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돈순 展
통섭 (通涉) | Proposal for Symbiosis
통섭(通涉)-뮤즈를 꿈꾸며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전선 자동차도료_122x160cm_2012
영은미술관
2013. 3. 2(토) ▶ 2013. 3. 31(일) 초대일시 : 2013. 3. 9(토요일) 4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통섭 (通涉) 이돈순 통섭通涉은 한마디로 소통이다. ‘사물에 널리 통하고, 서로 사귀어 오간다’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독선과 대립을 넘어 나와 타자 사이의 관용과 이해, 접촉과 열린 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나는 통섭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조화로운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서로간 또는 다자간 소통을 전제로 차이와 동질성을 용인해가는 과정적, 수용적 태도라는 점에서 생태적, 윤리적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자연을 향한 직관적, 교감적 태도를 자각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자연이 생태적 관련을 맺고 살아가듯 조형 속에서 통합되는 형식에 대한 모색이다. 자연은 독점과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 가치의 복원을 통한 나눔과 참여의 대상이며, ‘생태적 자연’ 혹은 ‘관계적 자연’ 속에 재구성될 때라야 보다 항구적인 의미를 지닌다. 삶의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소소한 것,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인간의 욕망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숱한 동·식물군이 모두 이 관계적 자연의 주인공이다.
통섭(通涉)-Speaking flower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스피커 자동차도료_122x180cm_2012
통섭(通涉)-맨드라미 정원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자동차도료_122x180cm_2012
나의 그림은 자연과 사물로부터 기원하여 독립된 공간으로 나아간다. 내 그림 속 주인공들, 가령 꽃이나 동물, 사람의 형상은 그들 본래의 자리와 고유성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공간의 질서 속에서 분화하고 화합해가는 존재로 재구성된다. 그 처음은 대상의 이미지를 무수한 점 또는 잎(선)으로 바꿔가는 드로잉 과정에서 비롯된다. 작은 나뭇잎 속의 무한한 잎맥의 세계에서처럼, 나의 작업에서는 환형의 작은 이파리, 즉 새싹의 생명력과 자연을 상징하는 하나의 ‘잎’이 공간과 부피(세계)를 조직해 가는 최초의 질료이자 씨줄과 날줄이다. 그것은 또한 점과 선이라고 하는 조형의 근원을 더듬는 행위이기도 하다. 점은 선에 공간을 들여놓음으로써 얻어지고 선은 점에 시간을 더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런 면에서 점과 선은 사물의 본질을 함축하는 생명의 발아점이다. 한 점으로서의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지구의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공간을 점유하여 그 공간과 공간을 잇는 시간을 구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삶의 다양성은 공간과 시간의 복잡성에 다름 아니며, 조형언어란 이 삶의 체적이 가시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섭(通涉)-After the war_패널에 못과 나사 자동차도료_122x122cm_2011
통섭(通涉)-아버지의 둥지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자동차도료_122x122cm_2011
통섭(通涉)-여인과 파랑새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자동차도료_122x122cm_2012
나는 꽃과 동식물 등 자연의 생명 현상과 각각의 형상성에 깃든 회화적 변용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붓과 먹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 대신, 목판에 금속성의 못과 나사 등 일상성을 반영하는 소재들을 활용하여 자연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자연과 문명, 옛것과 새것의 조화라는 동시대적 과제에 집중해 온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질료가 회화적 손질을 거쳐 새로운 세계에 이르는 과정만큼이나, 하찮은 사물이 회화적 질료로 작용할 수 있음에 재미를 느꼈다. 이미 익숙한 질료에 대한 식상함을 포함하여, 사물과의 교감이나 어떤 작은 선택과 수식의 변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모든 창작의 동기에 앞서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화가의 몸이 재료와 함께 호흡하듯, 세상에 대한 화가의 인식은 불가피하게도 물질과 통섭함으로써 구현된다. 따라서 인식과 상상력을 통해 ‘선택하고’ 또 ‘선택된’ 소재와 제재의 교집합 속에서 세상을 향한 화가의 정체성이 버무려질 수밖에 없다. 미술의 처음과 끝이 작가자신의 세상을 구현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로, 화가의 마음(정신)은 재료(물질)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통섭(通涉)-Sing travel_패널에 스테인리스 못과 나사 자동차도료_122x122cm_2011
예술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대지에 뿌리박고 있는 자연 현상에 정서적, 개념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세계상의 진실과 마주하고 싶어 한다. 관례에 대한 도전과 자기 부정, 그러면서도 관계성을 향한 끊임없는 집착은 삶의 토대에 생명을 불어 넣고, 인간, 사회, 세계에 대한 경험적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그것은 타자와의 접촉과 소통일 뿐만 아니라, 생동하는 자연 속 구성원들간의 신비로운 교감이다. 그 속에서 나와 세계, 정신과 물질, 새것과 옛것, 식물과 동물, 꽃과 물고기와 곤충과 새가, 서로 상존하고 교감하고 통섭(通涉)할 수 있다. 통섭은 끊임없는 ‘물음’과 ‘알아감’의 상호 간 교감 과정이며, 그것은 그대로 화가가 대상과 질료, 재현과 표현의 세계로 다가가는 방식이다.
|
||
■ 이돈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미술관, 한림(대림)미술관, 갤러리 우덕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전업작가로 전향한 이후 주로 자연 및 동양적 감수성을 근간으로 일상과 사물(objects), 장르, 문명 등을 아우르는 실험적 형식의 작업을 펼쳐왔다. 7회의 개인전과 100회 이상의 단체 및 기획전을 가졌고,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 참여중이다.
|
||
vol.20130302-이돈순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