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렬 展

 

" Slow-Drawing "

 

Figure Project_earth#42(1,2)_Pigment Print_each 100x80cm

 

 

BMW Photo Space

 

2015. 6. 5(금) ▶ 2015. 7. 22(수)

Opening 2015. 6. 12(금) PM 6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9 | T.051-744-3924

 

www.bmwphotospace.kr

 

 

 

Figure Project_earth#19_Pigment Print_80x100cm_2013

 

 

영도의 영토

 

박형렬의 사진은 인류의 바탕이자 원천인 대지를 기록한다. 그것은 자연에 바치는 헌사이자 문명에 대한 반성이다. 그의 사진은 대지를 추상화한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이번 전시 <Slow-Drawing>(2015.6.5~7.22 | BMW Photo Space)에서는 주로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조감도의 시선으로 대지를 포착한다. 박형렬의 대지를 향한 시선은 풍경이란 관습을 재해석하면서 자연과 문명 사이의 갈등을 미묘하게 대립시킨다. 그렇다고 그의 사진이 ‘하늘에서 본 지구’와 같은 낭만적인 시선도 아니고,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같은 절대주의적 시선도 아니다. ‘하늘에서 본 지구’ 방식의 다큐멘터리가 자연과 문명이 교차하는 지구의 삶을 풍요롭게 묘사한다면 절대주의 미학의 시선은 문명화된 도시를 공중에서 응시한다. 절대주의자의 시선은 세상의 모든 것을 기하학적 기계미학으로 환원한다.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조형적으로 번역되었다. 이는 예술가의 시선의 방향과 위치가 곧 세계를 인식하는 시대의 지배적 사상임을 알려준다.

 

박형렬의 사진 속에는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대지미술, 개념미술 등 다양한 미술의 매체와 방법론이 혼재한다. 초기 사진 프로젝트인 ‘포획된 자연’(2010-2012)부터 이번의 ‘Figure Project’(2015)까지 그는 자연을 주목하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주제이자 질문이며 모든 사진의 바탕이자 질료이기도 하다. 미술사에서 풍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장 급진적으로 행해진 것은 바로 대지미술의 등장으로 비롯되었다. 1960년대 영미권의 대지미술은 미술관 제도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 미술의 만신전이 되어버린 현실을 거절하기 위해 자연을 창작의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작가들의 태도에는 풍경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재해석하려는 의지도 포함되었다. 절대적인 자연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재현하는 대신 매체로 전환된 자연이라는 개념적 설정은 미술의 오랜 관습을 깨트리려는 저항정신의 표출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문명화된 예술과 예술의 질료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표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예술을 보존하는 박물관학적 전시 방식의 거절을 통해 미술에 대한 원론적인 변화가 모색되었음을 증명한다.

 

 

 

Figure Project_earth#21_Pigment Print_120x150cm_2013

 

 

대지미술과 포토-다큐멘테이션

 

이러한 저항적 행위의 배후에서 사진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대지미술이 갖는 장소-특정적 성격은 이른바 미술관의 전시물로 환원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소멸 가능성, 일시성 때문에 사진의 존재는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다. 여기서 사진은 작가가 자연과 교감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과정을 기록하게 된다. 이미 동시대 미술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 다른 규범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미술의 흐름이 결과에서 과정 중심으로 이행하게 된 원인과 이러한 변화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지미술, 퍼포먼스 등은 시각예술이 공간과 물질에 의해 구성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고, 이러한 새로운 접근은 과정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체험의 흔적을 요구하게 되었다. 사진이 갖는 기록성은 결과적으로 과정이라는 시간성을 포함하기에 물질과 공간이라는 차원에 하나의 차원을 덧붙이는 기제가 된다. 여기서 사진의 역할은 보조적인 수단을 넘어 새로운 작업과 전시의 형식을 만드는 중요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미술 패러다임이 예술작품에서 예술 다큐멘테이션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유일한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대신 재생산이 가능한 사진과 텍스트로 만드는 다큐멘테이션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정치학’(biopolitic)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정치학이란, 스스로 만드는 삶의 서사를 의미한다. 현대미술에서 과정을 기록?전시하는 행위는 주어진 신화적 전형의 바깥에서 예술이 생성되는 과정을 소개하기에 정치학적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형렬은 대지미술이라는 장치를 바탕으로 자연이 풍경이라는 개념으로 이동하는 궤적을 실험한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기둥을 박는 폭력적 개입은 작가가 풍경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이다. 풍경이란 인간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공화된 자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과거 대지미술가들이 관료화된 미술제도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시적인 설치와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문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신화를 만들겠다는 야심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대지미술의 표상을 선택한 박형렬은 오히려 동시대 한국인이 갖는 ‘땅’이라는 관념에 주목하는 듯하다. 사각형의 틀 안에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새긴 ‘포획된 자연, 땅 #9, 2012’ 작품의 경우 10평이라는 크기를 대지미술적 형식을 차용해 땅에 대한 맹목적인 사회적 욕망을 개념적으로 제시한다. 이후 2013년의 설치 작업은 ‘포획된 자연’ 시리즈 이면에 존재하던 암시적인 질문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그는 레지던시 입주기간 중에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화분에 관심을 갖는다. 오늘날 화분은 자연의 일부라기보다 인공적으로 배양된 사회문화적 산물에 가깝다. 단순히 실내를 꾸미기 위한 장식품부터 자연의 일부이자 생명을 기르는 기쁨까지. 화분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일 것이다. 버려진 화분을 레지던시 주차장 가운데에 모아 실제로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조용한 시위, 2013’는 ‘포획된 자연’이 어떻게 소비되고 파괴되는지를 선언하는 일종의 상황주의적 사보타주로 ‘Figure Project’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작업이다.

 

 

Figure Project_earth#18_Pigment Print_80x100cm_2013

 

 

장소의 바깥

 

‘Figure Project’는 버려진 화분에서 발견한 자연과 문명 간의 부조리를 영토로 확장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대지미술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일종의 영토의 개념을 제시하는 듯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견고한 무대를 연상시킨다. ‘포획된 자연’이 자연이라는 배경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포착한 사진이었다면 ‘Figure Project’는 나스카 라인과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선과 도형들로 전미래적 세계를 시각화한다. ‘Figure Project, Water #3. 2013’ 작품은 마치 포토콜라주를 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데, 호수 가운데 마름모형의 철판으로 구조물을 세운 뒤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말레비치를 연상시키는 흰 바탕 위 검정색 도형과 흰색 천으로 대지 위에 선을 긋는 퍼포먼스 작업은 마치 땅따먹기 놀이를 하듯 대지 위에 영토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박형렬의 지난 작업에서는 조각적인 성격이 부각되었던 반면 이번 작업에서는 평면 회화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원근법을 없애고 지도를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접근은 전작이 대지미술의 표상에 많이 의지한 것에 비해 서서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특히 영상 작업은 자연/대지가 인간/존재의 개입으로 포획되고 ‘영토화’되는 과정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사실 대지미술은 자연에 대한 사실주의적 재현이나 낭만주의 식의 숭고미를 벗어나 실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으로 땅과 자연을 선택했다. 자연과 대결하는 웅장한 대지미술 이외에도 문명을 벗어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체현한 리차드 롱, 대지와 여성의 관계를 연결한 아나 멘디에타의 퍼포먼스, 도시 속에 개입하는 참여예술가 고든 마타-클락, 누보 레알리즘의 선언적 해프닝을 벌린 이브 클랭, 도시의 요소를 레디메이드로 상정한 에드 루샤의 포토-다큐멘터리까지 대지예술의 범위는 개념미술, 여성주의, 행위예술, 사진 등 매체와 형식을 아우른다. 1960년 이후 서구미술이 실재를 소환했다면 21세기 동시대 시각예술은 생산과 소비 간의 균형이 무너진 세계화 시대의 실재란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중이다. 자연으로서의 대지와 사회적 욕망으로서의 토지 사이의 심리적 갈등에서 비롯된 박형렬의 수행적 사진(performative photography)은 대지와 미술, 그리고 사진이 만나는 접점에서 출발한 후 물질로서의 자연을 만난 뒤 현재는 대지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영도의 영토’(비장소)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정현(미술비평)

 

 

Figure Project_earth#29_Pigment Print_80x100cm_2014

 

 

 

Figure Project_earth#25_Pigment Print_144x180cm_2014

 

 
 

박형렬 | Bak Hyongryol

 

2012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M.F.A) 졸업 | 2009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개인전 | 2013 《Remake : Revisit The Captured Nature_조용한 시위》, 경기창작센터.共:作, 경기 | 2013 《Invading Nature》, 송은아트큐브, 서울 | 2011 《The captured nature》, 갤러리 온, 서울

 

단체전 | 2015 《송은아트큐브 작가전》, 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 2014 《장면의 재구성 #2》,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 2013 《Space Invaders》, Space K, 대구 | 2013 《그 작가의 실험실》, 아시아문화마루, 광주 | 2013 《Slow art》, 갤러리 소소, 경기 | 2013 《어린이 꿈★틀》, 경기도미술관, 경기 | 2013 《Re-Photography》, 갤러리 네모, 서울 | 2013 《뉴 히어로16》, 갤러리 네모, 서울 | 2013 《어느 봄날에》, 동탄아트스페이스, 경기 | 2012 《야외미술프로젝트-Nature》, 모란미술관, 경기 | 2012 《제13회 사진비평상 수상전》, 이앙갤러리, 서울 | 아르토갤러리, 대구 | 2011 《서울-파리, What do You think about Nature? 》, Galerie89 쿤스트독 프로젝트, 파리, 프랑스 | 2011 《Testing the water, Showroom Arnhem》, 아르헴, 네덜란드 | 2011 《제33회 중앙미술대전》, 한가람미술관, 서울

 

수상 및 레지던시 | 2013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 2012 송은아트큐브 전시지원 선정, 송은문화재단 | 2012 28th International Online Artist Competition First Prize, Art Interview Online Magazine, 독일 | 2012 월간 퍼블릭아트 선정작가 대상 공모 대상수상, 월간퍼블릭아트 | 2012 제13회 사진비평상 작품상 수상, 포토스페이스 | 2012 'Belt' 사진부문 최우수작가 선정,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 2011 제33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중앙일보

 

작품소장 | 2012 서울시립미술관

 

 

 

vol.20150605-박형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