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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dot 인 展
LIG 아트스페이스 개관전 <내 마음의 산수>
강강훈_Lost icon-Black rudolph Ⅰ_194x130.3cm_oil on canvas_2009
LIG 아트스페이스
2012. 10. 12(금) ▶ 2012. 11. 27(화) Opening : 2012. 10. 12(금) PM 6:00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71 | 02-333-0633
강준영_No place like home series-I love you...(Ceramic type 1)_ 50x50x50cm_Painting on ceramic_2011
기억의 점묘(點描) 이건수 <산수.인> 기획, 월간미술 편집장
“음 음 음…”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3개의 동그라미는 단지 3개의 개념을 지시하는 부호가 아니다. 흔히 “말줄임표”, “말없음표”라고 불리어지는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 마주치면서 생겨나는 어떤 생각의 시작일 수도, 마무리일 수도 있다. 그림 역시 세상에 대한 이 말줄임의 여운으로부터 피어난다. 특히나 동양의 산수(山水)는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현장이나 풍경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된 말없음의 꿈에서 시작되는 서사시 같은 것이다. 풍경화나 산수화나 모두 자연을 바라보고 떠오른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공간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 혹은 향수를 드러낸다. 그것은 현실에서 소유할 수 없는, 인간의 언어로 서술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공간이다. 화가는 마음 속에서 그 풍경과 하나 되길 갈망하며, 그 속으로 걸어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 길의 시작은 궁극의 미적 이상을 내포한 하나의 점(點)이다. 그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화가는 결국 자신만의 화두(話頭)와 기법과 재료를 갖고, 그것이 일상의 풍경이든, 관념의 풍경이든, 말없음의 도(道)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을 지켜라.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고, 노자(老子)는 “도를 도라 말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말했다. 우리의 협소한 개념과 언어로 광대한 진리를 규정지을 수는 없다. 우리는 ‘말없음표’로 수많은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No.10 (악의 꽃)_100x100cm_ 숯, 알루미늄 망, 아크릴물감, 캔버스 천_2010
중국 송(宋)나라의 범관(范寬)이 그린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는 이런 말줄임표의 이미지화 된 집적을 통해 그 산의 정신, 그 물의 리얼리티를 웅변하고 있다. 범관이 체험과 기억의 혼재 속에서 그려갔을 바위산의 검은 점들과 덩어리들은 우리를 침묵의 도로 이끌고 있다. 그 숭고함의 산수 앞에서 무슨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이번 전시 <산수.인>은 빛 점으로, 색 점으로 그 열려진 도를 만지고 기록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점의 행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뉴욕에서 떠올린 조국의 산하와 추억의 얼굴들을 점 하나하나로 응결시킨 ‘산수 없는 산수화’, ‘얼굴 없는 초상화’이듯, 결국 그들의 그림은 그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마음의 풍경이며, 우리에게 열어주는 유토피아의 그림자이다. 그룹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 중엔 “음 음 음”의 가사로 넘어가는 후렴부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첫사랑과의 갑작스런 만남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하기에 너무 아련하고,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말들…. “음 음 음”이라는 3음절에 담겨진 기나긴 추억의 이야기들을 <산수.인>의 그림들 속에서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박선기_An aggregate 201103_60x60x270cm_ Charcoal, Nylone threads, stone, etc_2011
이이남_신-단발령망금강_LED TV 5min30sec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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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작가 : 강강훈, 강준영, 구성수, 김동유, 김세중, 김용호, 노자영, 박선기, 박승모, 박은선, 변재희, 이관우, 이길우, 이이남, 이재효, 홍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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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1012-산수 dot 인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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