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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展
갤러리 담
2018. 4. 25(수) ▶ 2018. 5. 4(금)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72 | T.02-738-2745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는 마태오복음에 의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되어 또다른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현재까지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계보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 양 서술될 때, 김누리는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 그러나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수많은 물음표들을 그 안에 숨긴 채 - ‘어머니됨’을 이야기한다. 성별은 개개인이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었지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해 나가는 가장 본질적인 요인 중 하나이다. 작가는 임신이나 출산과 같이 오로지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생겨난 의문들을,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여성성이라는 숙명적인 주제를 치열하게 탐구해 나간다. 김누리의 작업에 나타나는 원형은 고대로부터 여성적 에너지를 의미하는 어머니로서의 달, 그 중에서도 다산을 상징하는 보름달의 도상으로 활용되어 왔다. 달의 형태 변화가 완결되는 28일의 시간은 탄생과 성장, 소멸, 그리고 부활이라는 삶과 죽음의 과정을 내포하면서 여성의 생리 주기와 함께 자궁 속 태아의 잉태 기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가 내부를 수많은 점들로 채운 원의 형태는 몽글몽글한 세포들이 자리잡은 여성의 자궁을 상기시킨다. 그 원형의 세포들이 여성의 몸 안에서 분화되거나 무한히 증식하는 과정을 추상화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밝게 빛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운 과정이다. 김누리의 작업은 대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이루어지는데 도상학에 따르면, 강렬한 빨강은 피의 색이자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드러내는 색채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일은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출산에 대한 공포, 아이의 안위에 대한 걱정,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에 대한 두려움까지. 작가는 이처럼 복합적인 감정들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검붉은 색으로 세상 밖에 내어놓는다. 진한 핏빛은 작가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뜨거운 애증을 그대로 녹여내며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 김누리는 붉은 물감을 통해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가운데, 부드러운 털실이나 천과 같은 공예적 성질의 재료 역시 즐겨 사용한다. 작가의 이러한 선택은 1970년대 본격적인 페미니즘 미술의 시작을 알렸던 미리엄 샤피로의 페마주(femmage) 작업을 떠올리게 하며, 그 자체로 여성성을 담보한다. 공예적 재료와 더불어 작업 방식 또한 작품의 여성적인 성격을 이끌어내는데, 바느질은 예로부터 여성의 일로 여겨졌던 활동이다. 바느질은 날카로운 바늘을 사용해 조각난 천을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상처를 주는 동시에 그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로, 작가에게는 그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주어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나가는 일종의 상징적인 의식이다. 김누리는 작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앞에 놓인 문을 하나하나 통과하고 있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그 문을 열고, 웃으며 혹은 울면서 그 곳을 지난다. 문을 하나 거칠 때마다 작가의 내면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활성화(activating)되어 아우성을 친다. 작가는 그 치열한 외침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조형화하며 그의 길을 오롯이 걸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지금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은 과거에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걸었던 길이며 앞으로 누군가의 딸들이 걸어갈 길이다. 그래서 작가는 또 하나의 문 앞에서 마음 속으로 가만히 되뇌인다. 나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우리의 모든 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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