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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코포니11 Cacophony Xl 展
김민지 | 김진희 | 김효진 | 백승훈 | 정혜인
상자를 열어보는 사람들_single channel video, 3’12”_2015
Gallery Bundo 갤러리 분도
2015. 8. 24(월) ▶ 2015. 9. 12(토) Opening 2015. 8. 24(월) PM 6 대구광역시 중구 동덕로 36-15 | T. 053-426-5615
5102_47×47cm_견에 채색_2015
Cacophony Xl
일 년을 주기로 벌어지는 카코포니Cacophony 프로젝트가 또 다시 가동된다. 여기, 카코포니에 모인 작가, 좀 더 말을 좋게 하자면 선정작가들은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그들 미래의 불확실성이 거두어졌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한 기회가 갤러리 분도 이외에 더 생겼다는 것 또한 미술계 전체에 대한 순기능이지, 이들 청년작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안은 못된다.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예술가의 생애에 펼쳐진 험난한 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도 아니고, 아무나 완주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 길을 기꺼이 걸으려고 하는 다섯 명의 작가를 출발선에 모아서 다독인다.
무릇, 평면 회화에 쓰이는 물감의 특성에 대해 논하자면 지극히 많은 레퍼런스가 있어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캔버스에 풀어놓은 물감을 볼 때마다 늘 생각보다 느낌이 앞선다. 무정형의 유기체가 캔버스 위를 휘젓듯, 그 색과 면은 내 이성을 마비시켜 혼돈 속의 질서를 이끌어낸다. 화가 김효진의 평면 작업을 마주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다. 각자가 주인공인 것처럼 나머지를 종속시키며 배척하는 색들의 다툼 속에서, 이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침투하고 웅크리길 반복한다. 조신한 대상들 틈에 던져진 물감은 천진난만한 파격을 내세우며 전체를 구성한다. 이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단지 정물화(still life) 혹은 일상의 스케치일 수도 있다. 김효진은 작품에 소용이 닿을법한 세밀한 기교나 숙련도만큼 자신의 인지적인 감각에 기댄다. 캔버스 앞에서 작가가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녀는 솔직해지길 원한다. 그 모습은 마치 전승되어온 방법만을 고집하는 중세의 마스터들처럼 굳건한 고집이다.
정혜인의 사진은 ‘주변을 응시하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가장 친숙한 주변이 새삼스레 낯설게 보이는 순간을 짚어낸다. 사실 이런 행위는 사진가라면 누구에게나 별난 일은 아니며,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다 카메라 셔터를 눌리는 일반인들에게도 일상의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현상학적인 시선의 배려다. 작가가 보기에 뭐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피사체야말로 그녀가 살면서 자각하는 이 현재의 순간이며, 여기 이 공간이란 점이다. 작가는 자신의 지평 속에 포함된 익숙함을 느리게 환기한다. 바쁜 도시를 유유자적 돌아보던 현대 초기의 만보객처럼, 시간의 확장 속에 새롭게 바라보는 사물은 색다른 이미지로 다가선다. 설령 그것이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채는 스펙터클을 결여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공감능력을 가진다면 정혜인의 사진은 그것만으로 현실 속의 대안적인 기록으로 의미를 충분히 가질 것이다.
Funky 2_45.5x38cm_oil on canvas_2015
백승훈의 작업 방식은 참 다양하다. 우리가 미디어아트라는 영역으로 묶어서 생각하는 영상, 사진,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하여 그는 자신이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방법을 시도한다. 당연히, 작가는 그걸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이 미디어를 차갑거나 따뜻한 두 개의 성질로 나누었듯, 또한 1990년대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역설이 연상되기도 하듯, 백승훈의 작업은 정보의 일방적인 전송 대신 관객의 피드백을 모두 수용하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따뜻한 감성의 테크놀로지를 욕망한다. 물론 쉽진 않다. 이는 미디어아티스트들에게는 일종의 낡은 선언문처럼 설정된 이상일수도 있고, 그 방법을 실현시키는 과정 자체가 거칠게 드러나며 미술 그 자체가 가지는 효용과 맞부딪히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 이 문제의 궁리 끝에 나온 개념은 ‘그림자’다. 귀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 단 여기엔 빛이 필요하다.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된 그림자가 백승훈의 미디어아트의 중심에 드리운다. 태양 빛 아래의 그림자, 밤의 등불 아래 그림자, 실체를 알 수 없는 어렴풋한 그림자. 작가는 그 속에서 모성을 그리워하며 또한 이 세계를 조망한다.
김민지의 작업에는 시놉시스가 등장한다. 동화를 읽는 듯한 아이의 읊조림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상자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게 궁금한 나머지 열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맞다. 이건 판도라의 상자를 비틀어 은유한 것이다. 열어보기 전엔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비밀의 상자는 그 비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달콤한 보상을 약속한다. 이 장면의 대척점에서, 상자를 열고 확인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결과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와 다른 결론을 이끈다. 이는 부조리한 현실의 이야기다. 여러 문제가 당위론의 관점에서 지적되긴 쉽지만, 해결은 불가능한 사회의 모습은 일종의 딜레마로 제시된다. 과학은 통계학과 의사결정이론을 통하여 이런 상황을 그 자체가 해결이 안 되는 모순이라고 가정한다. 오직 뚜렷하게 밝힐 수 있는 건, 문제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다. 여기에 예술이 다가설 여지는 충분하다.
나는 김진희의 작업을 처음 접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그림은 유명한 외국의 작가가 그린 도상을 떠올리게 했다. 신진 작가에게 이건 설탕이 발린 독이 될 가능성이 커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로 생각하면, 김진희의 작업에는 그 속에서조차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있을 법하다. 한 명의 관객의 입장에 선 나는 깜찍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의 군상 속에 서려있는 작가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카코포니에 공개된 작업은 내가 처음 본 그 그림들과 너무나 멀어져 있다. 눈에 익숙한 그림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해고되었고, 뭉툭하게 생긴 괴 생명체가 사바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그 피조물이 지나치는 흔적은 곧 그동안 작가가 고민해 온 흔적이다. 자신의 진실된 면을 뒤집어 보여주는 이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화가 김진희가 언젠가 받아들일 그 결과는 카코포니에 출품한 모든 작가들에게도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다. 예술가가 창작에 몰입하는 순간은 자신과 현실을 비우는 과정이다. 정당한 평가와 보상체계가 무색할 만큼 중독성을 지닌 창작 과정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더 큰 위안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김지윤, 갤러리 분도 수석 큐레이터)
shadow#2_reflect sunlight on the scene(00:03':17")_Berlin_2015_Video Editing Seunghoon Baek
매우 익숙하고 낯선_Untitle 03_65.3x80cm_Pigment print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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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50824-카코포니11 Cacophony Xl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