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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윤 展
" Sine cera "
갤러리 조선
2018. 5. 25(금) ▶ 2018. 6. 13(수)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 | T.02-723-7133
Sine cera는 라틴어로 "without wax"라는 의미이다. 고대 로마시기, 얇고 가벼운 도기를 만들고자 했으나 기술력의 부족으로 불완전한(균열이 있는)자기를 만들었을 때 기만적인 도공들은 이 균열을 감추기 위해 도기에 왁스를 덧발랐다. 이에 반대되는 진실한 도공들은 `왁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라는 뜻의 `Sine cera`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완성도에 대한 진실성을 보증하고자 했다. 현대에 이르러 이 용어는 sincerely의 어원이 되어 `꾸며내지 않은`, `(눈속임 없이) 진실된`의 의미가 되었다. 이러한 전시 제목처럼, 윤상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숙련되고 진실된 그의 작품 세계를 공유하고자 한다.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는 구상적 유화를, 왼손으로는 즉흥적인 드로잉을 그리는 작가이다. 오른손 그림은 물과 인물, 그 위의 구조물로 이루어진 3중 구조이다. 한 화면 안에 세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그림의 밑에서부터 무의식의 세계를 대변하는 이드(Id),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에서 이를 조정하는 에고(Ego) 그리고 우리가 매일 수행하는 의식적 자아로서의 슈퍼에고(Superego)가 있다. 작가가 밝혔듯이, 밑바닥의 물은 에고, 물에 잠긴 부분은 이드, 물 위의 구성체들은 슈퍼에고를 의미한다. 오른손 그림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모델에 기대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과 합의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윤상윤 작가의 왼손 드로잉은 신체적 수행의 특이점이 드러나는 사례이다. 이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말하는 `세계에 연루된 주체로서의 신체`와 연결된다. 비교적 구상적인 오른손 그림에 비해, 왼손 드로잉은 즉흥적이고 추상적이다. 드로잉 속 인물들의 얼굴은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변형되거나 단순화된다. 이는 마치 퐁티의 `살 la chair` 개념에 대한 비유같다. 퐁티는 물질적인 세계와 신체는 동일한 재료(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신체와 세계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드로잉 속에서 개인을 특정할 수 없고, 각 인물들이 단절된 개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드로잉 속 인물들을 사람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의 일종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 또한 동일한 질료로 이루어진 이 세계의 일부로서 작품과 살을 맞대게 된다. \"보이는 자와 보이는 것은 서로 역전하여, 누가 보는지 누가 보여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라는 퐁티의 말처럼, 관객과 작품은 서로를 보는 동시에 서로에게 보여질 것이다. 퐁티가 주장한 것처럼 신체적 지각을 통해서 가시성의 배후에 있는 원초적 비가시성 혹은 정신세계를 `볼(할) 수 있다(je peux)`면, 우리는 왼손 드로잉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sine는 없다, cera는 왁스를 뜻한다. 그런데 이 cera는 밀랍으로 주조된 초상을 의미하고, 나아가 얼굴에 대한 비유적 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sine cera는 `왁스를 사용하지 않은(진심 어린, 진실된)` 이자 `얼굴 없는`이라는 뜻이다. 윤상윤 작가의 왼손 드로잉에는 얼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현실로 귀결되기를 보류하며, 시각의 틀을 벗어난 감각으로 인지되기를 원한다.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들이 구체적인 얼굴을 드러내며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프로이트적 세계관의 도식이라면, 왼손으로 그려낸 드로잉들은 어떤 체계로 종속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비가시성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윤상윤 작가의 오른손 그림과 왼손 드로잉을 번갈아 본다는 것은 즉 프로이트적 세계관과 퐁티적 세계의 살을 함께 맞대어 보는 일과 같다. 같은 현실과 그 이면을 탐구하면서도, 두 가지 다른 방법론을 동시에 사용하며 각자 다른 세계관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윤상윤 작가는 동시대 미술사에서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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