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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 展
" 점점 느리게 그리고 여리게, 점점 사라지듯이 "
소마드로잉센터 전시실(제6전시실)
2018. 6. 8(금) ▶ 2018. 6. 24(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 T.02-425-1077
soma.kspo.or.kr
공간의 해석과 변주
이요나의 드로잉 작업은 음악적 단상에 미술적 장치를 덧붙여 공간에의 공감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우선 드로잉에 대한 작가의 질문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드로잉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3·4차원적인 드로잉은 전통적인 드로잉 관념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까?,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공간, 시간 그리고 기억들을 한 곳에 가져다 올 수 있을까?’(작가노트 중) 특히 세 번째 질문은 그의 드로잉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데, 작가는 일상적 공간들을 그가 가진 예술적 언어로 재해석하여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일상의 기억과 감각들을 소환한다. 이때, 그의 예술적 언어는 크게 두가지로 구성된다. 음악과 오브제인데, 음악으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예술적 언어는 자연스럽게 선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며 선적인 오브제로 치환(置換)된다. 선적인 오브제들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공간에 놓이고 움직이면서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선을 통한 음악적 표현은 선적 이미지들이 작가의 의도에 맞춰 밀도, 크기, 수량을 달리하여 공간속에 놓이면서 상호관계 속에 발생하는 리듬, 선율, 소음, 침묵의 메시지이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매끄럽고 강한 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이와는 대조되는 아주 연약한 재질의 선, 유연하고 탄력적인 선 등을 병치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요나의 공간 드로잉은 바이올린 솔로의 선율(旋律)처럼 외롭다가 오케스트라처럼 왁자지껄하다가 단조로 읊조리다가 장조로 쨍쨍거린다. 첼리스트를 꿈꿨지만 현재 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고, 한국인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업 속에 양가적인 요소로 발현되는 듯하다. 요컨대, 그의 작업에 보이는 선들의 강약, 조밀함과 여백, 파격과 단조로움 등은 공간을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요소이며,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매재(媒材)가 된다. 한편, 작가는 상품의 진열에 사용되는 장치와 형식을 빌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미술관 공간으로 가져와 오브제화 한다. 일상의 오브제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 이후로 너무 흔한 현대미술의 언어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는 것들 가운데 작가라는 체에 걸러져 미술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편입된다는 것이, 사회에서 무수히 교차되는 개인적 욕망의 단면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설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공간에 놓인 오브제들은 기호와도 같고, 공간 안에 진열된 다양한 선들 사이로 진입한 관람자는 좋든 싫든 그 공간을 공유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관람자의 시선, 발자취, 숨소리, 목소리, 몸짓이 말이다. 때론 작가의 퍼포먼스가 더해져 공간은 더욱 적극적인 소통의 장소가 된다. 이렇듯 미술품과 상품, 미술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그 지점에서 작가적 상상력은 유쾌하게 관람자의 감수성을 울릴 것이다. 소마드로잉센터의 전시공간을 작가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한 면이 유리창으로 확 트여 그 너머로 올림픽조각공원의 장관이 고스란히 담기는 개방적이고 아름다우며 역사적인 이 공간을 말이다. 약간의 실마리를 풀자면, 작가는 이곳에 ‘화장실과 카페’라는 공간을 소환하여 공원이 주는 여유로움을 담아냄과 동시에 우리가 미술관에 가지는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장소특정적 작업의 특성상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에 비추어 짐작할 뿐 아직 그 전모를 알 수 없지만, 드로잉의 확장된 실험을 위한 이 특별한 공간에서 펼쳐질 너무도 드로잉적인 이요나의 작업이 무척 기대된다.
정나영 (소마미술관 전시학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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