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초대전

 

안산 윤현식 展

 

" 생명의 어울림 "

 

 

 

KBS 시청자 갤러리 중앙 무대

 

2016. 3. 30(수) ▶ 2016. 4. 6(수)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13 (KBS본관) | T.02-781-1000

 

 

 

 

생명의 어울림과 변화에 대한 변(辯)

 

아침에 검산(儉山)에 오르면 먼 바다로부터 이부자리보다 부드러운 안개가 펼쳐져온다.

바람에 떠밀린 태양이 주홍빛 한 획으로 경물(景物)을 칠하면 검산의 풀과 나무는 그대로 아침의 양광(陽光)이다.

이떄 생명에 대한 기억과 표현에 대한 욕망은 끊임없이 나를 설레게 하고 자극한다.

그리고 나를 숨쉬게 한다.

나의 벗 모공(毛孔)과 함께 백색의 공간을 거닐면서 그곳에 생명의 구름이 흐르고

생명의 물결이 흐르고 생명의 빛이 흐르기를 또한 갈망한다.

 

 

 

 

 

지난해에는 ‘소나무’를 모티브로 한 개인전을 열었던 안산 윤현식 화백이 올해에는 ‘달 항아리’를 들고 우리 앞에 다가왔다. 윤 화백은 3월 10일부터 30일까지 신선미술관에서 ‘생명의 어울림’ 개인전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성옥기념관, 4월 27일부터 5월 8일까지 전라남도교육청에서 개인전을 진행한다. 윤 화백의 그림을 접한 이지호 신선미술관 관장은 “덤덤한 색채, 소탈한 질감, 수수한 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깊은 잔영을 안겨준다”고 평했다. 보는 이의 마음 깊이 다가오는 그의 작품세계와 작가정신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달 항아리, 사물과 사람이 어우러진 소우주

이번 전시회에서 윤현식 화백이 작품 속에 녹아낸 달 항아리는 우리네 옛 선조 때부터 써온 집기이다. 풍성하면서도 넉넉한 모양새 덕분에 오래토록 사랑받아온 전통도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시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만들어진 백자 달 항아리는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전시된 윤 화백의 달 항아리 작품들은 풍성한 수확으로 넉넉함이 가득한 한가위의 보름달처럼 은은한 정겨움과 포근함이 배어 있다. 윤 화백의 작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만히 그의 달 항아리를 들여보다 보면 산과 대지(大地), 꽃 과 사람이 어우러진 소우주가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흙과 돌, 나무 등 모든 사물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고 있다”며 윤 화백은 ‘생명의 어울림’이라는 주제를 설명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던 달 항아리를 활용한 거예요. 거기에다가 우리의 서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편안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색감으로 표현해 내고자 했습니다.”

 

물론 몇몇 작품에서는 빨강과 파랑, 노랑의 강렬한 원색적 느낌을 엿볼 수도 있다. 흥겨운 농악놀이나 산뜻하게 만개한 꽃들이 가득한 작품에서는 대중과 소통하려는 고뇌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진다. 그러다가도 조선 백자와 같이 청초한 회백색을 배경으로 선 하나를 이용해 풍성하면서도 포근한 여인네를 명쾌하게 그려낸 작품에 이르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윤 화백만의 깐깐한 작가정신을 느낄 수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내는 화가

윤 화백은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색감이나 모든 표현 양식들이 동양화와 맞닿아 있다. 윤 화백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흔히들 동양화하면 먹으로 대비되는 무채색의 그림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3세기경에 제작된 고구려시대 고분벽화가 이미 채색이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서양화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는 채색에 대한 풍부한 경험치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예술 활동에 있어서의 핵심은 표현양식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천재화가들을 보더라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천재적인 낙서화가인 장 미쉘 바스키아는 27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했으나, 지하철이나 거리의 지저분한 낙서를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피카소의 그림도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내 아이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하지만, 그런 단순한 화풍을 만들기 위해 피카소 스스로가 엄청난 노력과 고뇌의 과정을 거쳐 그만의 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절에 틀어박혀서 작품 활동을 한다면 자신의 색깔을 낼 수 있을까?

 

윤 화백은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예술이란 절에 들어가서 혼자 파고든다고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윤 화백의 지론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로 작품을 낸다고 해도 누군가 이미 만들어 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절에 틀어박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을 배워나가고 나만의 발상, 나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고 윤 화백은 강조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열정을 쏟아내어 나만의 발상을 담은 창작이라는 울림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공부와 철저한 자기파괴

윤 화백은 “나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와 철저한 자기파괴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윤 화백은 “화가로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이우환 선생이 그림을 그리려면 수레 3개 분량의 책을 보고 그려라”고 언급한 것처럼 화가라면 세상의 지식을 쌓는데도 부지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10여명의 제자에게 서양화를 가르치고 있는 윤 화백은 제자들을 지도할 때면 과거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발상이나 표현방법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알려준다.

 

이런 윤 화백의 교육방식을 알게 된 목포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다 줘버리면 자네는 뭐를 갖고 쓰려고 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화백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줌으로써 새로운 나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 스스로가 이전의 작품세계를 못 벗어나면 생명이 끝이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며 비워버리고 저는 다시 한 번 작품구상에 목 매달게 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제가 살아가야 하니까요.” 나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한 윤 화백의 철저한 자기파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린애의 심상으로 작품 그려내

이번 전시회에 발표된 작품들을 보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오리가 그려진 작품에는 오리의 깃털이 사람의 형상으로 숨어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물고기가 담겨있는데 물고기의 비늘이 사람의 형태이다. 이처럼 윤 화백의 작품 속에는 곳곳에 어린애 같은 발상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화가가 되려면 어린애가 되어야 한다”는 윤 화백의 설명과 일치한다.

 

그는 “어른이 되면 창작을 하지 못한다”며, “마음속에 어린애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화백은 “작품하는 사람은 남들이 볼 때는 게을러야 한다”는 다소 생소한 발언도 했다. 365일 작품에 매달리면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지만, 실제로는 그런 화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매일하던 작품 활동에 즐거움을 가졌으니 지금까지 구현해 보지 못한 작품의 제작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화백은 ‘놀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골에서 담쌓던 작업의 과정을 설명했다. 담을 쌓는 담쟁이들은 한 번에 쌓지 않는다. 이 전에 쌓은 하단부가 아직 굳지도 않은 상태로 계속 상단부의 담을 쌓게 되면 쉽게 무너져 버리게 된다. 그래서 시골의 담쟁이들처럼 화가들도 놀 때 놀아야 한다는 윤 화백은 정신을 쉬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마치 한가로이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가 물밑에서는 쉬지 않고 물질을 해대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이처럼 어린애 같이 순수한 심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윤 화백의 기백에서 그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예술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15

 

 

 

 

 
 

안산 윤현식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목포 미술협회 지부장 | 한중 국제교류 정예작가회 회장

 

 

 
 

vol.20160330-안산 윤현식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