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 초대

 

연상록 초대展

 

 

 

2016. 7. 14(목) ▶ 2016. 7. 27(수)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1053-9번지 1F | T.042-825-7187

 

 

 

 

빛과 어둠이 잉태한 이미지, 재현에서 인식으로

-작가 연상록 근작에 관한 소론

 

글 | 홍경한(미술평론가)

 

1. 빛을 회화 속으로 끌어들여 조형 언어의 일부로 재구성한 이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 자체에 몰입한 인상파가 그랬고, 빛을 통해 입체감이 강조되도록 했던 테너브리즘(tenebrism) 작가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빛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색에 천착했으며, 그 색들은 다시 이미지로 치환되어 사물과 현상에 대한 새로운 감정과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 빛은 흡사 밤하늘 요도성마냥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lumière éternelle)이 되어 현재도 미술사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연상록 작가의 작품에서도 빛은 주요 형상요소로 등장한다. 때론 공기와 호흡하는 빛으로 또 때론 자연 속에 뿌리내린 빛으로 자리한다. 가끔은 바람을 머금은 빛이 되기도 하고, 기억의 단면이 투영된 빛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이처럼 그의 그림 속 빛은 사실주의적 경향과 추상성이 엇갈리듯 교차되며 오랜 시간 그의 화력과 자리를 나란히 해왔다. 그만큼 작가에게 빛은 중요한 작업동기를 혹은 창작의지를 부여했던 셈이다.

이 가운데 기억의 단면이 투영된 빛은 그의 작업 근간을 이루는 중요 원소이다. 어스름을 뚫고 일어선 빛이 어두움과 서로 자릴 바꾸는 새벽녘, 여명 아래 영롱한 공기를 예민한 시선으로 흡수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은 단명(旦明) 속 번지는 일시적 자연 현상을 명암이라는 단순한 방식 아래 피워내는 양상을 띤다. 그것은 분명 구상이나, 굴절시켜 감추어진 시간의 흐름과 응축된 기억의 일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추상성에 가깝다. 특히 우리 눈앞에 비춰진(또는 비춰지는) 외상을 포함해 다분히 서사적인 이미지의 저편을 명징하게 보여주기에 실제의 반영이나 극도의 재현에 머물기보단 작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덧입힌 것임을 고지한다.

따라서 연상록의 작품은 일반적 인지로써 사실주의에 가깝지만 기록의 우월성이나 재현성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는 게 맞다. 그 보다는 작가 자신의 내면적 희구(希求)의 투영, 역광을 통해 다시 한 번 실체를 이해하려는 발상의 전환과 인지된 사물의 표피성을 다차원적 감흥의 세계로 전이시키는 것에 무게가 있으며, 의식으로 받아들여 감각으로 탈바꿈시킨 상호 조응을 통해 미적 완성도를 이루려는 것에 방점이 있다. 결국 그의 작품들은 빛과 명암법에 의존한 채 마치 실사처럼 정교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대립적 표상, 그로부터 빚어지는 다층적 종심(縱深)에 곁점을 둔 회화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2. 연상록의 그림들이 지닌 특징들을 살펴보면, 우선 검은색과 푸른색이 지배하는 작품 <숲, 빛, 바람을 그리다(2012)>는 비록 휘황한 컬러의 향연은 없으나 전이되는 감응은 그 어떤 화사한 색채 못지않은 영향력을 흩뿌린다. 덩어리진 어둠을 조각하는 빛의 산발이 화면을 공기마냥 신선한 향취로 물들일 뿐만 아니라, 분포되어 나타나는 빛을 타고 쏟아지는 숲의 조용한 울림은 낮게 드리워진 시간의 찰나를 나지막하게 녹여낸다.  

<숲, 빛, 바람을 그리다(2012)> 보다 앞서 만들어진 <숲-네 개의 시선(2011)>이나 <숲과 그리고 빛(2011)> 연작은 변모하는 탄지경(彈指頃) 같은 시간을 낚아챈다. 이 작품들은 빛이라는 무형의 실체를 역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의미부여가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몽환적인 이미지들이 얹힘으로써 원형을 갖춘 고유의 자연물에 혼돈과 질서, 개막과 종막 등의 양립된 구조를 개방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우리가 통상 인지하는 건 이 부분으로, 작가는 우리 주변의 여러 풍경 중 하나에마저 특유의 감각으로 정밀하게 고찰한 후 질서를 부여한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것은 리얼리티를 자랑할 만큼 시각적이고 감성적이며 개방적이다.)

그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단색이 주로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깊이를 동반한 신비로운 자태를 머금고 있다는 점이다. 파랑과 검정계열의 한두 가지 색만으로 직조되어 있음에도 다가서는 밀도 역시 낮지 않고, 이는 작자와 타자 간 감성의 교류와 시공의 흔적을 열람케 한다. 특히 어떤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 그것이 단지 존재하는 실제로서만이 아닌 기억의 환류 및 이상적 개념을 병렬적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건 연상록 작가 작품에 눈길을 떼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그려지는 것이지만 되레 ‘그린다’는 재현 행위에서 벗어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화면에서 해체한 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조형성을 구축해가는 것도 그의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자 주목여부를 결정짓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런 관점에선 그의 예술성이 잘 드러나는 <숲-투영> 시리즈도 매한가지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엔 언제나 유년의 기억을 대리하는 무순차성이 놓여있다는 점이며, 순연적이지 않은 배열이 오히려 기율을 구성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눈으로 보기엔 단지 어느 공간에 자리한 자연물과 그 자연물에 덧대어진 빛의 대비 혹은 교호일 수 있지만 실상 그것은 작가만의 조형론에 의해 다듬어진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기억 속 풍경의 일각을 나름의 해석 아래 순환시키며 예술적으로 재창조, 또는 재해석한다는 것에 있다.

 

 

 

 

3. 빛은 드러냄을 가리키지만 빛의 소멸은 어둠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를 화면 속에서 공존-교차시키며 자신만의 예술적 조타를 건축해 간다. 그가 다루는 소재가 비록 일상에서 감지되는 것들이기에 편안한 여운을 전달해 주고, 작가도 관람자도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지만 그 본질은 빛을 타고 흐르는 생동감과 생명성, 아련한 삶의 조타와 맞닿아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어린 시절, 또는 누구나 어느 순간 강하게 전이될 수 있는 일순의 이미지들, 자연의 외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심상의 도화들, 그것에조차 우리들이 공통으로 체감할 수 있는 여백이 이입되어 있다. 마치 깊은 수면 아래 침잠된 채 무한한 빈자리와 채움의 교집합을 드러내는 <내 마음의 풍경을 그리다-투영> 시리즈처럼.

그래서인지 필자는 그의 작품들을 보며 그 어떤 미학적 평가나 복잡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론들보다 자신만의 감성에 의해 거둬지는 독자성에 무게를 둔다. 현실에서 보고, 마주하는/마주했던 단편적 사실들을 내면적 은유와 표현의 직접성으로 접근하고 있음도 읽을 수 있다. 그곳에는 스스로의 삶을 텃밭으로 한 작가만의 내레이션을 넘어 인간 인생 여정 속 체감되는 회로를 쫓는 우리 모두의 보편성이 녹아 있으며 지극히 인간적인 느낌들, 그 대상들에 대한 묵상의 시각이 어느 한 언저리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그의 작품들을 훨씬 편안하게, 관람객들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오는 이유가 되고 있음엔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의 심상을 지닌 객체의 주관적 접근성과 작자의 의도가 보다 더 원활한 양상으로 전개되려면 작가 자신에 관한 집요한 분석과 표현적 역량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표현역량(表現力量)이란 일종의 기법적 세련미(이미 그 능력치는 충분히 검증되고 있다)라기보다는 복잡다단한 작가자신의 생각들, 발상(發想)으로 인한 전반적인 메타포(metaphor)를 더욱 단순화시키는, 일종의 정리를 일컬음이다.

이를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외형에서 내면으로-형상에서 인식으로-설명이나 기술이 아닌 감각, 일순에서 영겁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그것이야말로 무한 증식 가능한 예술세계를 향한 자유의 열쇠를 거머쥠이자 진정한 미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출구가 될 수 있다는 주문과 같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내재적 운율을 자연스럽게 따르려는 심적 전환, 그림 속에 자신조차 녹여내려는 의지, 그로 인해 도출되는 전복의 문제들을 거론해야 비로소 창작의지는 시간의 흐름과 철저하게 비례할 수 있음이다. 그래야만 서사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상상력이 가미된, 감성적인 여백과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고유한 컨텍스트(context)가 보다 가치 있게 천착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초대전은 어쩌면 그에게 또 한 번의 전환점이자 계기로써, 자신의 미적 항로가 어디를 향하는지 일러주는 하나의 작은 나침반으로써 자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연상록 작가노트>

나는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서  어떠한 형식에 의존하진 않는다. '

숲.빛.바람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과 이미지를 화면에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작품은 때론 강렬한 색채와 마티에르를 이용해서  뿌리고, 번지고, 덧칠하고, 찍고, 그리는 과정을 통해서 작품이 이루어지며 또한,

화면에서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제작과정과 대상을 통해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섬세하고, 절제된 조형언어로 작품을 표현할 뿐이다.

 

<숲, 빛, 바람의 숨결을 그리다>, 같은 주제의 작품이지만 작품마다 다양한 내면이 반영

 

"작가는 작품을 표현함에 있어서 자신만의 어떠한 틀에 박혀 있을  생각합니다. 작가는 때에 따라 강렬한 색채를 통해 자연을 표현할 수도 있고 아주 절제된 색채를 통해 자연을 표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변하지 않듯이 그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방법과 색채가 달라진다고 해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달라지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로서의 본질과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드러내는 것. 또한 표현 방법과 색채에 있어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연상록)

 

미술평론가 홍경한, ‘사실주의적 경향과 추상성이 교차된 작품들’

"연상록 작가의 작품에서 빛은 주요 형상요소로 등장한다. 때론 공기와 호흡하는 빛으로 또 때론 자연 속에 뿌리내린 빛으로 자리한다. 가끔은 바람을 머금은 빛이 되기도 하고, 기억의 단면이 투영된 빛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이처럼 그의 그림 속 빛은 사실주의적 경향과 추상성이 엇갈리듯 교차되며 오랜 시간 그의 화력과 자리를 나란히 해왔다.

 

미술평론가 조상영,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숲’의 투영’

작가는 어둠의 덩어리가 어떻게 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년시절 겪었던 숲의 역광이 주는 신비함을 표현하기 위해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점층적인 모노 톤으로 환원시키려는 노력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이 대립들로 인해 선과 악, 삶과 죽음, 긍정과 부정, 낮과 밤 등의 형이상학적 체계가 성립되었듯, 작가가 유년 시절에 자연과 맞닥뜨리면서 겪었던 숲에서의 감동들이 바로 이런 본능적으로 상징적인 자극을 불러 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연상록 | yeon, sang rok

 

한남대학교 회화과 서양화 전공 | 충북대학교 조형예술 일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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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대전시전 초대작가 | 대전미술협회 서양화청년분과 이사, 구상작가회 부회장 | 안산국제아트페어 | 한국미술협회회원 | 전)우송대학교출강 | 한남대학교 회화과 출강 | 롯데백화점출강

 

e-mail | ysr7084@naver.com

 

 
 

vol.20160714-연상록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