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展

 

교감하며 다가서다

 

김정원作_다가서다 1_100x65cm_inkjet print_2013

 

 

경인미술관

 

2014. 3. 5(수) ▶ 2014. 3. 11(화)

Opening 2014. 3. 5(수) pm 5.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 | T.02-733-4448

 

www.gardenk.com

 

 

김정원作_다가서다 2_100x65cm_inkjet print_2012

 

 

내가 다가선 제주 馬

 

어느 날 사진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사진을 하기 전 나는 가정과 직장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바쁜 생활을 하다 퇴직후 가정에 안주하고 품 안의 아이들이 장성하여 빈 둥지의 허전함을 미리 걱정할 때에 생각지도 못한 병마가 날 찾아왔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서 앞으로 삶의 여정이나 미래의 계획 같은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으며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보니 그 앞에는 찬란한 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생명의 빛이요, 새로운 삶의 빛 이었다. 그 빛이 사진의 세상과 만나게 도와주었다. 이렇게 사진은 새로운 삶의 비타민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카메라 안의 세상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온전한 자연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드넓은 초원에서의 평온함과 대자연의 품에서 질주하는 역동적인 모습에 내 안 깊은 곳으로부터 분출되는 자유로움을 느꼈고 그것은 구속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이었다. 자연의 품에서 인간의 품으로 들어와 사랑과 자유를 갈망하는 말은 우리 인간과 너무 유사하다.

좁은 마구간에 갇혀 제한적인 자유를 누리거나, 인간의 이권으로 가득 찬 경마장에서 사육당하지 않으며 마음껏 초원을 달리고, 잠자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어미가 새끼를 돌보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조화롭게 질서를 잡으며 서로 협동하고 사는 모습은 우리 사람들의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구속이 싫어서 자유를 꿈꾸는 야생의 원초적 본능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초원을 박차고 내달리는 말의 모습에서 삶의 애잔함이 드러난다. 그들은 나를 경계하지 않으며 수줍어서 고개를 돌리는 새침데기, 호기심에 긴 얼굴을 마구 들이대는 애교 많은 귀여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카메라 렌즈에 울렁증이 있거나 좀 더 예쁘게 보이려 하겠지만, 그네들은 그 모습 그대로 긴장을 하지 않는 채 멋진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 책은 내가 보았던 그들만의 세상을, 그들의 삶을 담아 보았다. 촬영하면서 내가 본 그들의 세상을 잘 표현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돌아와 기대한 것만큼 나오지 않은 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에 가슴이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달(月)이 지나고 해(年)가 바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평온한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왔던 삶을 그들의 삶에 대입시켜 꾸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 순간의 모습으로 담아 보았다.

사진을 알지 못한 나에게 사진을 가르쳐 주시고 용기를 갖게 해주신 양 양금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한줄기의 소나기조차 만나지 못한 폭염 속에서도 말들과의 교감을 도와주시고 발목이 묻히는 설원을 함께 누비며 촬영에 도움을 주신 권 기갑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 돌 지난 아이가 발걸음을 떼듯이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출발하지만 좋은 사진을 향하는 나의 열정이 계속 되기를 원하며 부족한 나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주고 격려해준 남편과, 엄마가 없는 공백을 채워준 아들과 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시고 푸른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2014. 3  김 정 원

 

 

김정원作_다가서다 3_100x65cm_inkjet print_2013

 

 

‘교감하며 다가서다’ - 원시적 야생성과 제한된 자유

 

김석원 (시각예술평론/미디어아트박사)

시각예술에서 ‘말’은 예술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 중의 하나이다. 사진의 역사에서 머이브릿지는 마레이가 기계측정 장치를 이용하여 독립적으로 이루었던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말 사진을 통해 확실하게 강화했다. 머이브리지와 연관 지어서 ‘테오로르 제리코’의 <엡섬에 있는 더비 경마장, 1821>에 등장하는 말의 모습을 보면 후에 머이브리지의 사진으로 화가들이 범한 오류를 드러내 주는데 결국 눈이 얼마나 자기 멋대로이며, 지각이 우리에게 확실한 관찰의 결과처럼 보인다는 것을 인식시키게 했다. 반면 헨리 퓨슐리(Henry Fuseli)의 그림 <악몽, 1782>의 경우에는 잠자는 사람의 주변에 상상의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자 위에 웅크리고 있는 생물은 말의 모습을 닮은 '몽마(夢魔)‘를 즐겨 그리기도 했다.

김정원 작가의 경우 ‘말 사진’을 찍는 이유는 자신이 잠깐 망각했던 자아를 제 탐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셀프힐링(Self Healing)’적 요소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매체는 그녀에게 고마운 도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을 바라보면서 자기 스스로 현실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을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인지하고 반추한다. 그녀가 선택한 제주도의 말들은 사람의 모습과 삶의 방식에서 유사한 지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외형적으로는 공통된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내가 바라보고,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처럼, 말 역시 다양한 종류의 말 등이 있으며 쓰임새가 모두 다르다. 초원에서 평화롭게 서 있으면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말의 고요한 눈빛에는 삶의 애잔함이 엿보인다. 그 눈빛은 순수하면서 깊고 슬픈 고독으로 표출된다. 그 눈빛은 서서히 고독이란 무엇인지, 제한된 자유란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쓸쓸한 사육 짐승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언뜻 보이기도 하며, 그녀는 떠났지만, 말의 눈동자에는 아직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다. 초원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잎사귀와 풀들은 말과 조용한 조화를 이룬다. 하늘, 나무, 바람을 부드럽고 섬세한 묘사를 하면서도 때로는 역동적인 말의 모습에서 원시적인 생명체를 체감하게 된다.

제주도의 ‘말’을 사 계절로 표현한 그녀의 사진은 내가 알고 있던 일상적 풍경을 벗어나 있다. 사계절은 인간이면 누구나 평등하게 체감하는 것이지만 각자의 나이와 정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그것은 도시에서 스치고 지나간 풍경들, 빌딩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지금 체감하는 시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 등이 공존하면서 나는 무엇인가? 라고 묻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가 끝나는 지점인지 알 수 없다.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그녀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녀가 그 순간 ‘말’을 통해서 교감하고 느꼈던 기억은 마음속에 쌓여간다. 그녀의 작품들은 원초적 세계를 직접 교감하면서 다가간 세계를 사진으로 묘사한다. 원시성에 대한 기억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야생의 식물, 동물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이 문명의 혜택을 받은 것은 지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알다시피 문명과 기술은 사람들에게 안락함을 선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소외와 결핍을 느끼게 했다. 김정원의 작품은 원초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사진을 통해서 현대인이 상실한 휴머니티를 꿈꾸게 한다. 김정원의 사진에서는 작가의 예술적 방법은 휴머니티에 근접하고 있으며, 말의 눈빛, 몸짓, 표정에서 삶과 예술에 대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작가의 강렬한 열망을 보게 된다. 김정원은 노자(老子)가 지렁이에게는 요통이 없다고 말 한 것럼 ‘말’ 에게는 분명히 있지만,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관객과 함께 천천히 숙의(熟議)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김정원作_다가서다 4_120x66cm_inkjet print_2013

 

 

김정원作_다가서다 5_100x65cm_inkjet print_2013

 

 

김정원作_다가서다 6_100x65cm_inkjet print_2013

 
 

 

 
 

vol.20140305-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