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철 展

 

제24회 오만철 도자화전

 

"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 "

 

저녁노을_112×57cm_백자도판1330℃환원소성_2015

 

 

아라아트센터

 

2015. 5. 20(수) ▶2015. 6. 2(화)

Opening 2015. 5. 20(수) PM 6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9길 26 | T.02-733-1981

 

www.araart.co.kr

 

 

 

설악산의겨울_112×57cm_백자도판1330℃환원소성_2014

 

 

오만철 도자화전에 부쳐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

 

도자화에 닿기까지

 

오만철은 화가이면서 도예가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도예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색다른 경력은 자신이 빚은 도자기에 남다른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도자기 그림은 여느 회화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도자기의 살갗이 그리는 화재의 몸으로 변용되는데 따른 맛과 매력이 특별하다. 세상의 어떤 조형 매체가 도자기의 질감과 색감을쫓아 오겠는가.

도자기에 그려지는 그림만큼은 붓질이 아니라 불질에서 마감된다. 흙을 조물하여 숨결을 불어넣는 조물주의 창조행위에 버금갈 도예는 불의 끝에 닿아 완성되는 불의 예술이다. 가마 속 불은 흙과 유약과 안료의 분자 구조를 도자기의 그것으로 소성하여 도예가에게 태초의 창조 기쁨까지 안겨준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거듭하면서 오만철은 선배 화가나 도예가들이 겪어보지 않은 갈등에 번민한다. 그것은 기존의 전통 도자화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도공이기 이전에 화가인 그로서는 도자기 조형작업 못지않은 열정을 도자기 그림에 쏟아왔다. 그 장르에서는 독보적이라는 평가도 얻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그 도자기 자체의 이미지와 거기에 그려진 그림의 이미지가 서로를 받쳐주며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제하며 충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자기의 조형이 빼어나면 빼어날수록, 또한 그림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사로잡으면 사로잡을수록 이미지 충돌에 의한 반발감은 더 커졌다.

도자기보다 그림에 태생적인 애정을 가졌기에 도자기 그림에서는 그림보다 도자기가 상위 개념이라는 것이 불만스러웠을 법하다.

그렇다면? 그림을 도자기보다 상위개념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케 했다.

그리하여 도자기의 형태를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도자기는 작업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 다시 말해 수단의 자리로 내려온다. 도자화를 도자기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모색은 도판을 캔버스로 쓰는 결론에 이른다.

어떤 조형적 선입견을 주는 초벌구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화선지처럼 평평하게 펴진 도판에다 그림을 그리게되며 도자화의 새 지평을 열게 된다.

 

 

눈길 I 112×57cm (백자도판1330℃환원소성) 2015

 

 

중국 경덕진에서 작업하기 까지

 

오만철은 창작에너지가 넘치는 작가다.

20년째 일년에 한차례씩 개인전을 열 정도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그 개인전에서 도판화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도자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보겠다는 야심을 감추고 있는 그 도판화들은, 그 야심이 워낙 컸기 때문인지, 성에 차지 않았다.

작가는 도판이 화선지처럼 수묵의 농담과 번짐까지 고스란히 받아내 내면의 정신을 드러내는 도자화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실험을 거듭해도 화선지만한 포용력과 감수성을 지닌 도판과 만나지 못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모든 청화백자의 본향인 중국 경덕진으로 눈 돌리게 만들었다.

-여기라면 내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경덕진은 천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만철을 맞아주었다.

그곳 흙 (여기 흙이야말로 진정한 고령토다. 경덕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서성 고령산에서 출토되는 흙이 고령토다. 중국정부는 자국 고령토의 해외반출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고령토를 쓰려면 중국으로 가야만 한다) 과 가마와 안료의 조합이 오만철의 비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먼저 흙; 고령토의 부드러운 입자는 화선지보다 착색이 잘될 만큼 예민한 감수성 덩어리였다. 그 조밀한 밀도는 물 스미듯 작가의 붓질로 입혀지는 안료들을 불길 도움받아 도판의 세포 하나하나로 끌어들여 색이 스며들고 배어나게 만들었다.

이 스밈과 배어듬은 작가에게 그림의 농담을 맘껏 주무를 자유를 주었다. 이런 도판이라면 필력의 기운생동과 여백정신을 제대로 받쳐줄 것 같았다.

 

다음으로 가마; 가마는 불의 집이다.

고령토 도자기 본연 (오만철이 도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찾아헤매던 바로 그)의 질감과 색감을 살려내려면 가마 온도를 1330도 넘게 올려야한다. 그 고온이라야 안료는 고령토에 제본성을 온전히 내려 놓으며 소성된다.

가마의 크기 또한 중국다왔다. 국내 가마가 소화할 수 있는 도판은 크기에 한계가 있다. 중국가마의 어마어마한 크기는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과 기량의 크기를 묻고 있었다.

크기에는 아무런 구애됨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한(漢)대에 시작되어 2,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덕진은 그 명성에 걸맞는 기술력과 스케일로 오만철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료; 처음에는 우리 가마에 맞는 안료를 썼다. 하지만 결과는 무참했다.

전부 뒤틀리고 타버리고 엉겼다. 1250도의 화도에 맞게 생산된 안료여서 1330도의 고열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 다. 그는 중국안료를 구입하여 독자적으로 개발연구하고 실험 했다.

안료를 가마온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물조절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깨쳤다. 안료마다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그 농도 차이를 찾아 내자 자신만의 색이 도판들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경덕진에서 찾아낸 색은 예술사를 빛낸 어떤 색과도 다르다.

그는 예술사의 어떤 화가나 도공들이 걸어가본 적이 없어 낯선 색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감격에 휩싸였다.

아울러 여태 누구도 말해본 적이 없는 색의 언어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되었다.

이 도자화를 처음 본 순간의 나는 그가 찾아낸 색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주고 싶다는 충동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색들은‘색과 계’의 경계를 넘어 내게로 나비처럼 날아왔다.

 

 

청산도(靑山島)_79×33cm_백자도판1330℃환원소성_2014

 

 

오만철의 이름에는 오만가지 상념이 점철된다.

오만년 전 철기시대의 사내.

남들은 먹고 자고 하고 싶은 본능과 씨름질할 때, 쇠끝 하나 쥐고 동굴 암벽 속에서 들끓는 불덩어리 하나를 새겨 놓아야만했던 그 사내의 오만과 철학과 표현본능을 떠올리게하는 이름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도공으로 변신해서는 철기시대의 기억을 되살려 도자기에 불멸의 이름을 새겨 넣는 사내.

끝내 도자기의 형태를 허물고 도판을 캔버스 삼아 자신만의 색을 오만년 만에 찾아내고서 막걸리 한사발 벌컥벌컥 들이키는 사내.

덤프트럭처럼 투박하면서 덤프트럭처럼 변명하지 않는 사내.

아무도 가보지 못하고 아무도 만나보지 못한 그 색을 찾아내서 조용히 이름을 불러 주고 있는 사내.

한없이 투명하고 한없이 탄탄 하고 한없이 매끄러워, 우리 속에 있었지만 여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정신을 보여주는 사내.

도자청색 Ceramic Blue, 도자노랑 Ceramic Yellow, 도자빨강 Ceramic Red, 도자초록 Ceramic Green, 도자 갈색 Ceramic Brown 도자검정 Ceramic Black ...... 등등의 도자색Ceramic Color들이 눈부시게 관계 맺는 황홀경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사내.

잎 다 떨군 나뭇가지 끝이 아무리 추위에 떨고 있어도 몇 달 뒤면, ‘산수유와 개나리와 목련과 매화와 벚꽃이 미친 듯 피어날 것이니 이 겨울들 함께 견뎌내자’는 어느 사내의 약속을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 타고 남은 재속에서 영혼을 맑게 갈고 닦은 어느 고승의 사리가 빛난다. 우리 앞에 놓여진 이 사리들은 어느 영혼의 다비에서 태어났기에 이토록 눈부신가! 그 영혼의 집이었던 육신과 이 사리 사이에 잠깐 다녀간 불길의 심장은 또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처럼 흙을 태워 영혼의 사리로 바꿔놓을 만큼 뜨거운 불길을 토하는 사랑의 가마가 있으니, 가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 막아 피눈물 쏟게해도 인생이란 살아 가볼만한 게 아니겠나, 고 말 건느며 축쳐진 어깨를 다독이는, 불도저 쇠삽같이 두툼하고 따뜻한, 한 사내의 손길을 만난다.

 

박인식 | 소설가. 미술평론

 

 

계곡_112×31cm_백자도판1330℃환원소성_2014

 

 

진달래향기에젖어보다_112×57cm_백자도판1330℃환원소성_2014

 

 
 

오만철 | 吳萬哲 | OH MAN-CHUL

 

1963. 全南谷城生 | 서울 城南高等學校卒業 | 弘益大學校美術大學東洋畵科卒業 | 檀國大學校大學院陶藝科卒業 | 京畿大學校大學院古美術鑑定學科卒業

 

個人展 | 第01回個人展(東昊갤러리 企劃, 서울) | 第02回個人展(갤러리 서호, 서울) | 第03回個人展(갤러리 서호 招待, 서울) | 第04回個人展(文藝振興院美術會館, 서울) | 第05回個人展(한국갤러리 招待, 서울) | 第06回個人展(日本후쿠오카 애안 市民갤러리 招待, 일본) | 第07回個人展(日本후쿠오카 아시아 美術館, 일본) | 第08回個人展(갤러리 서호 招待, 서울) | 第09回個人展(日本후쿠오카 시립 美術館, 일본) | 第10回個人展(롯데 화랑 招待(安養, 서울) | 第11回個人展(가산화랑 企劃, 서울) | 第12回個人展(토마도갤러리 招待, 서울) | 第13回個人展(단원美術館, 안산) | 第14回個人展(기타큐슈컨벤션센터, 일본) | 第15回個人展(카라아트갤러리, 호주) | 第16回個人展(세택展示館, 서울) | 第17回個人展(朝鮮日報美術館, 서울) | 第18回個人展(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 第19回個人展(인사아트센터, 서울) | 제 20回個人展(아티갤러리 招待, 서울) | 제 21回個人展(인사아트센터, 서울) | 제 22回個人展(409갤러리招待) | 제 23回個人展(새경대학교 박물관招待) | 제 24回個人展(아라아트센터招待, 서울)

 

기타초대전, 기획전, 그룹전 220여회 출품

 

현재 | 세종조형연구소장 | 서원대, 홍익대 출강 | 유연회 | 시연회 | 시공회 | 미협 | 정글프로젝트회원

 

E-mail | manchulkr@naver.com

 

 
 

vol.20150520-오만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