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s of time

시간의 시학

 

Bowl with Inlaid Clouds and Phoenix(Goryeo)_Plate Glass Engraved_111x111x6cm_2014

 

 

Gallery 3

 

2014. 5. 21(수) ▶ 2014. 6. 15(일)

Opening 2014. 5. 21(수) pm6.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5길 11, 3층(인사동 188-4) | T.02-730-5322

 

www.gallery3.co.kr

 

 

Bowl with Wavy Lin(Joseon)_Plate Glass Engraved_96x96x6cm_2014

 

 

시간의 시학, 찬란한 순간의 기억들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각각의 차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고. 그러나 아마 이후의 중요한 순간-아마도 운이 좋은- 순간에 우리는 새로운 차원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너는 현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차원의 수가 늘어나 구조의 서로 다른 모든 부분들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Paul Klee, On Modern Art, London: Faber and Faber, 1948, p. 17.

 

이상민은 시간을 조각한다. 그의 작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이 중첩되어 새겨진다. 무한한 시간을 탐구하며 물(水)을 조각하던 작가는 이제 스쳐가는 찰나들을 모아 영원과 숭엄함을 부여하는 데에 집중한다. 또한 스쳐가는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사라지는 그것의 찬란함을 되살린다. 하나하나의 순간에는 세계와 우주의 질서, 존재들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순간과 영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시간의 겹들을 응축시키기 위해 이상민이 선택한 것은 과거에 창조되었던 그릇(器)들이다. 하나의 그릇에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이 쌓여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릇을 새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진 독자성이다. 상상력은 단순한 연상 작용이나 공상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정신 활동이다. 이상민은 작업에 임하기 전 상상에 빠진다. 과거의 도공(陶工)들이 흙을 빚고 유약을 칠하고 가마 앞에서 불길을 조절하는 순간순간들을 상상하고 그들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인고의 시간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완성된 그릇이 범인들의 삶에서 보냈던 순간들을 상상한다. 상상은 작가에게 빛으로 가득 찬 드넓은 시야를 열어준다. 작은 순간일수록, 무심하게 스쳐가는 순간일수록 더 찬란하다. 미미할수록 그의 상상력을 자극받고 고양(高揚)된다. 그리고 고양의 정점에서 작가는 순간의 새김을 시작한다.  

이상민의 작업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작가가 모델(model)로 삼은 그릇의 형태를 수정하거나 변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기물(器物)에 불필요한 장식이 없듯이 이상민의 작품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이름 모를 도공이 만들어놓은 형태를 쫓아 들어간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과거에 대한 존경과 찬미를 위한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이 선인(先人)들과의 협업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상민은 오늘날 역사가 온전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과거가 잊혀짐을 애잔해한다. 이에 자신의 작업에서만큼은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길 바란다. 기물의 형태를 그대로 새기는 두 번째 이유는 상상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상상하는 것, 그리고 유리에 그것을 새기는 행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겸손한 존재가 되어야하기에 스스로를 망각해야 하고 스스로를 포기해야 한다는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상상과 그것을 통한 창조는 자만을 버리고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자기 수행과도 같은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을 재발견할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잃는 단계까지 가야만 한다. 상상은 스쳐가는 순간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바라보는 눈을 뜨이게 하고 그것의 의미를 느끼고 찬탄하게 이끄는 창조의 일부이며 이 과정을 온전히 마쳐야지만 유리에 새겨진 그릇 안에 무수한 표정을 지닌 세계 속 순간들이 담겨진다. 또한 그가 욕심을 부리거나 인위적으로 자신의 자존성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작품이 완성되면 그 안에는 새로운 시간의 차원들 즉, 이상민이 작업을 위해 보낸 인고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추가되고 과거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 과거의 행위와 오늘의 행위가 투명하게 겹쳐진다.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겹의 윤곽선은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함유하며 더 나아가 –관람객이 이상민의 작품을 만날-미래의 층위들을 상상케 한다.

 

 

Covered Bowl(Joseon)_Plate Glass Engraved_111x111x6cm_2014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작가 자신을 거짓 없이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민은 기물을 조각하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시간과 존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꾸밈없이 소복하게 담아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숨김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작가의 감흥은 유리라는 재료에도 기인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투과해서 보여주는 투명성을 갖기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담아낼 수 있다.

유리의 반짝임은 그릇, 그것을 만들었던 장인들의 손길과 그들이 작업했던 순간, 그릇들이 존재했던 시간에 찬란한 빛을 부여한다. 빛은 모든 존재와 물체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에너지로서 모든 활동을 위한 조건이자 다른 존재를 활성화하는 힘이다. 빛은 물리적인 생명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신, 영혼 나아가서는 절대적 진리와 신의 상징이다. 빛은 가장 순수하고 영원하다. 이러한 빛이 이상민의 그릇 안에 가득하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이름 없는 선인의 삶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사실 이상민이 모델로 삼은 그릇들은 이미 그 자체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윤희순(尹喜淳)의 표현처럼 한국의 그릇들은 빛을 품은 하늘과 닮아 있다. 청자는 지평선과 만나는 하늘과 같으며 백자는 중천(中天)의 빛을 머금은 청초함을 품는다. 올해 처음으로 그의 작품에 등장한 달 항아리는 보름달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달은 태양과 함께 하늘과 세상을 비추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한편 그릇은 또 하나의 빛인 불을 만나 모든 불순물을 전소시키고 순전(純全)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이제 순전한 그릇은 이상민에 의해 유리에 새겨지는 과정을 거치고 빛이 그렇듯 영원성을 획득한다.

이상민의 작업은 물리적인 차원에서도 찬란한 빛의 작용을 담아낸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의 반사와 투과 작용 때문이다. 유리에서 스스로 발광되는 빛과 조명의 작용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이 나타나고 현현(顯現)한다.

그릇이 찬란해질 수 있도록 유리를 그라인더(grinder)로 연마하고 형상을 새기는 작업은 작가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예민함과 긴장 상태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상민은 관람객이 자신의 작업을 감상할 때 어떠한 기술이 필요한지, 어떠한 장비를 사용했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작품이 보여주는 빛의 신비함을 마음껏 느끼기를 원한다. 작가가 제작 방법을 공식처럼 외우면서 작업에 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유리를 연마하는 전(全) 과정을 온 몸으로 체득하였으며, 마치 옛 도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숨을 쉬듯이 편안하게 그리고 자신을 잊은 것처럼 무아(無我)의 경지에 올라 작업한다. 아마도 작가는 온 몸으로, 정신과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유리의 두께와 굴곡을 느껴나갈 것이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그 순간은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적인 차원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상민이 작업하는 순간은 그의 신체적 실존이 세계로 나아가 세계를 열며 세계에 의해 열리는 생생한 경험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이러한 순간을 몇 마디의 말로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Bowl with Inlaid Parrot(Goryeo)_Plate Glass Engraved_89.5x89.5x6cm_2014

 

 

물질과의 관계에서, 예술가의 임무는 예술적 목표를 통해 조종된 물질의 극복(surmonter un matériau)으로 구성된다. 이 물질의 극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환상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물질에서는 물질에 내재된 미학 외적인 결정이 극복된다.: 대리석은 대리석의 특성으로 버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즉 결정된 물리적인 현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Mikhil Bakhtin, Esthétique de la création verbale, Paris: Gallimard, 1984, p. 197.   

 

이제 이상민은 물질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물질의 본질이란 단순히 유리의 물성, 혹은 그릇의 물성, 그리고 그것들이 놓여 있는 현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상(萬象)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이다. 자연, 세계, 예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본질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상민은 이 힘든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작가는 세계의 표면만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보고, 느끼고, 창조한다는 행위는 사물-존재- 안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예술적 영감과 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일수록 더 깊숙하게 사물 안으로 들어가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체험하는 순간 작가는 만물을 창조하는 자연의 근원적인 바탕과 만나 공명하고, 세계의 진리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리에 새겨진 그릇은 옛 장인과 현재의 작가가 만나 시간을 초월하여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며 삶의 모든 순간들을 찬란하게 비춘다. 또한 물질임에도 물질성을 뛰어넘어 승화되고 세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예술의 무한한 체험을 이끌어낸다. 이상민의 작품은 시각적인 차원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의미의 세계를 열어준다.

이처럼 가장 정제된 순간을 담아내는 이상민의 작업은 한 편의 시(時)와도 같다. ‘순간의 형이상학(métaphysique instantanée)’과도 같은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순간의 정지 상태, 영원을 느낀다. 이상민의 시 앞에 서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저 한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순수한 이미지 앞에서 순수한 경탄에 휩싸일 뿐이다. 이 창조적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은 찬란하다.’라는 하나의 시구(詩句)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찬란한 존재와 행위와 순간들이 가득한 세계를 느끼고 찬미할 수 있을 것이다.(끝.)   

 

 

Iron cup(Goryeo)_Plate Glass Engraved_104x104x6cm_2014

 

 

Jar(Joseon)_Plate Glass Engraved_126x126x6cm_2014

 

 

 
 

이상민 | Sangmin, LEE

 

Education | 프랑스 국립 Strasbourg(스트라스브르)마륵블록 인문대학원 조형예술학,졸업 (MFA) | 프랑스 Strasbourg (스트라스브르) 고등장식미술학교 졸업 (BFA.MFA)

 

Solo Exhibition | 2013  Lee Sangmin WAVE Sculpture 진화랑 | 2011 이듬갤러리, 부산 | 공시성의 풍경, DaXiang art Space, 대만(외12회)

 

Group Exhibition | 2013 | 동감,3갤러리 | Sur-Fantasy, 진화랑 | KIAF 국제아트페어, 코엑스 | Tunghai International Miniature Sculpture Art Exhibition 대만 | 리나갤러리,서울 | Post Paris 위 갤러리,서울 | 2012 | illuminated,신화갤러리,홍콩 | 용의비늘 동해를 품다, 하슬라아트미술관 | TtiangleIX시차전,팔레드서울 | BAMA부산국제화랑미술제,부산 | Department of Sculpture, 갤러리 이레 | 화랑미술제,코엑스 | 2011 | 아미미술관 개관전, 당진 | 누보데 빠흐, 이앙갤러리 | 발칸을 딛다, 베오그라드 응용미술박물관, 세르비아 | 2인전-이상민& Wolfgang Sinwel, 갤러리 브릴레, 프랑스 | 심해의 도약, 성신여자대학교 | 세계일보 창간 22주년기념전,루미나리에갤러리 | Paris80그이후시차전,팔레드서울 | 서울미술협회 회원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Collection | 중앙대학교 R&D센터 | 한남 더힐 | (주)크라운 해태제과 | 국립현대미술관 | (주)아르떼 | 주한이탈리아 대사관 | 프랑스 (주)Art Prise.com | 프랑스 Pfaffenhoffen교회 | (주)영원무역 | 프랑스 (주) | Xertingy제철

 

Award | 1999 | 일본 현대미술전 대상 | Bourgueil, 프랑스 | 1994 | 국제 눈 조각전 최우수상 | Quebec Canada 프랑스 대표작가로 출전 | 1994 | 유럽 청년작가 공모전 수상

 

현재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소전공 교수

 

 
 

vol.20140521-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