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연 展

 

" 구름의 말들 "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40cm_2015

 

 

갤러리 담

 

2015. 5. 12(화) ▶ 2015. 5. 25(월)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7-1 | T.02-738-2745

 

www.gallerydam.com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50cm_2015

 

 

겨울 숲은 황량했다. 숲은 아직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자연적으로 고사한 나무 기둥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새들의 보금자리였다. 나는 이름 모를 고목의 뿌리둥치에 쭈그려 앉았다. 가지들 사이로 비죽 드러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생을 온전히 소진시킨 나뭇잎들. 가을의 여울목을 휘돌아 퇴색되어버린 선홍의 빛깔을 토해내며 땅의 미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나는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 이파리들 중 하나에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그것의 떨어져 내리는 찰나를 좇았다. 하나가 툭 지상에 도달했다. 또 하나를 좇았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지속했다. 나는 짚고 선 땅이 살짝 흔들린 것 같은 착각에 눈앞이 아뜩해졌다. 숲은 숨죽여 자신을 향해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물과 불과 흙과 바람에 의해 이 겨울의 슬픔은 소멸의 질서를 뒤따르게 될 것이다, 라고.

 

실처럼 길게 늘어진 하늘의 저 타래는 갈고리 구름이던가. 뱃사람에게 보내는, 험악한 날씨를 예고하는 바람의 경고. 쓸쓸했다. 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산골마을을 떠올렸다. 기억의 저장소에서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 내 마음의 안식처. 내 유년의 천국. 나의 아버지의 또, 아버지의 아버지의 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태가 묻히고, 아버지들의 피가 점점 농도를 더해가고, 아버지들의 뼈가 대차게 여물어가고, 아버지들의 살덩이가 조금씩 외계를 향해 부피를 늘려갔던 곳. 눈을 감았다. 숨죽였다. 바람을 들었다. 그러고는 읊조렸다. 하나, 조각구름. 둘, 벌집구름. 셋, 송이구름. 넷, 파도구름. 다섯, 안개구름. 여섯, 틈새구름. 일곱, 면사포구름. 여덟, 아치구름. 아홉, 봉우리구름. 열, 삿갓구름. 나는 최면의 강을 거슬러 할머니의 마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왼발 한 걸음, 또 오른발 한 걸음...... 빛이 보였다. 둥글고, 커다랗고, 하얀.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50cm_2015

 

 

내 발은 뱁새의 깃털만큼이나 가볍다. 눈앞엔 마을의 강이 흐른다. 허릴 숙여 자갈을 집는다. 그것의 온기가 가슴을 데운다. 다리의 힘이 풀린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동그마니 무릎을 감싸안는다. 망연히 하늘을 바라본다. 햇살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린다. 사방으로 뻗친다. 그 기세에 세상의 그림자는 땅으로 쑥 꺼진 듯하다. 규칙적으로 쿨렁대는 강물소리. 맴맴, 매미울음. 온갖 잡새소리. 귀청이 찢어질 듯하다. 점점 고막의 둘레는 편안해진다. 최면의 긴장이 풀린다. 급기야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났으면 싶다. 선하품을 깨문다. 이마께에 손갓을 만들어 주변을 크게 한번 둘러본다. 아름다워라. 눈부시다.

 

산의 계곡을 거슬러 숲을 휘돌아오는 실바람.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잔 머리칼을 살살 희롱한다. 그 참에 목덜미의 고랑을 타고 땀 한 방울이 또르륵 굴러 내린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움켜쥔다. 뒷목덜미를 나머지 한 손으로 훔쳐낸다. 손바닥은 금세 흥건해진다. 고달픈 살내가 코를 적신다.

바람 부는 대로 쏠리는 잎사귀의 군무는 촤아아 청량한 소리로 대기를 훑어 내리고 있다. 이 바람의 처음은 어디서일까. 연둣빛 강물에 손가락을 넣는다. 마디마다 흐르는 물결의 세기를 느낀다. 물살은 부드럽다. 동시에 차갑다. 물의 고동이 손바닥을 두드린다. 들숨날숨을 반복하고 있다. 물속 생물들은 수면위로 자신의 존재를 비릿하게 뿜어댄다. 느닷없이 물방울 각각의 생이 나의 뇌리에 섬광처럼 감각되는 듯하다. 아련하다. 서럽다.

 

억만 개의 자갈은 제각각 해를 덮고는 하얗게 메말라가고 있다. 흙의 살찬 기운에 바짝 엎드린 여분의 빛 부스러기들은 돌과 돌들 사이에 숨어있다. 어린 나뭇잎들은 바람의 노래에 스스로를 태우고는 연신 요리조리 흔들어댄다. 산기슭은 아연 초록의 생기로 서글퍼진다. 태어나고 살고 죽고, 또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는 엄숙한 질서. 이 모든 것은 깜빡하고 사라질 것이다. 또렷한 오늘의 감각은 먼지로 화해 우주의 어디쯤인가를 부유하게 될 것이다.

 

바람은 화엄의 노래를 싣고는 바로 지금의 생을 감미롭게 흔든다. 자연의 법을 이으려하고 있다. 우주는 거듭 새 씨앗을 뿌리려 모든 삶을 자극하고 있다. 조금씩 우리의 이야기는 뒤로 밀려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떡잎을 푸르게 펼치며 새 장을 생성할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무것이다. 아무것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162x130.3cm_2015

 

 

어느새 나는 할머니의 초가집 마당에서 나비처럼 폴폴 날고 있다. 사립문께에는 이파리 울울한 감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까치는 분주하게 나무뿌리, 마른 풀 따위를 물어 나르고 있다. 감나무 가지에는 곧 견고한 둥지가 틀어질 것이다. 갈색 점들이 흩뿌려진 몇 개의 푸른 알이 떨어뜨려질 것이다.

 

나는 유령처럼 가볍게 감나무를 타고 오른다. 나무둥치에서 여러 갈래로 뻗친 가지 중 적당한 자릴 잡고 앉는다. 저 건너 조금 보이는 강을 내려다본다. 한 자락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이며 지나간다. 눈을 감는다. 양팔을 쭉 벌린 채 해바라기를 한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만 같다. 어지럽다. 바람은 마을의 윤곽을 훑으며 풍경을 쓸고 다닌다. 바람은 하늘에 구름의 말들을 적어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 라고. 고요하다.

 

아,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푸른 아오리 사과를 바구니 가득 담아 옆구리에 끼고는 다정한 손 휘휘 내두르며 귀여운 내 아가, 어여 오라, 손짓한다. 미어지는 가슴으로 내려가려 애쓰지만 발은 허방을 짚으며 나무둥치에서 자꾸만 미끄러진다. 어......할머니 가지 마요,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고 있는가. 열, 삿갓구름. 아홉, 봉우리구름. 여덟, 아치구름. 일곱, 면사포구름. 여섯, 틈새구름. 다섯, 안개구름. 넷, 파도구름. 셋, 송이구름. 둘, 벌집구름. 하나, 조각구름...... 빛은 사라졌다.

 

구름은 묻는다. “행복해?”

구름은 말한다. “고마워.”

구름은 웃는다. “하하하하하하.”

구름은 노래한다. “아주 예쁜 집이었어요.

천장이 없고요, 부엌도 없고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요.

왜냐고요, 바닥이 없었으니까요.

잠 잘 수도 없었어요.

그 집엔 지붕이 없었다고요.

하지만 정말, 정말 아름다운 집이었어요.(이탈리아 동요)”

구름은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

구름은......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97x130.3cm_2015

 

 

구름의 말들_Oil on Canvas_130.3x194cm_2015

 

 
 

조지연 | Jo Jiyeon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학과 졸업

 

개인전 | 2014 유나이티드갤러리 기획초대전, ‘구름 한 알’, 서울 | 2013 가나아트스페이스, ‘구름의 질량을 빚다 2’, 서울 | 2013 더케이갤러리 기획초대전, ‘구름의 질량을 빚다’, 서울 | 2013 가나아트스페이스, ‘구름에서, 구름’, 서울 | 2012 갤러리담 기획초대전, '유랑', 서울 | 2011 갤러리담 기획초대전, '내별을 끌어다 너에게 보여줄게', 서울 | 2009 대안공간게이트갤러리 기획초대전, ‘함께, 숨쉬기展’, 대전 | 2008 갤러리영, 'self-최초의 꿈', 서울 | 2006 갤러리라메르 신진작가초대전, ‘magia-마술’, 서울 | 2005 인사아트센터, ‘조지연展’, 서울 | 2004 갤러리라메르 신진작가공모전, ‘라라’, 서울 | 2000 Le Trottoir Ritrovo d'arte, 'AMULETO', 밀라노

 

단체전 | 1997 5th International Exhibition Milano-Tokyo, 밀라노, 도쿄 외 다수 참여

 

아트페어 | 2013 doorsartfair2013-특별전, 서울 | 2012 doorsartfair2012-특별전, 서울 | 2012 ArtShow Busan 2012, 부산 | 2011 KASF2011-Korea Art Summer Festival 2011, 서울 | 2008 화랑미술제-부산 특별전/ART 人 BUSAN, 부산

 

수상 | 1999 Premio di studio ‘ANGELO TENCHIO' 공모전 수상, 이탈리아

 

작품소장 | 2002 Ceramica per Maiera', Calabria (벽화), Italia | 1999 La Fondazione 'Adolfo Pini' di Milano (밀라노 아돌포 피니 재단), Italia

 

 
 

vol.20150512-조지연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