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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민 展
" flower(S) "
flower05_Acrylic on Canvas_90.9x72.7cm_2014
경인미술관
2015. 1. 14(수) ▶ 2015. 1. 20(화) Opening 2015. 1. 14(수) PM 5:00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 | T.02-733-4448
flower07_Acrylic on Canvas_130.3x162.2cm_2014
“당신이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 보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미니멀리즘 화가 프랑크 스텔라가 한 이 말은 작가의 유일성과 자아표현이 사라져 버린 작품 앞에서 무엇을 봐야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관객들을 향한다. 그러나 만약 작가가 보이는 것 뒤에 무언가를 숨겨 놓았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너무나 쉽게 시선을 유혹하는 꽃이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꽃인 걸까?
임정민의 시선은 기억으로 향한다. “그림 속의 꽃과 나무는 현재의 이미지가 아닌 기억속의 것들”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기억은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특별하지만 감각화된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표현되어지기를 기다린다. “색깔이나 기억속의 온도 또는 습도, 지극히 개인적 감정”은 작가가 캔바스 앞에서 마주하는 것들이다. 기억이 삶의 그림자라면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작가에게 그림자로 이루어진 세계 속을 걷는 것과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얀 캔바스 위에 올려진 물감은 작가의 촉각을 일깨우고 붓놀림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형상을 가지는 물감 덩어리인 마띠에르는 연상되는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로부터 한없는 추억과의 회화적 유희가 시작된다. 이제 화면 위의 마띠에르는 더 이상 물감이 아니라, 작가와 연결된 일부로서 원초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위한 물질로서 존재한다. 크로체가 “예술은 곧 직관이고 직관은 곧 표현”이라고 말한 것처럼 작가는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이미지와 의미를 구축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한다. “과거의 풍경을 떠올리며 기억 속 감정의 조각을 끄집어내는 느낌을 즐기며 수정하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행위는 화면 위에 기억의 레이어들을 구축하고, 두껍게 중첩되어 쌓이는 마티에르는 형상에서 물질로 변화되어 간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이미지가 가지는 물질성이다.
flower06_Oil on Canvas_91.0x116.8cm_2014
작가가 그려내는 화면 위에서 우리는 두 가지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표면적 이미지와 물질적 이미지가 그것들인데 표면적 이미지는 시각적 이미지에 속하고, 물질적 이미지는 정신적 또는 내재적 이미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의 이미지는 표면적 이미지이다. 보는 순간에 실시간으로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을 인지하는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형태를 띤 그것과 달리 물질적 이미지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다. 바람으로 봉오리를 맺고 시간으로 꽃 피우는 것과 같이 작가의 집요한 시선과 붓질 속에서 물감은 서서히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말해 작가는 물감으로 캔바스의 표면에 꽃의 외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라는 물질을 이용해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물처럼 작가의 기억은 자유로이 흐르다 꽃이라는 용기에 스며들어 그 모양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꽃에 관한 기억이 아니라 꽃이란 형상에 담겨진 기억이다. 그러므로 쉽게 읽혀지는 외형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꽃은 외피를 이루고 있는 물질(물감)을 초월해 존재하기 시작하고 인식과 향유를 통해 기억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자신이 욕망“했고” 또 “하고”있는 것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임정민의 ‘꽃’은 추상과 관념의 상징이고 존재가 품고 있는 삶에 대한 열정의 표출인 것이다.
기억 즉 감각과 감정 그리고 추억들을 물질로 변환시켜 순수한 시간 안에 위치시키는 작가의 작업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물질로 체화된 기억은 더 이상 과거의 것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 자신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임정민의 작업은 미끌어져 흘러가는 기억들과 벌이는 회화적 유희이고 ‘나’의 기억에서 ‘타인’의 기억으로 전이되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끝으로 ‘꽃’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보르헤스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가 자취를 감춘 후에도 이것들은 남겠지. 그리고 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끝내 모르겠지.”
노순석(조형예술학 박사)
flower08_Acrylic on Canvas_130.3x162.2cm_2014
pomegranate01_Acrylic on Canvas_162.2x130.3cm_2014
pomegranate04_Acrylic on Canvas_40.9x31.8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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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50114-임정민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