▶ 2018. 6. 29(금)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
www.gallerychosun.com
김범중 작가의 신작은 언뜻 전통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가는 연필선들의 집합으로 그려진 그림은 수묵회화가 그러하듯 화면 내에 공간감을 부여하며 선과 면의 대조를 극명하게 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흑연의 반복적인 운동이 장지 위에 그려낸 흔적을 볼 수 있다. 반복에 반복을 기하며 형태를 찾아나가는 그리기 행위는 흑연이라는 재료가 내포하는 질감이 아닌 행위 자체의 운동감을 상기시킨다. 흑연의 운동선을 따라 찢기기도 하고 부풀어오르기도 하는 장지의 표면 역시 그림의 바탕 혹은 여백이라는 맥락밖으로 돌출하여 장지라는 촉감적인 재료의 물성을 드러낸다. 김범중 작가는 장지와 연필으로 평면 회화 속에서 발견되는 모종의 방향성을 탐구해왔다. 작가의 연필-장지 작업은 레코드판 표면을 긁는 축음기의 행위에 비견되어 왔다. 레코드판의 주름이 음악과 그가 소요하는 시간을 비유하는 것처럼, 연필의 궤적은 작업의 시간을 담아낸다. 김범중 작가는 특유의 청각적 예민함을 화면 위에 치환시켜, 사물이 내재한 고유한 진동수(Eigen Frequency)까지 읽어내려는 듯 집요하고 집중적으로 작업해 나간다. 이번 신작에서 운동감은 형태가 아닌 반복과 모듈로 나타난다. 그림 내의 형상들은 단순하고 규칙적인 양상을 띄나, 자세히 보면 짧은 필치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모듈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듈은 좌우상하의 복제를 거듭하며 미묘하게 변화해나간다. 이 점진적인 변화는 결국 한 화면 내에서 진화하는 양상을 드러내며 담담한 색채 속에서도 생동감을 표현해내고 있다. 반복이 반복이 되는 순간은 그 시작과 끝이 중첩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복되는 각각의 모듈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첫 모듈이 다음 모듈에서 변형되어 다시 드러날 때, 첫 모듈은 잦아들고 비슷하지만 다른 새로운 모듈이 등장한다. 소나타에서 그러하듯, 각 주제는 혹은 모듈은 서로를 반추하며 변형과 전개를 이어나간다. 이 음악과 같은 그림이 종결부에서 어떻게 갈무리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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