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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展
앤티크 강화도 Antique Ganghwado Island
인천아트플랫폼 | E1 창고갤러리 INCHEON ART PLATFORM
2018. 4. 18(수) ▶ 2018. 4. 29(일)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 T.032-760-1000
이호진의 이번<앤티크 강화도>시리즈는 인지범위 시리즈 중 첫 번째로 선보이는 테마이다. “인지범위 시리즈의 문제의식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일상과 예술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했던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 빅토르 쉬클롭스키(Viktor Shklovsky)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낯설게 하기’는 지각의 자동화 경향에서 벗어나 삶의 감각을 일깨우고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의식을 말한다.” 낯설게 하기! 사진에서 낯설게 하기_어떻게 가능한가? -중략-
그런데 어떤 사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건 익숙함에 대한 습관적 지각이 작동하지 않아, 도무지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없을 때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일이 아닐까? 세상은 이미 익숙한 사진에 포획된 의미들의 반복일 뿐이지만, 그래도 우연히 그 익숙한 사진 속에도 불현듯 나의 감각을 깨우는 불편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아직 기호화되지 않은, 의미가 상실된 곳이다. 평소 사진이 낯설지 않는 이유는 사진에 찍힌 대상이 현실과 똑같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현실에서 창밖 풍경을 보는 것처럼 사진은 익숙하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것은 습관적인 지각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익숙함에 대한 것이다. 지각의 자동화는 습관을 만든다. 만약 습관이 바뀌어 그 연속성이 끊어진다면 낯설게 보기의 다른 세계가 열린다. 그런데 우린 이것을 잘 보지 못한다. 습관이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낯선 이미지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대상의 객관적 재현의 방식을 취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재현이 아닌 제시의 관점을 적용할 때 대상은 새로운 잠재적 가능성으로 다시보기의 감각을 깨운다. 그런데 제시의 관점은 사진가가 본 그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이것은 관객이 갖는 자동적 인지작용의 습관으로부터 여하간 이탈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사진 앞에서 ‘낯설게 하기’가 가능하려면 다른 시점과 다른 각도에서 포착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이미지는 많지만, 우리는 또 그것에 곧 익숙해져 버린다. 사진은 놀랄 정도로 속속들이 이 세상을 점령해서 마치 모든 것을 경험한 것처럼 익숙하게 만든다.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경험한 듯 지각하는 것은 환각이다. 그런 결과 낯선 것들은 좀처럼 그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촬영수법만으로 그것이 가능한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또는 다른 배치가 가능하다면 의미의 맥락을 끊고 낯선 이미지를 불러낼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감각작용을 어떻게 일깨울 수 있을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호진은 바로 이런 어려운 문제를 안고 모험에 나섰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어둠속에서 보는 것이다. 어둠은 모든 것을 감추지만 역설적이게도 감각을 깨운다. 위험에 처한 동물처럼 모든 것이 곤두선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빛도 강렬하게 보인다. 빛을 모아 가두는 어두운 상자가 없었다면 사진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원리처럼, 이 세상은 어둠속에서 그 존재가 잠재적인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는 세계다. (중략)
앤티크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골동품으로서 가치를 부여 받지만, 동시에 기능적으로는 아무 쓸모없는 사물이다. 그것의 존재가치는 차라리 인간 이전의 역사부터 끈질기게 거기에 살아남은 흔적들에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볼 때 인간의 역사와 함께 덧붙여진 텍스트들의 기록으로, 그것을 보는 교양과 지식으로 점철된 인지판단에 따라 자동적으로 각인된 습관의 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호진은 낯에는 너무 밝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물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문화재로 읽혀지는 텍스트를 뒤집어, 잉태하기 직전의 어둠상자에서 꺼낸 이미지로 제시한다. 즉 문화재, 골동품 등으로 역사의 가치로 평가되어 들러붙은 텍스트의 표상들을 다시 어둠에 가두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아무 의미도 없는 그 자체로서 어둠에 둘러싸여 보이는 낯선 이미지 앞에서 인지판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빈 스크린 앞에서 생각에 잠길 때처럼 자동습관적 앎과 보기가 멈춘다. 그 결과 결말 없는 장면 앞에서 일상의 익숙하지 못한 당황스러움의 여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빈틈으로 추측과 상상이 끼어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사진은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미지에 눈 뜬다. 그래야만 낯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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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418-이호진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