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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조 展
" 明 "
서학동사진관
2015. 10. 31(토) ▶ 2015. 12. 3(목) Opening 2015. 10. 31(토) PM 4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 T.063-905-2366
明 明이란 명제로 전주 서학동 사진관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 나는 불교의 사찰 어느 한적한 모퉁이에서 만날 수 있는 부도(浮屠)를 주제로 한 사진 작품을 발표한다. 어느 사찰이건 사찰 곳곳에는 법당이나 석탑 같은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불교의 정신세계와 세계관을 나타내고, 종교적 염원을 드러내기 위한 표상으로 세워져 있으며, 그 외관은 다양한 장식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이것을 장엄이라 하며, 장엄은 단순히 겉을 치장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장식 하나하나 마다 불국의 이상세계를 엄숙하게 구현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부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부도는 불가 승려의 묘탑(墓塔)으로서 삶과 죽음을 기하학적으로 상징한 돌로 만든 조형물이다. 불가에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우주의 요소들이 어떤 인연으로 모여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분해되어 우주로 환원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사찰을 방문하여 부도를 만나면 경건한 마음과 태도를 갖추게 된다. 무덤을 만나게 된 외딴 곳이라는 장소적 상황에다 불가의 무상, 무아의 논리로 설명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에 관한 상념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리라. 이번 개인전은 그 상념에 관한 미적 탐구이다. 요즈음엔 삶과 죽음에 관한 거대담론은 찾기 어렵다.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어쩌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홍수처럼 떠다니며, 오랫동안 쌓아 왔던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거리에서 회자되는 정체불명의 정보와 담론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일상을 피해 교외의 한적한 산사를 거닐 때나 도심의 박물관 나들이에서 조차 불쑥 불쑥 만나지는 삶과 죽음에 관한 대서사를... 개인전 날짜를 잡고 나서, 오래전에 설악산 화채봉 너머 둔전 골에서 마주친 진전사 터의 부도가 생각났다. 한 겨울의 고된 산행 뒤에 만난 그 부도는 폐사되어 절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황량한 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부도는 거의 원형이라 불러도 될 만큼 손상 없고 깨끗했다. 힘든 산행 끝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초라한 상태인 나와 내 동료들이, 을씨년스런 폐사지에서 보게 된 깨끗하고 완벽한 상태의 부도! 달리나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그 부도는 오랜 세월을 그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그곳에서 그때 막 태어난 것 같았다. 생명력이 느껴졌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라는 메시지라 여겨졌다. 그때의 기억은 내 의식 속에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부도는 각 선문의 수행제자들이 그들의 조사(祖師)나 선사들이 입적한 후 그들을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세우게 된다. 따라서 부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불교 신앙체계와 수행 승려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여야 한다. 불가 선승 백장회해의 다음의 말은 수행자들이 깨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마음 목석과 같아(미동도 없어서), 분별하는 곳 없이(어떤 사물도 분절하는 것 없이), 마음에 다니는 바 없이(일어나고 사라지는 사념의 움직임이 멈추고), 마음이 허공과 같아지면 지혜의 태양(진여의 태양) 저절로 나타나는데, 구름 걷히고 해가 나오는 것과 같구나.”*
어느덧 나는 부도전에 도열해 있는 하나하나의 부도들에서 산사 한적한 곳에 자리 틀고 용맹정진 하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전등(傳燈)이다.**
2015년10월. 이 상 조
*이즈쓰 도시히코, 박석 옮김, ‘의식과 본질’ 위즈덤하우스,2013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세상을 안다는 뜻의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는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 知는 명(明)이다. 내가 나를 밝혀 무욕하게 함이 明이다. 불가에서는 전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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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51031-이상조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