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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도시-꽃 II, “정글의 도시와 생명의 소리”
Apic Gallery
대전광역시 서구 도안동 933 | T.042-823-9004 오프닝 퍼포먼스(시낭송)-이행수(대전대 교수) | 저녁6시-7시 오프닝 세미나 작가와의 대화(조영주, 황선영)
도시엔 일정한 리듬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맥박과 호흡을 갖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도시는, 하루, 사계, 일년의 시간처럼 반복적인 자연의 리듬이 아닌, 상품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기계적이고 “동일한” 리듬을 재생산한다. 정글과 같은 도시의 생태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도로 위에 달리는 자동차와 신호등만큼이나 반복적인 삶의 리듬에 익숙해져있다. ‘차이’나 ‘혁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반복은 ‘창조’라기보다는 죽은 리듬에 가깝다. 도시에서의 삶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의 “다양한” 리듬, 즉 ‘생명의 소리’를 회복하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회를 맞는 《지속가능한 도시-꽃》전은 “정글의 도시와 생명의 소리”라는 주제로 우리의 환경과 생태적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도시-꽃Ⅱ》전에 참여하는 여덟 명의 참여 작가들의 작품은 각각의 관심과 방향에 따라, 크게 1부 ‘정글의 도시’와 2부 ‘생명의 소리’로 나뉘어 전시된다. 1부는 ‘정글’로 묘사되는 도시를 재현하거나 그러한 도시에서 예술가로서의 삶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는 작업 등을 보여준다. 최근 소마아트센터에서 ‘물’을 주제로 한 전시에 참여한 바 있는 작가 이용제는 이번에는 비디오 작품 <Accustomed to the sound, video installation, 4분33초, 2014>을 통해 도시의 소음과 혼잡함 속에서 채취되는 동일한 리듬을 관찰하는 시선으로 도시의 ‘지속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유사한 시각에서 정글의 도시를 소리가 있는 영상으로 이미지화하는 김민정 작가의 작업은 플라스틱으로 조립된 ‘거짓 녹색’의 도시 안에서 우울한 랩소디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김민정 작가가 미국유학시절부터 집중하기 시작한 문제로 ‘플라스틱’과 ‘그린’에 숨은 자본이데올로기의 조합을 <플라스틱 소사어티, video installation, 3분 19초, 2014>에서 음유시인처럼 풀어낸 것이라고 하겠다. 캐나다 출신의 비너스 루킥은 <Dear Andy, video installation, 8분, 2012>란 영상을 통해 도시에서의 폭발음-폭죽놀이-를 통해 작가는 그 폭발음 사이사이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또 다른 사운드인 백색의 소음을 생각한다. 전기 혹은 도시의 다양한 물건들로부터 방사되는 몇 겹의 소음들, 바로 그 백색 소음에 둘러싸인 도시-공간을 주목한 작가는, 스펙터클이 실제 풍경을 대신하는 비-공간(non-space)속에 살아가는 도시인 자신을 반추한다. 이러한 도시의 삶에 대해 더욱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는 작가는 김인이다. 그는 담론을 상징하는 책들과 반복적인 사운드를 영상에 담아 도시를 둘러싼 문화적 담론의 반복과 그 실천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실존적인 문제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김인의 <meta-repetition, installation, 2014>은 무엇보다도 정글의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부 ‘생명의 소리’는 1부의 작업들을 더욱 심화시킨 문제를 제기하거나 발견하고자 하는 작업이 주를 이루며 실제로 ‘음악’적 효과를 내고자 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스위스 작가로 취리히 대학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전공 후 미국에서 장식디자인과 웹아트 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최근 호주국립대학의 월드 차이나 센터 디자인 연구 매니저로 일한 경력을 가진 마르쿠츠 베를리 사이토는 현재 물질과 에너지의 리사이클링을 위한 흙을 만드는 데 인간의 역할에 초점을 둔 작업을 하는 등, 최근 5년간 사회적 생태관계와 네트워크에 초점을 둔 작업을 해왔다. 그러한 작업들의 연장선상에서 마르쿠츠 베를리 사이토는 <Soil Feeder: Fermenting my Everyday, video installation, 4분, 2014>라는 작업을 선보인다. 실로 그는 자신이 약 2년간에 걸친 실험을 통해, 도시의 화장실과 자신이 만든 창고를 사용하여 자신의 배설물을 흙에 거름으로 사용하는 ‘발효’의 방식을 비디오로 제작했다. 현대식 좌변기임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매일의 삶을 발효시키는” 다큐멘타리 같은 영상 전반에 걸쳐 마치 자연이 생생하게 호흡하는 것 같은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명의 소리’의 또 다른 버전으로 ‘식물의 사운드’를 연구한 작업이 있다. 평소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하는 등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진 작가 김지수는 ‘맹그로브’ 나무가 만들어내는 언어를 모티브로 한 작품 <맹그로브로부터 맹그로브에게로, 53x120cm gouache on linen, 2014>을 선보인다. 그녀는 식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위험에 대해 경고하거나 그러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이제 도시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식물의 사운드를 이미지화 하고자 한다. 이와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도시의 들리지 않던 사운드, 리듬을 재현한 작가는 황선영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을 전공 후 현재 미학을 공부중인 황선영 작가의 작품 <Echo, 사진을 찍은 비디오, 2014>는 현대음악가 지아친토 셀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의 낯선 소리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에스컬레이터 홈의 기계적인 패턴은 황선영 작가의 사진 속에서 메아리(에코)로 울려 퍼지는 기계음마저 새롭게 들리는 도시의 음악으로 변주된다. 에스컬레이터의 홈과 그 그림자의 음영은 도시에 내재한 반복의 리듬을 흡사 시처럼 들려준다. 파리조형예술대학을 졸업 후 꾸준히 공동체 및 젠더의 문제를 기획하거나 작업해 온 작가인 조영주의 <꽃가라 로맨스(Floral Patterned Romance), 단채널 영상, 프로젝션, 7분, 2014>는 도시 속 중년의 여성들이 추는 춤과 리듬을 보여주는 가운데, 여성을 비롯한 도시 내부의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지속가능성’의 실존적 물음을 던진다. 이는 르페브르가 말한 다양한 리듬, 즉 다리듬성(polyrythmie)의 발현이며, 도시 안에서 조화된 리듬을 만들어서 도시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생태적 ‘탄력성(resilience)’의 몸짓이라고 할만하다. 독립큐레이터 유현주
1부
이용제作_Accustomed to the sound_00.04.33_2014,스샷2,스샷4,스샷7
도시는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집단 거주하여 생활하는 곳이며 교통로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으로 사회·경제·정치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 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라는 큰 공간 안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시간 때의 도로교통 체증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뛰어가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전투적으로 까지 느껴진다. 어느덧 대전이란 곳에 머물게 된지 10년째가 넘어간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와 생활하게 된지도 7년째 되어간다. 지금 살고 있는 건물 30m 근방엔 8차선 도로가 있으며 그보다 조금 더 걸어가면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있다. 한동안 그곳에서 발생하는 소음들 때문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현재 소음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가끔 안식을 취하기 위해 도시 근처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산을 찾을 때가 있지만 그곳마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마도 그 사람들도 휴일을 맞아 도시의 각박함을 피해 한적한 곳을 찾아 쉼을 청하려 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쉼을 청하기엔 쉽지 않으며 이 잠깐의 휴식도 잠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위치에서 또 다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도시의 소음과 높은 건물에서 비춰지는 불빛들과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그리고 각박한 사람들의 시선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러한 것들에 무뎌지고 익숙해져 버린 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점점 이러한 것들에 무뎌지고 적응해 가며 흡수되어버린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될 때 나 또한 인간이 존재하는 한 도시에 잠지 머물다 가는 작은 존재인 걸 감지하게 된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도시는 정적 없이 쉼 없이 움직이는 곳이며 점점 이러한 것들에 무뎌지고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로 인해 지속성이 유지되어지는 곳이다. 이용제 작업노트
김민정作_Plastic Society_물에 비친 아파트_video, 3분_2014
Plastic을 주제로 한 나의 작업은 우리의 환경을, 그리고 가치관을 묻는 작업이다.
플라스틱은 쉽게 쓰고 버리는 우리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성 있는 소재이자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플라스틱은 사전적으로 가짜의, 인공물의, 싸구려의, 플라스틱 합성물, 신용카드란 뜻이다. 하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은 사람이 만든 최고의 인공물이란 극찬을 받았다. 이런 플라스틱이 싸구려란 뜻을 가지고 쓰레기장 뒹군다. 나는 쓰레기장이 세상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플라스틱 과자 봉지, 포장 컨테이너 박스, 플라스틱 소품들이 인스턴트 도시의 가볍고, 얇고, 부풀려지고, 쉽게 쓰고 버리는, 무색 무취한 플라스틱 문화를 보여준다.
작품 Plastic Society는 버려지는 플라스틱 일회용기 (두부, 요구르트, 커피 컵 뚜껑, 일회용숟가락, 포크, 빨대, 화장품, 치약 선물 세트 등) 위에 물에 비친 아파트 영상이 더해진다. 우리가 사는 공간, 아파트가 물에 비치고, 산책하는 사람, 하늘도 함께 비친다. 그 위를 오리가 휘젓고 다닌다. 자연을 느끼고 싶기에, 아파트에 나무도 심고 주변에 공원을 만들고 우리들은 그 조성된 자연 안을 거닌다. 영상에서 들리는 소리는, 영상 찍은 곳의 현장 그대로의 소리이다.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버스, 트럭, 승용차, ‘두두두’ 거리는 건축 현장 소음, 각종의 도시의 소음들이 뒤섞여 있다. 새들, 귀뚜라미, 오리, 우리는 도시의 소음 안에 무감각하게 산다. 영상은 뒤로 갈수록 비가 오면서 빗소리가 더해진다. 하늘이 본 우리 세상은 비를 뿌리고 싶은지 모르겠다. ‘투둑투둑’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덮는다. 그 비를 맞고 있는 건 플라스틱 도시이다.
모든 생태계, 자연과 인간이 미세하게 얽힌 하나의 생태 망 안에, 조화로운 인간에 대해 생각 해 본다. 인간이 이익을 위해 자연을 계획하고 컨트롤 할수록, 그물망에 구멍이 커지고 그 구멍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플라스틱이 썩으려면 500년은 족히 걸린다. 우리는 이런 플라스틱이 가득 찬 도시, 사람이 만든 인공물 도시 안에서, 그에 걸 맞는 깨끗하고 편리한 자연을 그린다. 플라스틱 인공 자연이다. 민정See / 2014.11
Venus Lukic_da ss 4 , da ss 6
지속가능성, Dear Andy에서의 도시와 사운드
이 비디오에서의 도시의 개념은 도시 배경이란 점에서 두드러진다. 즉 심지어 도시 거리 아래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층의 아파트에 격리되어 있다는 것, 매우 다른 아파트 거주자들의 이웃은 아주 조용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근접한 아파트들을 거의 들여다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건물들 사이 끼워진 폭죽놀이는 그 근원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매우 흥분되고 놀랍게 하는 것이다. 도시는 조밀한 공간이며 이러한 유기적인 폭발과 소음의 매력은 어떤 전조의 예감을 창조한다. 즉 전쟁과도 같은 심지어 공격과 같은 예감을 말이다. 사운드는 이 비디오에서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탐구된다. 이는 관람자에게 왜 소리가 제거되는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허락한다. 만약 그것이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숨기고 있으며 침묵을 이루기가 어려운 방식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조용한 비트에서 조차 소음은 관람자들에게는, 다른 비디오들에서와 같이 복잡한, 밖의 소음들과 같은 것이거나, 숨이나 심장박동과 같은 단순한 소리 환경이다. 소음을 거부하는 해드폰과 같은 침묵을 사는 침묵은 값비싼 사치일 것이다. 어떻게 인구가 이러한 것에 적응해왔던가? 여기뿐 아니라 도시 바깥에도 소음은 지속적이지만, 자연의 사운드와 리듬과 같은 보다 유기적인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사운드는 백색 소음, 대부분 전기에서 윙윙거리는 사운드들이나 다양한 발명품들에서 방사되는 다층적인 소음들과 같은 다른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지속가능성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자연과 멀리 떨어진 고층건물에서 사는 것처럼 묘사되는 예술가/주체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다양한 개인적 미디어 장치를 가지고 향유하는 자신을 겨우 바라보는 시나리오의 비디오를 녹음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것은 소비주의에 초점을 둔 삶의 어두운 측면이다. 주체는 비-공간을 차지하고 빈 콘테이너가 된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있다고 할만한 지속 불가능한 환경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 Venus Lukic
2부
Markuz Wernli_Soil Feeder: Fermenting my Everyday Markuz Wernli_Soil Feeder: 나의 매일을 발효시키다_Video (2012-2014) 3:30 min
불과 얼마 전에 우리 인간들은 무한한 자원과 비인간 생명체를 배려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당시에 요리라는 것은 인간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우리는 요리 기술의 급격한 확장을 요구하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인구의 증가는 총 생물량에서 인간과 동물의 육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리는 우리 생물권의 물질 및 에너지의 흐름 내에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하여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Soil Feeder 는 이를 위한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은 신진대사를 통하여 지구의 생태계 내에서 특별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 잔여물을 생산한다. 인간을 의미하는 Human과 부엽토를 의미하는 Humus가 어원이 유사한 이유가 있다. 사람 한 명이 1년에 배출하는 소변과 대변의 영양분은 250kg의 밀을 기를 수 있는 비료를 제공할 수 있다.
도시화와 위생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지구와 우리 사이의 생리적인 관계를 끊어놓았다. 우리의 변을 수세식 변소에 배출함으로써 우리는 음식의 순환을 방해하며 물순환을 오염시키고 있다. 하수구와 매립지에서 썩어가고 있는 우리 신체의 영양분과 생물폐기물은 이산화탄소보다 17배나 기후를 손상시키는 메탄가스와 암모니아를 방출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력을 죽음의 물질로 바꾸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Soil Feeder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친생명적이자 열린 배움의 경험으로 다시 돌려놓는다. 최근에 재발견된 아마존 문명 고유의 고대 자원 관리 방식인 ‘테라 프레타 (검은 흙)’ 방식을 도입하여 누구든지 자신의 변을 유용한 비료로 변환시키며 토지를 ‘탄소 봉쇄 싱크대’로 활성화 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Markuz Wernli 작가 노트
김지수作_맹그로브로부터 맹그로브에게로
인간은 소리를 듣는다. 동물도 소리를 듣고, 곤충도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떠할까? 흔히 식물은 소리를 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식물이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종종 발견되고 증명되기도 한다. 나는 식물이 소리에 반응할 뿐 아니라 소리를 직접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의 소리는 단지 인간이 듣지 못할 뿐이다. 박쥐의 고주파 소리를 인간이 듣지 못하는 것처럼 식물의 소리를 측정하거나 듣고 있지 못할 뿐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각종 동·식물을 키우고 접하며 동식물이 대한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교감을 체험한 바 있다. 식물이 도시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기 어려운 이유는 도시가 배출하는 각종 환경 유해물질 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음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나는 음악을 들려주며 식물을 키우는 실험을 접하면서 식물의 감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떤 소리를 낼까?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동료들에게 전달할까? 식물의 의사표현 방식 중 한 가지는 뿌리에 서식하고 나무와 나무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곰팡이 균사를 통하여 멀리 있는 나무까지 정보를 전하는 것이다. 또한 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경고물질을 방출하여 옆에 있는 나무들이 대비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식물의 의사전달 방식 중 한 가지이다.
이와 같은 식물의 소리에 대한 표현을 반투명 천의 투과하고 반영하는 특징을 이용하여 표현하려고 한다.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나무인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와 뿌리를 마치 균사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하여 식물의 소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식물의 의사전달 방식을 표현함으로서 소리를 듣고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고, 냄새 맡고, 기억할 수 있는 식물의 감각 세계를 표현하려 한다. 김지수 작업노트
황선영作_에코1,2
<에코> 작업은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로 구성되어있다. 칸딘스키와 폴 클레가 음악을 캔버스 위에 옮기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에서 외침을 그린 것과 같이 음악을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업은 현대 음악 작곡가인 지아친토 셀시Giacinto Scelsi의 한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의 음악은 실제 악기들로 연주된 화성을 갖춘 오케스트라 협연을 통해서 이루어져 있는데, 저음과 중저음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고음들이 반복되면서 괴기스럽고 낯선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음들은 일상에서는 너무나 쉽고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음들이어서 오히려 그것들의 특이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마치 도시의 소리처럼. 거리의 소음이나 자동차 경적 소리,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 같은 기계의 마찰음 등등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도시 속의 소리들을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표현하였다. 우리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무분별한 이미지들에 노출되어 있듯이, 우리는 매일매일 도시의 소리들과 만난다. 어떤 소리들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찌르는 듯한 소음과 공격적인 소리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다. 그런 소리들은 매우 공격적이지만 너무나 익숙해져서 오히려 그 존재에 대해서 잊고 산다. 그런데 현대 작곡가의 한 음악이 그 소리들을 낯설게함으로써 들릴 수 있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다가 금속 기계의 마찰음이 내는 소리 속에서 셀시의 음악을 보게되었다. 익숙한 곳이었지만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출입구 유리문 사이로 들어오는 해질녘의 푸르름, 실내 조명의 반사광, 아치형의 높고 둥근 천장 아래로 메아리처럼 울리는 기계음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카메라를 꺼내들고 에스컬레이터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셔터를 눌렀다. 그의 음악은 나의 사진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음악이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악기들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느낌을 자아냈듯이, 사진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 또한 일상의 사물들이지만 프레임 안에서 재구성되면서 우리를 다른 상상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소리를 시각화 하면서, 소리의 높고 낮음과 나타났다 사라짐은 사진 이미지에서 빛의 밝고 어두움으로 표현되었다. 모노톤의 클로즈업 이미지는 수평으로 전환되어 에스컬레이터 홈의 기계적인 패턴이 연속적으로 연결된다. 사진 이미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고정시키지만, 흐린 이미지를 통해 소리의 울림과 흘러가는 움직임을 표현하려 하였다. 황선영 작업노트
조영주作_꽃가라 로맨스(Floral Patterned Romance)_단채널영상, 프로젝션 ,7분_2014
이 프로젝트는 서민층의 중년, 노년 여성들이 잘 착용하는 의상 ‘꽃무늬 몸빼 바지’에서 착안 하였다. 형태와 기능은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화려한 꽃무늬 패턴으로 된 옷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신체적 호르몬의 변화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책임, 사회적 계급과 처한 환경적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적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완경기(폐경기)에 접어든 중년여성, 사회적 문화적으로 서민층에 해당하는 집단(도시 또는 도시의 변두리 지역의 참여자)과의 예술연계 프로젝트를 실행함으로써 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또, 일상생활의 제스츄어를 접목시키고, 음악과 무용으로 발전시키며, 참여자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댄스 결과물을 제작한다. 조영주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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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41219-지속가능한 도시-꽃 I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