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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주 展
H양의 그릇가게 H’s Tableware
CRCollective
2018. 5. 1(화) ▶ 2018. 6. 2(토)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 120 | T.02-333-0022
한물간, 버려진 그릇들이 화려한 외출을 시도한다. 황연주 작가의 개인전 <H양의 그릇가게>는 유행 지나고 사연 많은 중고그릇들을 전시장으로 불러들였다. 특정 지역의 재난과 같은 사건들을 배경으로 사회적 구조의 부정적 측면을 들추어내는 작업을 해오던 황연주 작가는 이번엔 밥그릇, 국그릇, 컵, 종지 같은 그릇들을 버려진 사연과 함께 수집하고, 설거지를 통해 손때를 지워 새로운 텍스트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행적 행위는 참여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비예술과 삶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롭게 구성된 현실과 함께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게 한다. 황연주 작가는 2016년 과천아파트개발로 슬럼화 되어가는 자신의 동네에서 우연히 땅에 반쯤 묻혀 있는 그릇더미를 발견한다. 이 그릇무더기는 주변아파트에 살던 모 주부가 새 아파트로의 이사와 함께 새 그릇을 장만하고는 헌 그릇을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던지, 또는 아직은 쓸모 있는 그릇들이 필요한 누군가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했던지, 아님 그릇 버리는 비용을 줄이고 싶었던지 간에, 어쨌든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는 이 그릇을 작업실로 가져와 거의 무의식적으로 깨끗이 설거지한 뒤, 그릇을 버리는 사람의 심정, 버려지는 그릇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릇에 담긴 그 누군가의 소소한 역사가 누락되고 삭제되어 사라지는 기억, 작고 소외된 여성의 사적인 삶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사건 이후부터 작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릇과 그릇에 얽힌 사연을 받기 시작, 중고가게를 기웃거리고 그릇들을 사 모으며,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그릇을 줍기 시작한다. 황연주가 수집하는 그릇은 값비싸고 고급그릇이기보다 밥그릇, 국그릇, 컵 등이다. 수집된 그릇은 설거지라는 노동행위를 통해 그릇주인의 체취를 없애는 동시에 그릇의 생김, 정서, 그리고 역사를 기억하며 사용가능한 그릇의 위치로 전이시킨다. 더불어 소셜미디어의 방식(페이스북 페이지)을 통해 그릇사진과 함께 작가의 관점으로 그릇에 얽힌 사적 기억을 적어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 사적 기억은 공유하는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텍스트를 통해 공공의 기억으로 전이되며 세척과 진열, 물물교환, 그리고 전시를 통해 그릇이라는 물질의 생명력을 복원한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은 소외된 여성의 미시사(微示史)를 수집, 설거지노동으로 체화, 그리고 텍스트화를 통해 사회적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수행 행위–예술 실천을 드러낸다. 공공의 기억과 생명력의 회복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시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과 사회적 기억 및 역사를 연결시키는 미시사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가령 미시사의 관점에서 하나의 ‘그릇’에 관한 기억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에게 그 그릇에 담긴 추억의 음식이 가진 의미를 생각함과 동시에 그 특정한 스타일의 그릇이 제작되던 시기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 사회를 살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그릇들은 개인적인 기억과 동시에 사회, 문화적 기억을 담은 타임캡슐로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작가노트에서) <H양의 그릇가게> 전시장의 중앙에는 장식장과 자개문갑 같은 그릇 진열장과 함께 소위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던 그릇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대중적으로 시대를 풍미한 그릇부터 사연 많은 그릇, 짝 없는 세트들이 등장한다. 저렴한 보급용 도자기 그릇은 한때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금방 시들해 버려졌고, 시집오면서 혼수로 가져왔던 값비싼 그릇세트 같은 것은 새집장만과 함께 또는 시집살이로부터 해방되는 첫 분가의 시기에 버려졌다. 그릇들의 사연은 팩트를 드러내기도, 다분히 조작되어 미화되기도 하지만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다. 또한 짝 없는 세트는 작가의 상상드로잉과 함께 결핍을 메우며 새로운 의미로 채워진다. 수많은 그릇들 중 황연주 작가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유리컵이다. 특히 크리스탈컵들은 90년대 “파카글래스”를 중심으로 고가의 가격이 증명하듯 무지개색 영롱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크리스탈 컷팅이 일품이었다. 와인잔부터 유리컵에 이르기까지 소위 “기품” 아우라가 만들어졌다. 반면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맥주잔이나 보해소주잔의 디자인은 동시대 사회현상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술잔을 기울이며 속 얘기를 풀어내었던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릇을 씻는 영상과 함께 깨지는 사운드가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이 사운드는 설거지를 싫어하는 관객에게는 거슬리고 질색하게 만드는 것이겠고, 뽀드득 깨끗이 닦는 소음은 마치 요즘 유행하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ASMR 광고와도 같을지 모른다. 이번 전시는 거대담론, 힘의 논리, 개발주의 등에 반대지점에 있는 미시사적이고 섬세하며 여성주의적 태도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전시이다.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적극적인 경쟁논리가 중요한 사회적 덕목으로 읽혀지며 소위 걸크러쉬girl-crush가 대세이다. 이런 시대에 <H’양의 그릇가게>는 작가가 놓치고 싶지 않은 “삶 자체”의 환기인 것이고, 이분법적 프레임의 바깥을 보고자 하는 실험인 것이다. 또한 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함께 반복적 노동, 그리고 단조로운 실천이라는 수행성을 바탕으로 한 20여년 작가활동에 대한 의미화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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