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석 展

 

Forest of colors-2014-3_60x60cm_유리, LED_2014

 

 

금산 갤러리(서울)

 

2014. 2. 5(수) ▶ 2014. 2. 22(토)

Opening : 2014. 2. 5(수) PM 6:00

서울시 중구 회현동 2가 87번지 남산쌍용플레티넘 8-103호 | T. 02-3789-6317   

 

www.keumsan.org

 

 

Forest of colors-2014-4_60x60cm_유리, LED_2014

 

 

금산갤러리는 오는 2월 2일 (수)부터 2월 22일 (토)일까지 유리공예 작가로 알려진 김정석 작가의 개인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포함 약 20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유리조형예술 작품들이 과거에 비해 많은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이는 다양한 첨단 매체들의 활용과 팝이나 개념미술적인 표현의 어려움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석 작가는 역으로 유리가 가진 특유의 질감과 조명 그리고 색채의 조화를 통해 개념적인 유리조형예술의 새로운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회화성은 장식적이면서도 동시에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 중 LED를 활용한 작품들은 과거의 유리조형작품이 가진 장식성과 빛의 투과성 등의 유리 특유의 성질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빛과 색, 그리고 유리를 굽는 과정의 우연함이 뒤섞여 나타나는 회화성과 추상성 그리고 미적 장식성 등의 융합은 그가 ‘유리’작가 라기보다는 유리라는 매개체를 활용한 ‘작가’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Forest of colors-2014-2_120x60cm_유리, LED_2014

 

 

김정석의 유리조형작업

유리조각과 유리회화 그리고 도상학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유리조각. 김정석은 유리공예와 조각을 전공했다(물론 그전에 금속공예를 전공했지만). 아마도 뒤늦게 조각을 전공한 것은 공예만으론 뭔가 부족한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 부족한 것을 조각이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님 공예가 단순한 기능적인 측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보다 결정적인 무엇 이를테면 조형적인 요소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생각이 작가의 유리조형으로 하여금 다른 경우와는 차별화되게끔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리조형 쪽에서 보자면 기능에서 조형으로 표현영역을 확장시킨 경우가 될 것이고, 조각 쪽에서 보자면 재료의 다변화 이를테면 유리를 소재로 한 조각을 실현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런 연유로 작가의 유리조형은 공예보다는 순수미술에 가깝고, 기능보다는 순수조형에 가깝다. 여기서 순수란 작업의 순도 곧 경향성을 말하며, 작가의 작업이 실용성보다는 형식논리에 연유한 감각적 쾌감에 의해 견인되고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작가의 작업은 말하자면 순수미술과 관련한 미술사적이고 미학적인 자기반성적 문제의식이며 자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특히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형식논리와 추상미술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처럼 작가의 유리조형작업은 다른 경우와 차별되는데, 그 경우를 크게 유리조각과 유리회화로 나눠볼 수 있겠다. 같은 유리를 소재로 한 작업이지만 대략 형태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경우와 색채에 의미비중이 실리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겠고, 이런 구분은 공교롭게도 전작에서 근작으로 이행해온 그동안 작가의 작업의 변화과정과도 일치하고 있어서 설득력을 더한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유리조형작업은 말하자면 크게 유리조각에서 유리회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의미 있는 형식실험의 지점 지점들을 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먼저, 유리조각과 관련해 볼 때 흔히 양감과 공간감을 조각의 본질로 들 수가 있겠다. 여기서 양감은 속이 꽉 찬 덩어리로 나타나고, 공간감은 공간을 연출하는 감각적 기술 곧 설치로 나타난다. 작가는 양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통적인 조각과 마찬가지의 캐스팅 기법을 차용해 각종 향수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리지은 향수병들에 인간 군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엄밀하게 작가는 향수병이 아닌 향수병처럼 생긴 형태를 만들었다. 이처럼 사물 자체와 사물과의 닮은꼴 사이에 차이가 생겨나고, 그 차이를 미셀 푸코는 유사라고 불렀다(참고로 푸코는 원본과 사본과의 차이를 견지한 경우를 유사로, 그리고 원본과 사본과의 차이가 사실상 무의미한 경우를 상사로 구별했다). 이런 유사가 유비적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고, 이런 연유로 향수병은 인간 군상이 될 수가 있었다. 인간 군상의 유비적 표현이 될 수가 있었던 것. 아님,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계승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서처럼 재 제작된 레디메이드를 예시해주고 있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향수병 작업이 개념성이 강한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더 감각적인 작업도 있다. 내부에 조명을 장착한, 표면을 갈아 희뿌옇게 만든 긴 유리막대를 얼기설기 엮어서 설치해 놓은 작품이다. 반투명한 유리막대 내부로부터 은근하게 발해지는 빛의 질감이 감각적인 쾌감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한눈에도 형광등을 소재로 한 댄 프래빈의 라이트아트와의 상호 영향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비물질적인 빛을 조형의 요소로 끌어들여 공간경험을 확장시키고 있는 작가의 전략 아님 감각에 공감한 것일 터이다. 나아가 빛과 공간과의 관계로 치자면 광원을 숨겨서 보여주는, 그리고 그렇게 숨겨진 광원으로부터 발해지는 은근한 빛의 질감으로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공간감을 연출해 보이는 제임스 터렐 또한 작가의 유리조각 내지 공간연출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작가의 유리조각은 형식요소(이를테면 양감이나 빛의 물성과 같은, 하나같이 유리와 만나지면서 또 다른 감각적 가능성을 예시해주는) 내지 형식논리에 연유한 모더니즘 패러다임으로부터 일정한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자기 나름의 조형세계를 모색해온 것으로 사료된다.

유리회화. 유리조각으로 범주화되는 일련의 작업들이 형태와 공간연출에 방점이 찍힌다면, 유리회화로 유형화되는 작업들에서 작가는 색채를 적극적인 조형요소로서 끌어들인다. 더불어 평면화의 경향성이 강해지면서 회화의 타블로에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아예 회화처럼 공간을 점유하기보다는 벽면에 걸리는 형식을 취한다(물론 일부 공간에 놓이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회화와 평면이 상호 보충하면서 부합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편견일 수는 있으나, 한국 사람들이 대개 무채색을 편안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고(혹자는 그 원인을 전통적인 유교의 절제미에서 찾기도 한다), 그런 탓에 컬러풀한 회화에는 다소간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없지가 않다. 유리조형 역시 예외는 아닌데,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일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작가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만, 유기적인 형태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인 데일 치훌리의 유리조형작업에 대한 공감과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선 색채의 숲으로 명명된 작업들이 주목된다. 무분별한 붓질을 휘둘러 그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거침이 없고 분방한 표현이 두드러져 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이 제목처럼 색채들이 일렁이는 숲을 상기시키고 색채들의 향연을 떠올리게 한다. 넘치는 에너지며 약동하는 생명력을 현란한 색채에 의탁한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유리조형 버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특히 그라스월 곧 유리벽으로 명명된 작업들이 주목된다. 흔히 유리벽이라고 하면 보이는 장벽 같은 경쟁사회의 메타포를 의미하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이런 의미론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이고 감각적인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유리를 투과해 보이는 사물이며 유리를 통해 굴절돼 보이는 세계에 대한 시지각적 경험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경험은 반투명한 한지가 발려진 창호문을 통해 소리도 바람도 빛도 사물도 한 차례 걸러진 채로 와 닿는, 그리고 그렇게 와 닿는 감각경험을 즐긴 선조들의 미적 감각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사물 자체와의 그리고 나아가 세계 자체와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세계와 주체 사이에 나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아님 세계와 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어떤 심적 내지 상황논리와도 무관하지가 않을 터이다.

그라스월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버전으로 구분되는데, 컬러풀한 색채 사용과 색띠 곧 컬러 스트라이프 패턴이 두드러져 보이는 버전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무채색이 강하면서 유리 고유의 물성이 강조되는 작업들이 있다. 유채색 작업의 경우를 보면, 색띠가 가로 혹은 세로로 연이어져 패턴을 이루고 있는데, 빛의 빔이며 빛의 다발 내지 빛의 속도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투명한 유리의 성질 탓에 내부에 빛을 머금은 색채의 감각효과가 가능한 탓이고, 이로써 단순한 색채 이상의 빛의 메타포를 구현한 경우로 봐도 되겠다(실제로 인상파에선 색채를 빛의 광학적 성질이 구현된 경우로 봤고, 작가의 경우에 유리의 투명한 소재적인 성질 탓에 더 실감 있게 와 닿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빛과 속도와의 관계로 치자면, 빛만큼이나 빠른 아님 빛보다도 빠른 속도가 현대성을 담보해주는 키워드임을 생각하면 작가의 작업은 현대적인 감각도 담보해준다. 그리고 덩달아 세련되고 감각적인 쾌감을 자극하는 장식성도.

이처럼 그라스월 작업의 한 버전이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감각적 쾌감을 자아낸다면, 무채색 작업은 상대적으로 금욕적이고 관념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유도한다. 이를테면 일종의 긴 튜브 형태로 자른 유리막대를 연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투명한 판을 만드는데, 그 이면에는 플랫한 평면의 유리판을 덧대 이를 지지하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색을 입힌 라인 패턴(대개는 비정형의 사각형 형태의 패턴이 반복 변주되는)으로 장식했다. 결과적으로 평면의 유리 패널과 그 표면에 덧입혀진 유리막대 조형 사이에 색 패턴이 갇히게 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사물과 사물 사이며 틈새에 대한 어떤 감각적 성질 내지 지점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는 일종의 사이와 틈새의 사유 혹은 감각에 대한 어떤 지향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그라스월 작업은 적극적인 색채 사용으로 감각적 쾌감과 함께 현대적인 감성을 자극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무채색에 바탕을 둔, 색채보다는 유리 고유의 물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에서 상대적으로 절제되고 금욕적인, 관념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보인다.

도상학. 작가의 다른 작업들도 그렇지만, 작가는 특히 근작에서 일종의 기하학적 형태며 패턴을 적극적인 조형요소로서 도입한다. 이를테면 스트라이프 줄무늬 패턴도 그렇지만, 원형과 사각형을 하나의 화면 속에 대비시키는 식의 작업들이 그렇다. 특히 근작에선 정사각형 형태의 기본형을 견지하면서, 그 가운데 화면에다가 정형의 원형을 포치하는 식이다. 전형적인 중앙집중식 구도랄 수 있겠고, 정면성의 법칙이 강조되는 구도랄 수 있겠다. 중세 기독교 아이콘과 같은 종교적 도상학에서 하나의 전형으로 굳어진 구도랄 수 있겠고, 작가는 이 구도를 추상화의 문법으로 전유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 기하학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며 원형적 도형이랄 수 있는 사각형과 원형을 대비시킨 것이 이런 사실이며 독해를 뒷받침해준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 혹 작가는 이 일련의 작업에서 일종의 내면적인 질서를 구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근작으로 하여금 정신적 질서의식의 메타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때론 이렇게 각각 제작한 작업들을 하나로 배치해 일종의 짝을 이루게 했는데, 그 작업이 도상학적으로 해와 달을 떠올리게 한다. 이로써 작가는 기하학적 도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모티브로 하여 내면적인 질서의식을 구축하고 싶었고, 나아가 마치 우주를 도해한 그림인 만다라와도 같은 우주생성원리를 하나로 함축하고 있는 도상을 그리고 싶었고, 최소한 그 도상으로 표상되는 존재의 원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해와 달을 그린 것(표상한 것)이 맞다면, 이는 전통적인 일월도의 도상을 변주한 것일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작가는 전통적인 도상을 조형요소 내지는 내러티브를 위한 구실로서 차용하고 있는데, 여러 형태로 부적을 차용한 경우와 특히 색동 띠 패턴을 부적과 대비시킨 경우가 그렇다(물론 대개의 작업에서 색상 띠 스트라이프 자체는 청색과 적색과 황색을 중심으로 한 삼원색의 색채감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여하튼). 이처럼 부적을 차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조형적인 요소를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부적 고유의 주술적 의미며 기능을 의식한 것일 수 있겠다. 현대적인 감각과 함께 전통적인 조형요소며 미의식의 성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에도, 말하자면 전통을 현대 위로 불러와 현대의 일부로 녹여내는 일에도 관심이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작가의 유리조형작업은 유리와 조각, 유리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고, 그 경계 너머로 현대와 전통이 하나로 만나지게 하고 있었다. 유리조형작업의 형식적이고 의미론적인 성과들을 감각적인, 관념적인, 그리고 도상적인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이고 있었다.

 

 

Glass wall-2013-1_320x40x20cm_유리, LED_2013

 

 

 
 

김정석

 

Education | 2011 서울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미술박사(D.F.A.) | 1999 일리노이대학 조소과 대학원 수료 | 1996 오하이오 주립대학 대학원 유리과 졸업(M.F.A.) | 199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금속전공 졸업(B.F.A.)

 

Solo Exhibtions | 2013 대부도 유리섬 (안산) | 2010 123Gallery (서울) | 2008 Gallery MOA (헤이리) | 2007 The Museum of Arts&Crafts ITAMI (이타미, 일본) | 2005 김진혜 갤러리(서울) | 2003 금산 갤러리(서울) | 1999 갤러리 우덕(서울) | 1999 ARC Gallery(시카고)

 

Art Fair | 2013, 2010 Chicago SOFA | 2012, 2010 공예 트렌드페어, COEX

 

Collections | 국립현대미술관(과천) | 전주고려병원 병원장 주택(전주) | 해태, 크라운제과 (서울 용산구) | 포도플라자, 1층 로비 및 7층 접견실(서울 강남구) | 벽산 엔지니어링, 회장 사무실 (서울 여의도) | Bonnie Schwartz&Company 주거공간(버지니아, 미국) | 주연성형외과 빌딩 9층(울산) | 금강 한의원 로비 (가평) | 석전빌딩 5층 로비(서울 강남구) | Willard Airport, 1998. 6.1- 8.1일, (샴페인, 미국) | 렉서스 자동차 매장 로비, (서울 강남구 서초동 매장) | 한국 야쿠르트 사옥 2층 로비, (서울 강남구) | 대우 맴버스카운티 주택 거실, (서울 강남구)

 

 

 
 

vol.20140205-김정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