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지 展

 

" 오아시스, 유리, 벽돌 "

 

 

 

위켄드

 

2018. 5. 26(토) ▶ 2018. 6.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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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브제가 작품의 요소가 될 때, 그들이 가진 상징성과 맥락이 동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기대하고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오늘날. 되려 이현지는 시대의 흐름에 역설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오브제의 존재 이유가 아닌, 존재 자체만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작가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가는 바람>은 작가만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미감과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온전히 반영되어 작가의 작업 특유의 진동성이 깊이 느껴진다. 다양한 유기적인 모양의 오아시스 조각, 희미한 유리조각과 고운 벽돌 가루가 전시장에 표류하듯 간헐적으로 떠 있다. 그중 한 오아시스 조각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구슬은 다른 오브제와 공간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조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준다. 이 장면은 한눈에 강하게 들어오기보다는 서서히 눈에 들어오며 시선을 분산시킨다. 의미와 상징성은 사라지고 물질성과 형체만 남은 작업 요소는 표면적으로는 정지해있지만 서로 끊임없이 조우하여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 되고, 고요하지만 힘 있는 생명력이 유영한다. 이는 마치 짙은 안개처럼 멈춰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떠 있는 것 같은 진동으로 느껴지고, 이 진동은 전시장을 넘어 무한하게 퍼져간다.

 

작가에게 작업이란 결과물을 위한 의도적 행위가 아닌, 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즐거운, 지극히 자연스러운 활동 과정이다. 길을 다니다가 눈에 띄는 오브제를 채집하는 것은 작가의 오랜 습관으로, 지금까지 채집한 오브제의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벽돌, 구슬, 그물, 타일 등이 있다. 이러한 채집품들은 작가의 손에 쉽게 쥐거나 들 수 있고, 생활에 친근한 재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렇게 데려온 오브제를 쳐다보고, 매달아보고, 만져보기도 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경험하는 과정을 작가는 ‘그들과 장난친다.’라고 표현한다. 이 과정은 오브제를 일방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함께 놀며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가 알고 있었던 오브제에 대한 상징성과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이후 오브제는 물질성과 형태만 남게 된다. 즉, 마치 이 오브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오브제를 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뒤, 작가는 오브제와 자신이 서로 끊임없이 조우할 수 있는 상황을 모색하고 이에 있어서 어떤 의도나 강요도 넣지 않도록 하며 그들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적당한 개입'을 한다. 이번 신작에서는 그동안 적당한 개입을 위해 지양했던 점을 반전시켜 오브제에 직접적인 변화를 주고, 전시장의 벽과 바닥을 중요한 작업 요소로 가져왔다.

 

<가는 바람> 이전 작업의 오브제에서 눈에 띄는 물리적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반복적인 파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마모되어 부드러워진 유리 조각처럼 마치 자신이 파도가 되고 바람이 된 듯 재료에 알맞은 힘을 담아 목적성 없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마모시켰다. 네모반듯하던 오아시스는 본래의 의미와 목적성을 잃은 뒤 작가만의 물리적인 힘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 작가의 내면에 떠 있는 섬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고 붉은 벽돌은 고운 가루가 되어 쌓아졌다. 이전의 적당한 개입이 오브제에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작가 본연의 힘에 목적성을 배제해 오브제에 변화를 줌으로써 작가 내면의 풍경을 좀 더 투명하게 비추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적당한 개입을 위해 오브제나 벽에 무언가 덧대거나 인위적으로 붙히는 등의 행위 또한 자연스레 지양했다. 그러다 보니 오브제는 바닥에 놓일 수밖에 없었기에 수평적인 경계가 지속적으로 형성되었고, 이때 벽은 배경으로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신작에서 벽을 수직적인 경계를 넓히는 중요한 작업 요소로 가져와 그동안 작업의 한계점이 되었던 수평적인 경계를 허무는 발전이 있었다. 납작하게 깎은 오아시스, 길쭉하게 깎은 오아시스, 소복이 쌓인 벽돌 가루 등과 공간이 조우하고 있는 작업은 더욱 자유로운 동시에 균형감과 긴장감 또한 짙어져 이를 볼 때마다 시선이 흩어지고 모인다. 위와 같이 확장된 작가의 태도와 작업 요소가 온전히 반영되어 특유의 진동성이 더욱 짙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오브제를 사용한 작업을 볼 때, 어떠한 오브제를 고르고 변화를 주는 이유나 오브제가 지닌 상징 등에 대해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는 바람>에서 이러한 궁금증은 오브제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잊혀지고 자신 또한 작업의 한 요소가 되어 오브제와 반응하고 작용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현지의 작업은 그 무엇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그저 그 존재 자체로 보는 이가 저절로 작품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즉, 관객에게 어떤 의미나 메시지, 맥락 등을 강요하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이렇게 관객을 대하는 작업의 태도는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그의 작업은 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단번에 대부분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모습 또한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누군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저 자연스럽게 점점 깊이 그의 세계로 들어간다. 무엇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그의 존재 이유를 걷어내고 존재 자체를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에 작가의 작업은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을 스스로의 의지로 보게 되는 ‘사건'이 된다. 이 사건에는 무엇도 확실한 것 없이, 여러 경계를 미묘하게 오가며 반대의 것들이 공존하는 여러 방향이 있다. 이런 관점을 갖는 태도는 명확한 이유와 의미, 상징 등이 필수적인 현시대가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그의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 다가온다.

 

작가의 미감과 태도를 올곧이 담은 작품 안에서 계속해서 유영하고 싶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오브제를 소중히 데려오고 있을 것만 같은 작가의 발걸음에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된다.

 

박혜린 위켄드 공동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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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526-이현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