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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필 展
" A Bloody Farewell "
Give & take 0001_100x100cm_C-Print_2012
갤러리 누다
2015. 4. 14(화) ▶ 2015. 5. 8(금) 대전시 서구 월평동 597 한빛빌딩 B1 | T.070-8682-6052
Give & take 0006_100x100cm_C-Print_2012
어느 날, 작업실에 왔는데, 이삼십 마리의 모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름 내내 1~2주일에 한두 마리 보일까말까 하던 것들이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많아졌다. 원인을 찾아보니 작업실 천정 한구석에 빗물이 조금씩 새는데, 아주 조금씩 새서 페인트 통을 받쳐놓으면 좀 고였다 마르고, 좀 고였다 마르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는데, 세 번 연속으로 지나간 태풍으로 고인 양이 꽤 되어 그 곳에 모기가 알을 깐 것으로 생각되었다.
모기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작업을 하다가도 뭔가 움직이는 것 같으면 고개가 자동으로 확 돌아가고, 자꾸 모기에 물릴까 신경이 쓰여 수시로 몸을 흔들거나 손으로 훑었다. 정말 짜증났다. 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되어갔다. 모기들을 잡아 죽일 때 내 피를 빨아 통통한 놈들을 죽이면 더 큰 통쾌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릴 적에 아주 커다란 외계인들이 나타나 무표정하게 손가락 같은 것으로 사람들을 살짝 살짝 눌러 터트려 죽이는 끔찍한 꿈을 꾸었던 것이 떠올랐다. 사실 누가 나를 귀찮게 하거나 짜증난다고 해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모기를 그렇다는 이유에서 죽이고 있었다. 모기가 피를 빠는 것이 좀 성가시고 간지럽기는 하지만 피를 좀 빤다고 내가 죽지는 않는다. 병을 옮길 수 있다지만 지극히 드문 경우다.
내 자신이 매우 잔인하고 잔혹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난 30여년 동안 모기를 죽이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잔인함이나 끔찍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에 대해 잔인하고 끔찍한 짓을 무감각하게 해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기를 죽이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정당화 할 수 없다면 평생 모기들에게 약한 정도이지만 계속 짜증나게 당하고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모기에 대해 좀 진지하게 내 멋대로(문헌연구나 그 어떤 조사 없이, 근거도 없이) 생각해보았다. 모기는 빨아 먹는다. 다른 동물은 음식물을 씹고 삼켜서 소화된 영양분을 피를 통해 몸의 다른 부분으로 보내는데 모기는 그 영양분을 그냥 중간에 가로챈다. 참 기발하다. 게다가 모기의 소화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귀찮게 씹는 단계는 생략되었다. 물론 우리도 빨아 먹을 수는 있지만 빨아만 먹고 살려면 때에 따라 어떤 도구를 이용해야 하고 그 다음 설거지, 분리수거 등 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기도 잘 진화해서 지금까지 우리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잘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에게 덜 짜증나고 덜 위협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모기가 피를 빨고 나서 가렵지 않다면, 모기가 피를 빨면서 병을 옮기지 않는다면, 심지어 빨면서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성분을 주사해 준다면…
그런 돌연변이 모기가 나와서 결국 인류와 모기 서로에게 우호적이며, 유쾌하게 공생 가능한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기의 인류에게 우호적인 쪽으로의 진화를 위해서는 우선 짜증나는 모기들은 가능한 죽여야 한다. 모기를 죽이는 것이 정당화 되었다.
죽이고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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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50414-정지필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