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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 조각 展
BALLET & AUDREY HEPBURN
BALCK SWAN_200x150x75cm_bronze_2013
리서울 갤러리
2013. 11. 13(수) ▶ 2013. 11. 19(화)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3 (인사동 4거리 새마을금고 안쪽 전용 엘리베이터 2층) | T. 02-720-0319 관람시간 | AM 10:30 ~ PM 6:30
SWAN LAKE_100x100x70cm_stainless_2013
작가 노트
30년 동안의 국제경제학 교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나의 고뇌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술과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그 사랑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신을 던지고 싶었다. 나는 예술과의 사랑에 빠져 영혼에 이르는 길을 걷고 싶었다. 65세에 새로이 시작한 것이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에서 조각예술을 연구한 것이다 우선 미의 창조보다 미의 재현에 집중하였다. UNCANNY이다, 말하자면 ‘낮 선 것’이 아니라 ‘낮 익은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늘 뒤흔드는 힘(운동선수들의)의 아름다움(美)에 치중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발레를 선택하였고, 그 대상인물로 햅번(AUDREY HEPBURN)을 선정하였다. 조각가는 머리로 상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표현한다. 그 동안 이런 자세로 조각한 작품을 선보인다.
LA GIOCONDA_22x25x45cm_Tree_2013
작품해설
BLACK SWAN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경제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 블랙스완은 경제학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경제위기를 의미하지만,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 예측을 벗어나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는 것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을 말한다. 예를 들면, 1930년대의 세계적 대공황, 1975년의 외환위기(일명 IMF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사건을 들 수 있다. 스완(SWAN)하면 일반적으로 흰색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수많은 스완을 보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흰색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든 스완은 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1770년 영국의 쿡(JAMES COOK) 함장이 호주 대륙을 발견할 때, 진짜 블랙스완이 발견된 이후로 그 의미는 바뀌었다. 단 한 마리의 블렉스완의 존재는 “고니는 희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세상에 스완이 많이 산다고 해도 그러하다. 단, 한 마리의 블랙스완이라도 존재한다면, 이처럼 블랙스완은 기존의 수많은 사례들로 정착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단 한 가지의 반례(反例)를 상징한다. 이제 블랙스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외적이고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고 있다. 백 마리의 스완 가운데 한 마리가 검다는 뜻이 무색할 만큼 국제경제에서나, 인생살이에서나 꽤 자주 출몰하고 있는 현상이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렵다. 어떠한 위기가 언제 일어날지 불확실하다.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재해석한 영화 <BLACK SWAN>의 주인공(니나)의 역을 맡은 포트만(Natalie Portman)의 연기가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느낀다.
SWAN LAKE 아주 오랜 옛날 독일의 전설에 조용한 호수가 있는 숲속에서 왕자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호수가에는 하얗고 우아한 백조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왕자들의 노림에 놀란 백조들이 호수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LA GIOCONDA 라 지오콘다(LA GIOCONDA)는 MONA LISA의 별칭으로 이탈리아어로 <행복한 여인>이라는 뜻이다.
나이브한 매력과 정통의 권위 사이에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 오 상 일)
1. 앙리 루소(Henri Rousseau, 세관원, 프랑스, 1844-1910) 2. 로버트 모세(Robert E. Moses, 주부, 미국, 1860-1961) 3. 세라핀 루이(Seraphine Louis, , 가정부, 프랑스, 1864-1942) 4. 헨리 다져(Henri Darger, 수퍼마켓 직원, 미국, 1892-1973)
모더니즘의 역사는 세계와 인간의 본 모습을 과학과 이성중심의 가치관 위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고 정의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모더니스트 예술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의 본질적 조건을 질료적 특성으로 이해하려 했다. 예술이 진정 독자적으로 예술일 수 있도록 담보해주는 것은 예술을 떠받치는 하부구조, 즉 지지체(support)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교조주의는 표현대상을 물질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고 있는 단순추상형태로 한원 시킬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형식주의는 그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모더니즘이라는 기나긴 형식주의의 대열에서 위에 열거한 작가들은 국외자들이었다. 이들은 미술학교에 다닌 적도, 그럴듯한 전시회에 참여한 적도, 나아가 자신의 예술적 이념을 주장한 적은 더더욱 없다. 형식이니, 물성이니, 환원이니 하는 단어들은 공부 많이 한 엘리트 작가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이들은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렸을 뿐이다. 교양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어 투박하고 촌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아이같이 솔직한 시각과 참신한 표현 때문에 기성 권위도 귀엽게 보아 준 아마추어들이었다. 그리고 미술사는 이들을 작품의 성향이나 시대에 관계없이 소박파(素朴派naive artist)라는 명칭으로 뭉뚱그렸다. 우리말에서 소박하다는 말은 대개 칭찬의 뜻으로 쓰이지만 영-불에서의 나이브는 천지 분간 못하는 순진함이라는, 경멸의 뉘앙스가 더 강한 단어다. 그러니까 나이브 아트는 모더니스트 예술에서 완전한 서자였던 셈이다.
신진 작가 이균을 보면 바로 연상되는 것이 젊음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유일한 밑천으로 삼아 미술사에서의 일가를 이루어낸 소박파 예술가들이다. 그가 자신의 작가 노트에서 술회하였듯이 78세에 그림을 시작한 모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이제 와서 조각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그 실천으로 어느 해 봄 필자의 <조각조형연구>라는 강의 시간에 불현듯 나타났다. 정년을 한 학기 남겨둔 홍익대학교 무역학과의 교수가 아니라 미술대학원 신입생의 자격으로 들어온 것이다. 원로교수이며 동시에 학생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불편을 감수하며 막내 조카 또래의 동급생들 가운데서 보여준 진지한 열의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가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을지, 나아가 작가로서의 경력을 구축해 갈 수 있을지,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없었다. 미술계라는 곳이 들어오기는 쉬워도 그 안에 자리잡고 앉기는 힘든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 이상의 추진력으로 일련의 과정들을 수행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가 남다른 뚝심을 지닌 사람이란 걸 재차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문화센터 등록하듯이 대학원에 지원했던 것이 아님을 당당히 증명한 셈이 된다.
필자가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의 면면을 보면서 느낀 인상은 쉽고도 순박함이다. 이들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 솔직하고, 난삽한 개념과 개인적 트라우마(trauma)를 이해해달라고 들이대지 않아서 편안하다. 전시 작품은 거의가 누드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이 <BALLET & AUDREY HEPBURN>이다. 이 작품은 오드리 헵번의 흉상을 토 슈즈를 신은 그녀의 발들과 함께 배치한 조각설치 작품이다. 그가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던 불멸의 스타, 헵번의 매력을 고전 발레에 유비시킨 작품이다. 헵번의 맵시와 고고한 자세는 발레 수업을 통해서 습득된 것이기에 토 슈즈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제유(synecdoche)가 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특기할 것은 토 슈즈를 신고 있는 발이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생략되고 파편으로서만 남아있는 발들은 이때 하나의 페티시(fetish)가 되어 전체로서의 신체를 대신하게 된다. 이러한 신체의 파편은 <BLACK SWAN>에서도 등장한다. 작가는 차이콥스키의발레‘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는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BLACK SWAN>과, 거기에서 주연한 나탈리 포트만의 뛰어난 연기에 감동하여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무대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세 명의 White Swan과 한 명의 Black Swan 뒤에서 배경을 이루고 있는 Corps de Ballet가 그것이다. 열두 명으로 하나의 조를 이루는 이들 무용단은 앞에 나와있는 주역들과 달리 골반 위부터 잘려나가 허벅지 아래만 남아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도 파편으로서의 신체, 즉 부분대상(part-object)으로서의 하반신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대목이 필자의 주의를 끄는 지점인데, 바로 부분 신체가 주는 언케니(uncany)와 페티시(fetisch)가 만나서 이루어내는 기묘한 에로티시즘 때문이다. 전족(纏足)한 여인의 신발을 벗겨 거기에 술을 따라 마셨다는 중국 남자들의 기방설화라든가, 그네 타는 여인의 벗겨진 신발을 그린 프라고나르(Jean H. Fragonard)의로코코회화는이러한페티시즘의한가지전형이아니겠는가? 예술에서 에로티시즘은 음식에서 양념과 같은 것이다. 누드는 에로티시즘의 산물이고, 서양의 미술사는 곧 누드의 미술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균은 이러한 전통 위에 자신의 예술을 세우고 싶어한다. 따라서 그의 주요 모티브는 단연코 누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밖에도 아르키펭코(Alexander Archipenko)의 입체주의 조각을 연상하게 하는 <APHRODITE>. 토르소의 허리를 절단하여 상부와 하부 사이에 턱을 만들고 그 위에 붉은 사과를 올려놓음으로써 초현실주의적 전치(displacement)와 메타포()를 시도한 <SPACE EVE>. 하나의 토르소 모티브를 동일한 형태의 브론즈, 대리석, 화강석의 토르소로 변주함으로써 재료와 형태 사이의 긴장관계를 실험한 <CHASETENESS>.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있는 발레리나의 실루엣을 평면으로 오려낸 후 다시 여려 겹의 층으로 겹침으로써 생기는 이미지의 중첩효과를 실험한 작업 등이 모두 누드이다. 또한 지금은 장성하여 출가한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을 대리석으로 재현한 <DREAM>, 그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베컴(David Beckham)을사실적으로묘사한흉상<SOCCER PAYER>, 여인의 두상을 단순화시켜 대상의 특징만 남긴 <LA GIOCONDA> 등도 함께 전시된다. 조각 단독상(單獨像)으로서, 또 어떤 것은 단독상들이 모여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 이균 조각의 모티브는 모두가 그가 사랑하는 생활 주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모더니즘이 계몽주의 시대 이후 견지해 왔던 로고스중심주의와 이분법적 세계관을 해체한 것이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래서 대상세계를 구분 짓던 경계와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중심과 주변, 성스러움과 비속함,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것이라고 요약한다면, 나이브 아트야말로 다시금 조명해야 할 포스트모던적 징후가 될 것이다. 모더니스트 시대가 세운 가치의 위계질서가 붕괴되면서 엘리트 예술과 저급예술, 즉 적서(嫡庶)의 차별도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예술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예술의 책무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종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와 삶을 바라보게 하고, 사유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늘의 예술가는 미의 생산자가 아니라 담론의 생산자인 것이다. 따라서 미의 생산자로서의 예술가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던 기술(technique)은 철학과 태도(attitude)로 대체되기에 이르렀고 예술가는 그럴 듯한 개념만 제시하거나, 영화감독처럼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전문가를 데려다 쓰면 되게 되었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월드 아티스트들 중에 미술 비전공자가 적지 않은 것도 변화의 한 방증이다. 이러한 탈경계(脫境界) 상황은 워홀(Andy Warhole)의 말대로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게 하였고 누구나 예술가일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아이처럼 유치하거나 서툰 표현 방식이 오히려 환영 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개벽의 시대에 이균이 새삼 제도권 미술교육을 선택함으로써 정통을 찾아가고자 애쓰는 것을 볼 때 필자는 지도교수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필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여러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가 없다. 포스트모던 예술은 승화(sublimation)와 정제(purification)를 거부함으로써, 우리 몸의 비천한 구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지나친 사변이나 노출증적 자기고백으로 시끄러운, 퇴행의 예술이다. 단토(Arthur Danto)는 그의 주저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포스트모던 예술이 미학적 수행으로부터 해방되어 철학과 내러티브(narrative)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을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의 확장으로 보고 있지만, 필자는 그것이 정박점(碇泊点)을 잃고 표류해야 하는 정체성 상실의 또 다른 위기는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가 이균이 추적하고 있는 소박한 예술, 즉 생활에서 비롯하여 생활로 회귀하는 예술, 예술의 효용과 책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예술, 그래서 너무나 명백하고도 단순한 예술이 시사하는 바는 작금의 예술이 안고 있는 부정적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또한 그가 이제 와서 소박파의 조각가가 아닌 정통파의 조각가로 나선 이상, 자신의 작업을 떠받칠 형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자기만의 것으로 양식화할 것인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2013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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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균 Lee Gyun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조각전공)졸업 한국조각가협회명예이사, 한국구상조각회회원 수상 | 단원미술제 입선2회 | 목우회 특선 | 기독교미술대전 특선 | 통일교미술축전 은상 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학장(경제학박사) E-mail | lg4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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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31113-이균 조각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