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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찬효 展
" 서양화에 뛰어들기 "
트렁크갤러리
2018. 6. 5(화) ▶ 2018. 6. 27(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66 | T.0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서양화에 뛰어들기
동양에서 온 남자가 서구사회에 살면서 느낀 ‘편견’과 ‘소외’의 경험을 작업으로 풀어낸 배찬효의 일련의 프로젝트는 한 개인으로서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유와 제안으로서의 표현이었다. 이제 그는 한 단계를 더 오르려고 한다. 무의식적 자아 혹은 직관이 이끄는 대로 작업했다는 이번 작업 ‘서양화에 뛰어들기’는 서양화에 말 걸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매우 적극적인 시도이다. 이제까지의 ‘의상 속 존재’와는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로서, 2018년 6월 트렁크갤러리에서 첫 선을 보여주려 한다. 그동안 ‘의상 속 존재 Existing in Costume’ 연작 시리즈를 다섯 차례 수행하면서, 전통적인 유럽 사회와 역사들을 접하고 다양한 문화와 그들의 사유 체계를 겪으며, 오랜 전통 사회가 구축한 비이성적 고정관념 틀에 의한 ‘편견’에 확신을 갖고 그 구조 틀을 작업으로 표출하면서 유학생으로서 살면서 느낀 ‘소외’ 경험들을 시각화 해왔다. 이제 그는 그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리서치 해온 서양 사회 연구를 다른 맥락으로 접근하며 형식을 바꾸려 한다. 이 새로운 시도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아주 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이전 작업이 서구사회의 전통 의상, 전통 건물, 동화, 그 사회의 권력구조, 그 사회가 가한 마녀사냥 이야기 등을 대상화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서양 사상의 체계를 문자 대신 이미지로 소통해온 회화의 세계로 파고들어 연구하면서, 자신이 겪은 ‘편견’, ‘소외’의 근거가 되는 실체들이 ‘중세’ 회화와 ‘르네상스’ 회화 속에 그 사유적 바탕들이 함축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회화들에 말 걸기를 시도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자신의 콤플렉스가 그들 사회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을 덮쳐 답답하게 했던 틀들을 해체하며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새롭게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 내고 있다. 자기 치유의 단계에 이른 것 같다. 그 사회가 유학생에게 끼친 ‘편견’과 ‘소외’의 틀에 대해, ‘편견의 부당함’에 대해 소리 지르기를 시작한다. ‘서양화에 뛰어들기’가 그것이다. 21세기인 오늘 시점에서 서양화 ‘밀어내기’와 서양화 ‘끼어들기’는 서양인들이 주체라는 착각, 동양인들을 타자 혹은 종속 개념으로 여기는 비이성적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온 그 이분법적 사유 체계를 공격해 보려는 마음에서 형성되었다고 보여지는 작업이다. 그렇게 작업함으로써, 즉 그 작업들의 형식(‘밀어내기’와 ‘끼어들기’)과 그 형식이 갖는 의미 작용을 통해 그들에게 타자들의 상실감을 경험 시키고, 자신의 굴욕을 되돌려주려 하는 것 같다. 그는 복사 촬영한 서양화 이미지를 가죽 위에 전사를 한다. 가죽 위의 털이 전사된 이미지를 손상시켜 이미지의 본질을 해체 시키면(‘밀어내기’), 그 손상된 위치에 작가가 서양 전통 의상을 입고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어떤 존재로 ‘끼어들기’를 한다. ‘밀어내기’가 서양화를 해체 시켰다면 그 자리에 스스로 ‘끼어들기’로 ‘제 3의 존재’ 탄생으로 동시대적 가치 체계를 구성해 낸다. 유럽의 15-17세기 르네상스 시대 문화운동에 근거한 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기초로 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유 체계로 변환한 그림들에 ‘가죽 미디엄’의 속성을 활용함으로써 실현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기를 한다. 12-15세기 중세 그림들도 공격한다. 중세에는 문자의 접근이 평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 중심 시대의 종교 교리를 성화로 소통했다. 성서 스토리를 잘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이미지가 그 역할을 했기에, 그 시대 회화의 성스러움과 존엄성이 갖고 있는 권위를 배제시키려고 중세 회화의 금박을 패러디 하기로 한다. 성화의 어떤 부분을 손상시키며 ‘금박’ 치장을 한 작가가 비집고 들어가, 스스로 존귀한 존재로 변신해서, 중세 종교화에 교란을 일으켜 흔들기를 함으로써 적극적인 해체를 감행한다. 그 결과, 회화는 손상됨과 동시에 회화 속 존재들은 밀려나 소외되게 된다. 이 작업 형식은 중세 회화의 구조에 교란을 일으키며 중세 카톨릭 교리를 전복 시켜 낸다. 배찬효의 중세 회화와 르네상스 회화는 즉각적으로 변용 되면서 유럽 사회가 가진 고정 틀에서 벗어나 ‘Political Correctness’를 확립한다. 이 작업들은 작가에게 즐거움을 주며, 오랜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는 치유 경험을 하게 한다. 작가의 직관에 따른 이 작업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시킨 것이기도 해서 흡족한 한편, 자신이 회화에 가한 행위가 정당한 행위인가 하는 반성도 같이 한다. 귀한 그림들을 해체라는 명목 하에 동물 가죽 위에 전사시킨 자신의 행위가 비도덕적이지는 않았나? 자문하며, 이 또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염려하며 고민하는 그의 섬세한 감성에 마음이 쓰인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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