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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무리 30주년 기념展
김갑진 | 김동석 | 김병규 | 김철원 | 박삼삼 | 서광종 | 손준호 위수환 | 윤한한 | 정도균 | 조광익 | 조태례 | 허회태 | 정채동 김흥빈 | 이강숙 | 허명수 | 김영환 | 이성완 | 조강훈 | 故 신제호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 Mer
2015. 1. 28(일) ▶ 2015. 2. 3(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 T.02-730-5454
김흥빈作_바라보기_90.0x86.0cmc_거울위에 혼합재료_2014
“아~ 30성상(星霜, 性狀, 成相)의 누리무리여!!!”
누리무리의 기념비적인 단어 ‘30성상’에 대해 의미를 짚어봤다. ‘星霜’이란 별은 일 년에 지구를 한 바퀴를 돌고 서리는 매년 내린다는 뜻으로, 한 해의 세월을 의미한다. 그리고 ‘性狀’은 사람의 성질과 행실을 그리고 사물의 성질과 상태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또 ‘成相’은 종교적 또는 철학적 의미로 우주 만물의 여러 가지 존재가 서로 의지하여 동일체(同一體)를 이루는 형상을 이른다. 결과적으로 이 사유적인 단어 속에는 참 예술을 향한 집념으로 30년의 세월을 버티고 달려온 누리무리 정신과 존재적 이유가 절절히 내포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 자축하며 박수를 보내야 할 고귀한 언어이다. 그러므로 이 예술혼을 영원까지는 아닐지라도 질긴 들풀처럼 꿋꿋이 생명을 이어나가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새삼 지난 시절을 회고한다. 1984년 차가운 겨울, ‘누리무리’가 첫울음을 터뜨리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때만 해도 그 아이는 철없는 벌거숭이였다. 그랬던 그가 훌쩍 30성상(星霜)을 뛰어오르며 어엿한 열혈 청년이 되었다. 신생아 누리무리의 태동은 연약한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했다. 그 성과는 무릇 세월의 흐름 속에 점층적으로 나타났고, 그 위상도 일취월장했다. 그로 인해 굵직한 사고(?)도 많이 쳤다.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대형 미술관에서의 정기전 및 초대전도 여러 번 치렀다. 여기에는 김호진 창립회원의 역할이 매우 컸다. 누리무리 홍보를 위한 공사다망의 결실이었다. 행복한 일이 있으면 어려운 일도 있었으리라. 그 뒤안길에는 우여곡절도 필연처럼 겪었다. 2004년 전시회는 쉬어가는 아픔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경험도 때론 약이 되었고, 또 크고 작은 ‘희로애락’들이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하여 오늘의 30성상 기념비를 이뤄낸 것이다. 결국, 이 기념비는 함축된 언어의 시처럼 진정한 전사(Fine Artist Group)의 정신으로, 또 미술사의 편린으로 무궁하게 남을 것이다.
타인이 본 ‘누리무리’의 예술 정신을 몇 건만 추려 반추해 본다. 누리무리 제5회전은 우리나라의 전환점인 대망의 88올림픽 직전 제3미술관(1988.6.8.~6.14. 서울)에서 야심에 차게 치러졌었다. 당시 일요신문 전준엽 문화부 기자는 지면을 통해 누리무리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편협한 양식탈피 기존미술 거부해’라는 제목 아래 “다양한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형방식을 모색해온 누리무리 그룹은 편협된 특정 양식이나 지역적 동질성으로 분류되는 기존 미술의 질서에서 벗어나 내일의 새로운 미술그룹을 지향한다는 생각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평면, 오브제, 추상, 구상 등 다양한 방법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라며 긍정적으로 평했다. 또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2011년 제26회전 서문에 “이들이 감내한 25년의 역사는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지난 세월의 이면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와 같은 역사로 점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간난의 세월은 마치 골 깊은 꼬막의 그것처럼 누리무리의 역사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모진 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창립하고 그것의 숨결을 잇기 위해 이들의 노력과 분투는 분명 기억되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누리무리의 존재 가치에 대해 호평을 했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누리무리의 참 예술 정신과 회원들의 창의적 조형언어들은 이 땅의 미술-판에서 마땅히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필로그, 현대는 초월적 다원화 시대이다. 예술작품의 다양성 또한 변화무쌍하다. 이제 현대미술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고, 지역과 중앙이 따로 없다. 그러니 창작을 위한 예술가는 더 많은 고민과 천착이 요구되는 때이다. 아울러 현대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하고, 인간은 이윤과 자본의 도구로 전락하여 인간 고유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상실해 가는 심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모순된 사회적 현상을 미술그룹운동과 예술 정신을 통해서 당당히 극복해야 한다. 30년 전 ‘누리무리’가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더 큰 목적과 예술관을 설정할 때가 아닌가? 자문해 보면서 이 글을 마친다.
2015 을미년 정초에 ‘누리무리’의 30주년을 침잠(沈潛)하면서, 모든 회원을 대신하여 이 성 완 쓰다.
*** 이 지면을 통해 ‘누리무리’란 이름을 지어준 문학가 설재록 님과 30년 자료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잘 관리해준 누리무리 살림꾼 정채동 회원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지금은 삼가 고인이 된 신제호 회원의 명복을 빈다.
서광종作_어느날 아침_71.0x51.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4
허명수作_In the road_162x130x50cm_objet, mixed media_2013
이강숙作_story- dandelion 민들레_115.8x55cm_mixed media_2014
손준호作_Quickening-태동-꿈_30.0x30.0cm_세라믹+혼합재료_2014
김동석作_씨알의 꿈-1015_122x122cm_씨앗,스톤젤미디움,캔버스에 아크릴_2014
김철원作_공감_15.0x20.0x12.0cm_커피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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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50128-누리무리 30주년 기념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