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희 展

 

'생의 터, 사이의 공간'

 

ⓒ 터, 지속된 시간_제주 우도_80x100cm_pigment print_2007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

 

2013. 5. 24(금) ▶ 2013. 7. 15(월)

Opning : 2013. 5. 24(금) PM 18:00

부산시 해운대구 해변로 299번지 토요타 부산 전시장 | T. 051-731-6200

주최 | 토요타 주관 | 고은문화재단, 고은사진미술관

 

www.toyotaphotospace.org

 

 

ⓒ 터, 지속된 시간_경북 문경_130x150cm_pigment print_2011

 

 

고은사진미술관이 후원하고 토요타 부산이 운영하는 사진전문 전시공간인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는 2010년 개관이래 신진작가 후원과 더불어 부산지역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다양한 사진문화와 예술 체험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면서 부산의 문화·예술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다.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는 그 동안 다양한 기획전과 교류전을 소개해오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사진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2013년부터는 1년의 계획을 크게 총 4개의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진행하고자 한다. 연간계획은 외국신진작가 교류전과 갤러리 룩스와 류가헌 갤러리와의 교류전, 부산지역작가 지원전 그리고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가 이제까지 주력해왔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靑사진은 한국사진계의 흐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열정과 의욕에 넘치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사진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고은사진미술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지속화할 예정이다. 靑사진은 사진계의 신진작가 군群이라는 의미와 한국사진계의 미래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2013년에는 4인의 작가를 선정하여 “차이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제로 크게는 사진과 현실, 내부와 외부, 작게는 각 작가와 작품 사이의 차이들이 만들어낼 전시 풍경을 제시할 것이다.

 

2013년 靑사진의 세 번째 전시로 차경희의 <생의 터, 사이의 공간>展이 선정되었다. 차경희의 첫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터, 지속된 시간’과 ‘生, 바다풍경’으로 구성된다. 이 두 시리즈는 그 동안 작가가 꾸준히 묵묵하게 작업해온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여정이다. 2002년의 작업들인 ‘소록도’, ‘다방레지’, ‘음모이론’에서 보여준 흑백 인물 사진이 중심에서 비껴난 삶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였다면, 풍경사진으로 넘어온 이 두 시리즈는 자연이라는 공간과 인간의 보편적 기억 사이에서 포착되는 예민한 감수성이다. 높고 아득한 산과 펼쳐진 들, 깊고 축축한 강과 바다는 우리 곁을 떠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그 안에 품고 있다. 기억,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숨죽이고 있다. 차경희의 사진은 이러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 저 멀리 혹은 가까이 펼쳐진 자연풍경은 억지스럽지 않다. 직관적이다. 그러면서도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공존을 말하는 큰 주제와 작은 세부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터, 지속된 시간’에서 자연풍경 속에 녹아든 삶과 죽음의 공간은 명료한 시야와 적절한 빛 그리고 차분한 색으로 드러난다. 하늘빛과 대비되는 초록빛, 미묘하게 구분되는 산의 능선과 밭고랑의 선線적인 구성, 그리고 아련한 산안개와 조화로이 놓인 무덤을 보면 얼핏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하게 표현된 풍경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차경희의 전략이다. 대형카메라로 작업을 하면서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관찰하여 신중하게 작업하는 작가의 스타일까지 더해져 이 전략은 결국 성공한다. 차경희는 풍경을 관조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관객 역시 대상의 조화를 조용히 관조하기를 바랐을까?

 

 

 

ⓒ 터, 지속된 시간_충북 괴산_80x100cm_pigment print_2007

 

 

고은사진미술관이 후원하고 토요타 부산이 운영하는 사진전문 전시공간인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는 2010년 개관이래 신진작가 후원과 더불어 부산지역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다양한 사진문화와 예술 체험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면서 부산의 문화·예술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다.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는 그 동안 다양한 기획전과 교류전을 소개해오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사진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2013년부터는 1년의 계획을 크게 총 4개의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진행하고자 한다. 연간계획은 외국신진작가 교류전과 갤러리 룩스와 류가헌 갤러리와의 교류전, 부산지역작가 지원전 그리고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가 이제까지 주력해왔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靑사진은 한국사진계의 흐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열정과 의욕에 넘치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사진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고은사진미술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지속화할 예정이다. 靑사진은 사진계의 신진작가 군群이라는 의미와 한국사진계의 미래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2013년에는 4인의 작가를 선정하여 “차이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제로 크게는 사진과 현실, 내부와 외부, 작게는 각 작가와 작품 사이의 차이들이 만들어낼 전시 풍경을 제시할 것이다.

 

2013년 靑사진의 세 번째 전시로 차경희의 <생의 터, 사이의 공간>展이 선정되었다. 차경희의 첫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터, 지속된 시간’과 ‘生, 바다풍경’으로 구성된다. 이 두 시리즈는 그 동안 작가가 꾸준히 묵묵하게 작업해온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여정이다. 2002년의 작업들인 ‘소록도’, ‘다방레지’, ‘음모이론’에서 보여준 흑백 인물 사진이 중심에서 비껴난 삶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였다면, 풍경사진으로 넘어온 이 두 시리즈는 자연이라는 공간과 인간의 보편적 기억 사이에서 포착되는 예민한 감수성이다. 높고 아득한 산과 펼쳐진 들, 깊고 축축한 강과 바다는 우리 곁을 떠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그 안에 품고 있다. 기억,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숨죽이고 있다. 차경희의 사진은 이러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 저 멀리 혹은 가까이 펼쳐진 자연풍경은 억지스럽지 않다. 직관적이다. 그러면서도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공존을 말하는 큰 주제와 작은 세부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터, 지속된 시간’에서 자연풍경 속에 녹아든 삶과 죽음의 공간은 명료한 시야와 적절한 빛 그리고 차분한 색으로 드러난다. 하늘빛과 대비되는 초록빛, 미묘하게 구분되는 산의 능선과 밭고랑의 선線적인 구성, 그리고 아련한 산안개와 조화로이 놓인 무덤을 보면 얼핏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하게 표현된 풍경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차경희의 전략이다. 대형카메라로 작업을 하면서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관찰하여 신중하게 작업하는 작가의 스타일까지 더해져 이 전략은 결국 성공한다. 차경희는 풍경을 관조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관객 역시 대상의 조화를 조용히 관조하기를 바랐을까?

 

 

ⓒ 터, 지속된 시간_경남 하동_130x150cm_pigment print_2011

 

 

사진을 찬찬히 살피면 그 거리 두기 안에 숨어있는 미묘한 그러면서도 도드라지는 뉘앙스가 엿보인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 폭풍우를 일으킨다. 그것은 마음과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이것은 관조가 아니라 차라리 숭고다. 차경희의 사진에 주목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외심과 존엄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生, 바다풍경’ 시리즈, 바다의 옅은 흔적 안에서 생의 의지를 읽어낸 차경희의 시선으로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온 것이다. 이 세계와 존재의 만남은 관계와 조화라는 사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나오는 순간, 거칠게 갈라진 땅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한줄기 생명은 작가의 내적 특성이 응축된 풍경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감각의 밀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형카메라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생의 터, 사이의 공간>은 인간이 공간을 통해 감당하는 기억과 시간의 지속에 대한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생의 순환과 조화 그리고 생의 역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기억과 지속을 드러내주는 사진에 대한 믿음과 거침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켜내야 할 삶의 공간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이 믿음과 애정이야말로 차경희 사진이 지닌 힘이다. 묵묵하게 작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가 차경희의 첫 개인전이라는 사실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는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인 靑사진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차경희의 마음이 이 전시를 통해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 터, 지속된 시간_강원 태백_130x150cm_pigment print_2008

 

 

작가노트

 

‘터, 지속된 시간’

 

“우리가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하면, 죽음마저도 그 사랑에 빠져서 자기의 임무를 그만 잊어버리고, 소멸 시켜야하는 그 사람을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남겨 놓는 건 아닐까. 그것이 사진 이미지가 아닐까.”

<김진영 ‘조용한 날들’ 중 발췌>

<터, 지속된 시간>은, 먼저 떠난 동생의 죽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죽음은 일상에서 한 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우연한 사건이었다. 이젠 그리움으로 머물 뿐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은 기억 속에 또 다른 존재로 머물러 죽음은 사라짐이 아닌‘살아 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누운 자리에선 무엇이 보였을까. 그 눈에 우리가 사는 집이 보였을까.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나는 ‘죽은 자가 살고 있는’ 그 흙을 품은 곳, 자연 풍경으로 향하였다.

<터, 지속된 시간>의 촬영을 시작하면서 국토의 자연 풍경과 생활공간 그리고 죽음의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자연 속의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만 주목하기보다는 모두를 공평하게 보여주는 위치에서 관찰하고자 하였다. 낱낱의 대상에게 이끌리지 않고, 자연의 미세한 실핏줄까지 들여다봄으로써 그에 순응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사계절을 단아한 색으로 재현하여 자연과 산 자의 생활공간 그리고 죽은 자의 거처인 무덤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였다. ‘터’는 죽은 자의 거처와 산 자의 생활 터전을 의미하며, 그 안에서 무덤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매개체가 된다. <터, 지속된 시간>은 한국의 일상적인 자연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경계나 단절이 아닌 지속의 관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삶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

2013년 차경희

 

 

ⓒ 生, 바다풍경_130x150cm_pigment print_2004

 

 

‘生, 바다풍경’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물이 들어오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그 물이 빠지면 아낙들이 조개를 줍는 갯벌이었다. 어느 날 바다와 함께 이곳의 많은 생명들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살아 남지 못할 것 같은 갈라진 이 바다의 흔적 위에 또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바닷게가 그 틈을 파 살아갈 터를 만들고, 염분을 먹고 자라는 칠면초가 억척스럽게 꽃을 피운다. 봄날 그것은 아무리 밟아도 구김 하나 없이 다시 일어서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조심스런 발걸음에도 이내 바스라진다.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린다.

지난 5월, 봄이 지나가고 있는 이곳에 처음으로 와 지난 계절을 이곳에서 바라보며 보냈다. 생활의 깊은 발자국에 밟힌 나에게 이곳은 위로의 안식처였던가? 아름다움을 앓은 다음 다시 그 아름다움을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잊혀짐이 필요한 것일까? 바다의 흔적만이 남은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서 생의 떨림과 기다림을 배웠다. 나약하지만 제 생명의 값을 당당히 치르고 있는 이들에게서 생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버려진 장갑과 장화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이 땅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오늘을 이야기하듯, 이 사진들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열정으로 꽃피우며 살고 싶어 했던 내 젊은 날의 시간을 이야기 해 줄 것이다.

2006년 차경희

 

 

ⓒ 生, 바다풍경_80x100cm_pigment print_2006

 

 

먼 시선 혹은 무덤의 연금술

 

차경희의 <터, 지속된 시간> 사진들은 무덤 사진들이다. 그런데 무덤을 렌즈로 포착하는 차경희의 시선은 좀 특별한 데가 있다. 그녀는 가능한 먼 시선으로 무덤들을 프레임 안에 담는다. 그 먼 시선 안에서 차경희의 무덤들은 프레임 공간의 전부를 차지하는 풍경들 속에 묻혀 있거나 스며있다. 차경희의 사진 공간은 탈주제화의 시선을 통해서 주제를 감추면서 드러내는 변증법적 공간이 되며, 그 복합적인 공간 안에서 무덤들은 단순한 시각적 주제를 초과해 꼼꼼히 읽어내야 하는 다의적 기호로 변한다. 차경희의 사진을 이해하는 일은 다름 아닌 이 기호의 다의성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경희의 무덤 기호는 어떤 의미들을 지시하는 것일까.

나는 우선 존재론적 관점으로 차경희의 무덤 사진을 읽는다. 그랬을 때 주목을 끄는 건 생과 사의 상호관계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시선이다. 차경희의 시선 안에서 무덤은 오히려 생의 내부로 들어와서 생이 겪는 모든 일들을 함께 겪는다. 조금만 더 깊이 응시하면, 풍경 속에 사소한 디테일로 소속된 것 같은 무덤은 오히려 풍경의 중심인 것처럼 여겨진다. 차경희의 무덤 사진이 존재론적이라면, 그 존재론은 역설적이다.

다음으로 나는 차경희의 무덤 사진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응시한다. 그럴 때 먼 시선으로 포착된 무덤은 ‘애도’의 기호로 읽힌다. 프루스트에게 애도는 죽은 자와의 이별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기 안에 내포 시키는 기억 작업이다. 차경희의 무덤 기호 또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자연 안에 오롯이 내포되어 생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듯한 차경희의 무덤들은 이별과 망각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나 보내지 않고 생 안에 간직하려는 추억과 불망의 이미지를 더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차경희의 사진들이 애도사진이라면, 그녀의 무덤들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자기 안에 스스로 지어 놓은 마음의 무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차경희의 무덤 기호를 사진 이미지 자체에 대한 메타이론적 관점으로 읽는다. 사진과 무덤 사이의 내밀한 관련성에 대하여 누구보다 천착했던 사람은, 잘 알려져 있듯, R. 바르트다. 바르트에게 사진은 죽음과 이중적인 관계를 지니는 이미지다. 하지만 다른 한편, 사진은 ‘죽은 자의 귀환’이다. 이 사실은 차경희의 무덤 기호를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는 시니피앙으로 읽게 만든다.

 

사진이 살아있는 과거의 공간이라면, 사진이 된 무덤은 이제 죽음과 추억의 공간이 아니라, 죽은 자가 여전히 살아 있어 현재로 귀환하는 마술적 공간이다. 말하자면 차경희의 사진 행위는 무덤을 죽은 자의 거처가 아니라 산 자의 거처로 바꾸려는 연금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덤과 사진의 연금술이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자기 마음 안에 무덤을 짓고 죽은 자를 그 안에 간직하는 사랑의 시선으로만 가능해지는 연금술이기 때문이다. 차경희의 사랑은 아직 진행형인 것 같다.

아케디아에서 비타노바로

차경희의 <生, 바다풍경> 사진들은 아케디아 사진, 삭막하고 메마른 마음의 풍경 사진처럼 보인다. 그래서인가, 하늘과 땅과 그 사이 영역으로 삼분 구획된 사진 공간 안에서 모든 것들은 낮다. 낮은 공간들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말 없음이 아니라 말 막힘으로 다가온다. 말 없는 사진의 침묵을 듣자면, 그건 환청으로만 들을 수 있다. 지우는 소리, 깨지는 소리, 뚫는 소리, 흐르는 소리, 자라는 소리 - 차경희의 풍경 사진은 소리의 풍경 사진이다.

하지만 또 하나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건 소리들 안에서 들리는 소리, 즉 소리들이 변하면서 이동하는 소리다. 차경희의 사진이 소리의 풍경 사진이라면, 그 사진들을 이해하는 일은 다름 아닌 이 소리들의 동선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동선을 나는 아케디아(Acedia)에서 비타노바(Vita Nova)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이해한다. 메마르고 삭막한 아케디아의 땅에서 새로운 생이 발견되고 자라나는 비타노바의 땅으로 건너가는 생의 행로가 그것이다. 차경희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몹시 아팠던 것 같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백토와 습지 그리고 초지의 풍경들을 채집했던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풍경 채집을 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아픈 마음의 행로를 따라서 걸어갔던 것은 아닐까. 아케디아에서 비타노바로 이동하는 생의 행로를. 그런데 삶이 걸어가는 이 생의 행로를 모르는 사람이 그 누가 있을까. (전시서문 중 부분 발췌)

 

김진영 (예술비평, (사)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장)

 

 
 

■ 차경희

 

학력 | 2008 중앙대학교 대학원 (순수사진) 졸업 | 2005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순수사진) 졸업 | 2003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단체전 | 2009 사진비평상 10주년 기념전, 서울시립미술관, | 2009 21C 뉴실크로드전, 주중한국문화원, 북경, 중국 | 2008 The 809 International New Image Art Festival_the 809 international art residencies, | Yichang, 중국 | 2007 대도시의 초상, 대한보증보험갤러리, 서울 | 2007 중앙 미술제, 갤러리 현, 서울 | 2006 중국중앙민족대학 교류전, 민족대학교 미술관, 중국 | 2005 제 7회 사진비평 공모전 수상전, 룩스 갤러리, 서울 | 2005 View-point, 서신갤러리, 전주 | 2005 사진 속 여성성, 영광 갤러리, 부산

 

수상 | 2005 제 7회 사진비평상 수상, 아이포스 | 2002 제 1회 대학사진공모전 대상수상, 빙그레

 

소장 | 2009 주중한국문화원, 북경

 
 

vol.20130524-차경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