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원 展

 

 

 

  

가나인사아트센터 6F

 

2018. 5. 2(수) ▶ 2018. 5. 8(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 T.02-720-4354

 

www.jma.go.kr

 

 

 

 

어머니의 창 - 시선이 머무는 곳에 ...

 

정덕원 개인전에 부쳐

 

주성열(예술철학, 세종대 겸임)

 

작업실에 들어서며

초행길이어선지 성남시는 매우 어수선했고 정덕원의 작업실이 있는 동네는 치열한 생존의 싸움터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왜 하필 이곳’이라는 의문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여타 도시와의 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곳에서 그토록 서정적인 그림이 나왔을까 하는 특별한 감정 때문이었다. 필자는 화가들이 거처하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창작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억누르고 살았을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많다. 현실적으로 작업의 공간을 살피는 것은 조금 정신을 차린 이후에나 가능하다. 정덕원의 작업실도 그랬다. 그는 튀긴 닭을 파는 주점과 허름한 점집 그리고 그의 화실과 거처가 층마다 구성된 아담한 건물에서 작업 중이다.

 

최악의 황사와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던 날이었지만 그의 화실에는 초록빛으로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처럼 맑은 공기, 청명한 하늘과 시냇물이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거렸다. 어린 손으로 뜯어 준 풀을 먹고 왕성하게 자라던 토끼와 초록 들판에서 뛰어놀던 까까머리 시절도 떠올랐다. 화가 정덕원은 전시를 앞둔 초조함으로 연신 불안해하면서 몇몇 그림은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기 넘치는 그림과는 달리 자신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는 고백은 그림의 내용보다는 쉽게 변하지 않는 스타일에 대한 자책일 것이었다.

 

 

 

 

‘어머니의 창’,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기

 

화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그리움이 있고, ‘어머니의 창’도 화가 정덕원의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어느 화가도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는 않는다. 눈으로 보고 느낌 감정과 순간적으로 기억된 자연을 조합한다. 어머니의 창은 어머니그리움과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창은 근원적인 세계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출구가 된다. 화가가 어머니의 창을 통해 만나는 세계는 오히려 초현실적이어서 세상의 현실을 지배하는 합리적인 체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다. 정지용의 <고향>처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나가던’ 곳. 자연의 운명을 따르는 자유롭고 유희적인 곳. 화가는 어머니의 창을 그리면서 그리움과 생명이 충만했던 고향을 말하고 있다.  

 

수평적 특성을 지니는 그의 넓은 벌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앉은 사람의 낮은 시점이다. 앉아서 바라봄은 땅 위에 군림하지 않고 땅에 기대어 살았던 소박한 사람들의 자세다. 굽은 허리로 무릎이 닳도록 땅에 엎드려 일해 온 우리네 삶의 자세다. 바라보는 시점이 올라갈수록 겸손은 가벼워지고 땅에 대한 허튼 욕망도 생기는 법이다. 어머니의 창이 땅에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은 이러한 정서를 대변하는 강력한 형식이다. 주체로서의 인간이기보다는 자연에 기댄 자의 겸손하고 숭고한 시점이다.

 

근원적인 모성의 세계를 욕망하는 그림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낮은 시점의 전원이 펼쳐져있다. 물은 잔잔하게 흐르는 이미지로 재현되어 세상을 정화하고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를 만든다. 평지를 가로지르면서 그저 잔잔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는 듯 둥그렇게 대지를 감싸고 흐른다. 몹시도 극성스럽게 살아왔을 어머니의 몸을 닮은 봉긋한 곡선은 공격적이지 않고 서로와 대응하며 그렇게 조화를 부린다. 이런 근거로 정덕원의 그림은 소박하고 평온한 안식처이며 신비로운 세계로서 생명 회복의 대지이자 생명을 품고 남김없이 주었던 생기의 공간, 성스러운 전원이다.

 

구불구불한 길은 어머니의 길이다. 서로의 정이 집과 집을 넘나드는 마을에는 담도 없고 길도 없다. 들판에 난 길마저도 생겼다가 사라진다. 길은 사람의 발길이 잦아져서 생기고 삶의 터전에 변화가 생겨 인적이 끊기면 전원으로 되돌아간다. 전원에 난 길은 길에게 길을 물어야 갈 수 있는 길이다. 도로처럼 홈을 파고 만들어진 길이 아니기에 상처를 남기지도 않는다. 어머니의 창으로는 해질녘 뛰어 놀다 지친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이 보인다. 눈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마중 나가는 길,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먼 곳까지 배웅하는 길이었다. 반듯하게 만든 도로는 사람과 삶을 분리시켜 직선을 따라 앞으로만 가도록 하므로 소통이 부재한다. 이 길은 우연히 만나는 풀도 없고 들꽃의 향기도 없다. 이제 어머니를 배웅하고 마중 나갈 수 있는 궁핍한 산야에 난 길은 사라지고 없다.

 

 

 

 

‘어머니의 창’너머 시선이 머무는 곳에 ...

 

저만치 홀로 핀 들꽃의 시간을 돌아보라.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은 화가의 전원풍경은 고요함으로 감명을 주면서 사색을 고양시키는 축복의 공간으로 오라고 부르는 듯하다. 워즈워스는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바람직하고 선한 모든 것을 얻게 한다.’고 했다. 화가의 시선이 마주하는 곳에서 새롭게 재현된 은유의 풍경은 화가가 꿈꾸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워즈워스는 자연에서 기억된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에 찾아 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해방감을 맛보게 되며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 불렀다.

 

몸 비비고 살던 어머니의 땅은 지금은 부재한다. 시선 앞에서 출발하여 저 너머로 이어지는 청명한 하늘과 낮게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바람이 머물던 대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릇된 풍경으로 변모하여 핏줄처럼 연결된 인간과의 연을 끊고 떠돌고 있다. 정덕원은 어머니의 창과 시선이 머무는 곳을 통해 그리운 어머니의 땅으로 회귀한다. 자연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의지가 곧 본래 어머니의 빈 마음임에 주목해야 한다. ‘천하의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천하의 어머니’라는 노자의 말이 있다. 어머니의 빈 마음이 만물을 다 담고 있음을 뜻한다. 허심한 마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 도시를 비워 내야만 볼 수 있는 공간 어머니의 땅은 그런 거울을 닮았다.

 

어머니의 창 너머에 있을 풍경은 그가 바라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그림에서 화가 정덕원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 실존과 마주친다. 오래도록 매력적으로 만들어낸 자연 풍경에 깊이를 부여하는 결정적 특징이 실존적 불안과 결부되어 있다는 말이다. 두드러지게 주제가 드러나는 그림일수록 역설적으로 혹독한 삶에 저항하는 그가 느껴진다. 그가 선동가는 아니지만 사회적인 소외에 맞서 자신의 미적 가치를 과거 고향의 깊은 정취를 재현한 이미지에서 실현하고 있다.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상실한 인간이거나 자기 통일성을 잃고 분열된 모습으로 타락해가는 존재에게 어머니와 같은 세상을 안내하는 자연이다.  

 

이처럼 화창하고 생기가 넘치는 풍경에서 무거운 실존의 측면을 보다니. 지친 영혼을 위안하는 그림이 분명하지만 마음에 드리워진 ‘고도의 기다림’이나 허무의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작품 대부분이 미완이라 고백했던 말은 이런 그림자를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밝음 뒤에 어둠이 있기 마련이며 어두운 내면을 응시하였기에 밝은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고 수정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의 대지에는 슬픔이 습관처럼 배어 있지만 시적 몽상으로 맑고 투명한 희망을 그려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의 창’을 닫으며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신의 의지와 닮아 있고 어머니의 근원적인 마음과 같다. 어머니의 창은 나와 하나로 연결된 창이다. 어머니에게는 세상의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덕원은 자연을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하나로 연결되었기에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연은 본래 풍경이 될 수 없다. 모래 바람이 불고 황사가 흙비로 흘러내리는 혼탁한 대기와 환경오염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부드러운 자연의 것들이 소멸하고 해체되어 견고한 것으로 변해가는 자연을 화가의 마음인 풍경 속의 풍경과 대비하여 전달한다.

 

그의 작은 터치는 모래알 같이 흩어질 수 있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언뜻 견고해 보이지만 남은 수분이 증발하는 순간 푸석해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에만 존재하고 그림을 보는 사람이 떠나는 순간 사라지는 풍경. 사람과 도시가 화해적인 일체감으로 연결되지 않고 쫓고 쫓기는 적대적인 관계 속에 노출되어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세속 도시는 종교적인 체험과 신성이 상실되었을 뿐 아니라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분마저 무너졌다. 이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에만 몰두한다. 어느 때부턴가 어머니의 땅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자연개발의 논리 속에서 어머니의 창은 그렇게 열 수 없는 창이 되었다.

 

그는 그림 속 길들을 훤히 아는 길잡이다. 나그네는 터벅터벅 걷다가 전원의 지평선 끝에서 점점 작아지고 풍경만 남는다. 세상 사람에게 그림을 통한 명상과 수행은 어머니의 땅에 대한 산만한 생각을 가라앉히고 현실을 직시하고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화가 정덕원도 현재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유약함, 불편함 그리고 걱정을 일상생활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바쁘고 또 바쁜데 그는 느리지만 힘찬 움직임으로 성실하게 붓질을 하고 있다. 부드럽고 화창한 5월이면 화가 정덕원의 자연 그리고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잘 그려진 그리움과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정덕원 | Jeong Duck-Won

 

세종대학교 회화과(서양화) 졸업

 

개인전 부스개인전 | 21회 | 인사아트센터 | 세종호텔 갤러리 | 루벤 갤러리 | Ms 아트홀 | 목포 신선미술관 | 올미아트 스페이스 | J 갤러리 등

 

구상회화 2인전 | 부산문화회관 개관 21주년 기념 300호 초대전 | 구상작가 20인 초대전 (호서아트 갤러리) | 미술세계 선정 중견작가 초대전 (미술세계 갤러리) | 단체전 및 국내외 기획 초대전 | 11인의 구상 미술제 – 올해의 주목 작가전 (갤러리 라메르) | 전국구상회화 초대전 (울산문화예술회관) | 한국현대미술 100인 초대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 도심 속 찾아가는 미술관전 여수 국제 아트 페스티벌 외 기타 국내외 기획 초대전 240여 회

 

현재 | 한국미협 | 성남미협 | 신작전 | 중작파 | 서울아카데미 회 | 한국자연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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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502-정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