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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의 서(書)
박종호 | 백종관 | 전지인 | 창작집단미러 | 플랜비워크그룹
아마도예술공간
2018. 3. 26(월) ▶ 2018. 4. 26(목) Opening 2018. 3. 26(월) 저녁 6시-8시 전시기획 | 임보람 (제5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선정자 | 주최 · 주관 | 아마도예술공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3-31 | T.02-790-1178
#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에 관한 기록
전시 기획/글 임보람
<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의 서(書)>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에 관한 사유를 테제로 하고 있다. 인간이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을 견디는 방식은 불안으로부터 탈피하려 하는 열망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인간은 그렇지 않음의 상태 즉 안정의 상태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안하지 않음의 상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안정의 상태에 도달하면 곧 다시 새로운 불안을 형성하고 만다. 불안의 순환 고리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과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안의 상태로 회귀하는, 영원한 순환과 같은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타락한 인간은 내면으로부터 현기증을 느끼는 상태, 그가 자유의 현기증이라 규정한 지속적인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어떤 상태에 이르더라도 종국에는 불안을 조성하고 마는 인간에게 타락하던 타락하지 않던 그 무슨 소용이겠는가. 불안은 생과 같은 것이다. 생과 함께 하는 것이며, 생이 존재하는 한 떨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의 끝은 생의 끝, 죽음이다.
이 전시의 기획은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모티프로 시작되었다. 키에르케고어로부터 불안의 개념을 인식하고, 페소아가 방대한 불안의 기록을 수집했던 것처럼, 우리는 당대의 불안을 수집하기 위하여 5팀의 예술가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안의 다양한 형태를 수집하였다. 이 전시에 수집된 불안들은 우회적이거나 은유적인 방식으로 파편화된 단상, 순간, 기록,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전시의 주제를 완성하면서 다양한 불안의 측면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전시의 주제에 부합하는 ‘수집된 불안’들은 ‘평온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불안이며, 심리적 동요 이상으로 확장된 존재론적 불안, 즉 삶이 존재하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안을 의미한다. 죽음을 직면했을 때 내면에 덩어리처럼 응어리져 조성된 불안, 사회적 시선 속에서 자아를 인식해야 하는 부담감, 사회구조의 비뚤어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위화감, 사회의 시선을 왜 개인은 강요로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질문,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고자 함이다. 이것들은 생이 존재하는 한 우리를 늘 따라오는 불안들이다. 삶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불안이다. 키에르케고어가 주장하듯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無)에서 파생하는 불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의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편안하지 않은가? 이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그것이다. 페소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없이 써내려 간 원고뭉치는 생애에 걸친 불안의 수집본이 되었다. 키에르케고어가 신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을 개념화하였다면, 페소아는 존재로서의 자신의 불안을 일상에서 기록함으로써 이를 실천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이 끝나면서 그의 불안은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의 생은 끝이 나지 않았고, 우리의 불안은 지속된다.
다양한 형태의 불안을 수집하려는 이 전시는 불안의 근원을 쫓는 과정에서, 불안에 둘러싸인 것은 인간이나 불안을 둘러싸는 것은 은밀한 개인의 내면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망으로부터 사회구조와 문화로 확장된다고 여긴다. 즉,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아주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이기도 하고, 존재의 물음이기도 하며, 개인으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는 거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은밀한 내면으로부터 발화된 개인의 불안으로 사적 서사를 만들어 낸 박종호의 회화는 생(生)에 부딪히며 끄집어내어진 것이다. 고통스럽거나 우울하기까지 한 그의 인물화들은 죽음에 직면한 경험의 트라우마로부터 발현된 생(生)에 대한 허무함과 불안함의 표상이다. <어느 시절(Boyhood)>(2017)의 매서운 눈초리, <Attack>(2014)의 지워진 얼굴, <Self-portrait I, II, III>(2013)의 터질 것 같은 붉은 손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표출하는 요소들은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을 잠식해가는 순간마다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워버리기 위해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거나, 얼굴을 뭉개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터져 나오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은 날카로운 눈빛과 붉은 손도장을 찍어내도록 했다. 이것은 슬픈 죽음과 아름다운 생이 불안정하게 교차하고 있음의 증거와도 같다. ‘내 안의 어떤 의심과 불안의 외침이 너무 커져버렸다. 나는 그려진 자신의 귀를 붉게 물들인 손으로 찍어 막았다.’는 그의 노트는 슬픈 죽음과 아름다운 생의 공존 자체가 불안과 공포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종호의 작품처럼 개인의 불안을 조성하는 근원이 은밀한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인간은 이를 극복하여 불안할 자유와 불안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가? 비디오 에세이 <어지러운 자유>(2018)는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에서 수집된 장면의 재구성을 통하여 자유의 현기증을 말한다. 인간 사회의 관계망 안에서 개인의 선택의 자유는 다시 개인에게 사회를 각인시키고, 선택의 자유가 불러온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것은 과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비디오 에세이에 삽입되는 클래식 연주곡 하이든의 <God Save Emperor Francis>는 독일 국가(National Anthem)의 원형이 된 곡으로, 처음에는 독일 국가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었으나, 후에 독일이 하이든의 <God Save Emperor Francis>에 가사를 붙이면서 공식적인 독일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독일 국가의 1절 가사는 제2차 세계대전과 인종차별, 히틀러의 독재를 상징한다고 하여 제창을 금지하고 있다. <어지러운 자유>(2018)는 전쟁 직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독일 여성이 이주민 남성을 선택한 것은 그녀의 자유였으나, 이주민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비난을 견디지 못한 것은 그녀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사회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고, 이 자유의 가능성이 초래하는 것은 인간 존재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상황이다. 불안은 자유에서 생겨난다.
이처럼 개인의 불안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 사회, 문화라는 개인 밖의 시스템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지인의 <자연은 너를 자기 걸작으로 만들고자 했다>(2017)는 다양한 언어권, 문화권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과 격언 가운데, 여성에 관한 문장을 수집한다. 수집된 문장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본래의 문화권에서 벗어나 이곳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은 어떠한 공통점-여성에게 주어진 관념을 강요하고 정형화된 젠더 역할을 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암묵적 합의에서 합의의 주체로부터 배제된 것은 오직 여성이다. ‘걸작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의 주체, 암묵적 합의의 주체는 과거에는 자연이었을지 몰라도 시대에 걸쳐 다른 모습으로 움직일 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주체는 변하지만 대상은 변하지 않았고, 대상은 변하지 않는데 대상에 대한 비유만 변해왔다. 이것은 전지인이 텍스트를 여러 가지 배경 위에 얹어놓는 이유이다. 텍스트가 얹히는 배경은 변해도 텍스트 안의 관념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작가는 텍스트의 배경이 되는 소재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숲이 보이는 너른 창에 입혀진 거대한 문구 ‘자연은 너를 자기 걸작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창 너머 보이는 숲이 사계절을 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유리창에 입혀진 거대한 문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변의 이미지를 왜곡하여 투영하고 있는 은경아크릴 역시 중요한 소재이다. 관람자가 은경아크릴 위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의 존재를 비추어 보아야 하고, 텍스트가 전달하는 불편한 감정을 보는 이에게 동시에 느끼도록 유도한다.
반면 백종관은 이미지의 존재론과 개념의 불안정성이라는 접근법으로 주제에 다가간다. 그는 짧은 인터뷰를 통해 <와이상>(2015)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쫓는 과정에 불안의 정서가 깔리고, <순환하는 밤>(2016)의 수집된 사운드와 이미지, 과격한 픽셀과 같은 도구적 환경이 불안을 유발하며, <양화>(2013)의 매우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앵글 안에는 원초적인 공포(fear)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그의 영상들은 과거의 이미지와 현대적 도구(기술적 도구)를 사용함과 동시에 ‘삶의 파운드 푸티지’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과거에 수집된 자료와 작가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는 매체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의의 속에서 일종의 커넥션을 생성하고 다층적인 유령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의 영상에 깔린 공통된 실험은 개념의 불안정성을 통한 이미지의 존재론이다. 불안, 죽음, 존재라는 단어들은 애초부터 불안정한 단어들이다. 죽음은 종말인가? 아니면 불안의 끝인가? 무(無)의 상태인가? 이것은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논의이며, 어떠한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해석을 유도할 수 있는 문제이다. 백종관의 이 작품들은 영화의 죽음, 이미지의 죽음이라는 선언 앞에서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한 실험을 자신이 수집하고 색인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어떻게 정의내리는 가에 관한 것은 단어가 어떻게 규정되는 가, 혹은 말이 어떻게 불리는 가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해석’의 상황을 어떻게 연출하는 가와 관련된 작가의 개입에 관한 논제이기도 하다.
백종관의 <순환하는 밤>(2016)에서 우리는 디지털 매체가 다시 불러낸 과거의 ‘유령’을 접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의 자료들은 매체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을 현재의 순간으로 만들어낸다. <순환하는 밤>(2016)이 연결하는 것은 ‘지금은 없는’ 과거와 ‘여기에 되살아난’ 현재의 공존이다. 이와 유사한 콘텍스트는 창작집단미러의 퍼포먼스 <그가 살던 집에는 그의 없음이 거주한다>(2018)와 <문을 얻다>(2018)에서 유한한 시간과 영속성이라는 주제로서 발현된다. 작가노트에서 이들은 “산자의 불안은 망자의 존재 없음으로 설명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가 있었던 자리는 텅 비었다가 사라진 존재를 인식함으로서 채워진다. 산자가 망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존재의 상실에 기인한 공통적인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인식하는 자 역시 자신의 유한성을 알고 운명을 수용하는 시점부터는 그의 없음 자체가 소멸이 아니라 ‘그가 없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라고 언급한다. 인간은 존재에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발현되는 불안을 동력으로 하여 죽음을 향해 간다. 소멸과 죽음, 상실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키는 순간 기억과 기록은 현재에 살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기록이 가진 유령성과 마찬가지로 존재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로서 존재한다’.
“인간이 지속적인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온전히 대처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불안으로 어지러움을 느낄 때 마치 술 취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단단하고 안전한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붙잡을 것이 없다면 술 취한 사람이 빗자루 손잡이라도 잡고 버티려 하듯이 우리는 안정감의 환상이라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쇠얀 키에르케고어,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中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은 불안이 가진 양면성이다. 그것은 생이기 때문이다. 불안의 상태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또 다른 불안을 생성하며 모순에 부딪히고, 이 끝없는 순환구조 속에서 인간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의 삶’을 영위할 것이다.
<아마도전시기획상 소개>
아마도예술공간이 주최하는 ‘아마도전시기획상’은 전시기획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전시기획상으로, 전시기획의 새로운 담론과 비평의 확장을 도모하고자 재정되었습니다. 현재 국내 미술계에서 창작활동 지원은 활성화된 편이지만 기획자에 대한 지원은 많이 미흡합니다. 이에 아마도예술공간에서는 전시를 생산함으로써 담론형성에 기여하는 ‘기획자’의 역할에 주목하고, 예술 매개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시기획공모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전시기획상은 전시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는 ‘예술 매개자’로서의 기획자를 양성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나이, 성별, 직업의 제한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열린 기획 공모전 형식으로, 예술적 실험성과 동시대 미술로서의 시의성을 갖춘 전시 기획안을 선정하여 전시를 중심으로 여러 비평가들과의 토론과 피드백을 활성화함으로써 새로운 담론과 비평 형성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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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326-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의 서(書)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