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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영 展
'꿈꾸는 상자'
꿈꾸는 상자_111x162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갤러리 아이
2012. 10. 10(수) ▶ 2012. 10. 23(화)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83-13 | T.02-733-3695
꿈꾸는 상자_60x72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원색적인 이미지로 표출되는 생의 환희
신항섭(미술평론가)
사람은 저마다 비밀의 상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상자는 실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실체가 없는 마음속의 것일 수도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아주 소중한 것을 넣어둔다. 마음속의 상자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아주 비밀스럽고 소중한 것을 담아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더러는 그 상자를 열어 누구에겐가 은밀히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다. 문득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거나 또는 자랑하고 싶다는 그런 기분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꿈꾸는 상자_60x72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유진영의 작업은 상자를 소재로 한다. 하지만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가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속의 상자를 제재로 한다. 마음속의 상자라고는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선물상자의 모양을 그대로 따른다. 기하학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육면체의 상자를 열거나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형식의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온전한 형태의 닫힌 상자가 아니라, 열린 상자의 이미지인 셈이다. 닫힌 상자를 열어 속을 드러내는 것이다. 종이로 만든 선물상자의 경우 펼쳐놓으면 육면체는 한 장의 종이가 된다. 선물을 담는 포장용으로서의 종이상자가 펼쳐지는 순간, 펼쳐진 그림처럼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 상자의 모양이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데 놀라게 된다. 펼쳐놓는다는 것은 숨겨진 사실을 온전히 드러내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 물건일 경우 그 안에 담긴 것이 그대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마음속의 상자일 경우에도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안에 담긴 비밀스러운 무엇이 밖으로 드러난다
. 꿈꾸는 상자_32x41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그는 이처럼 선물상자가 열리고 또 해체되는 상태를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상자 뚜껑이 열리는 모양에서부터 반쯤 또는 완전히 해체되는 상태의 모양을 기반으로 하여 형태적인 왜곡 또는 변형과 같은 조형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자라는 하나의 소재를 기반으로 하는데도 단조롭지 않고 다양하다. 일테면 조형의 변주라는 형식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작품에 따라 여러 개의 상자가 겹쳐지면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구성적인 방식을 통해 상자라는 단일 소재가 지닌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다. 상자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하여 보다 자유로운 조형적인 상상의 세계를 전개함으로써 풍부한 내용 및 시각적인 이미지를 얻고자 한다. 최근 작업에서는 어느 면에서 이미 상자라는 특정 소재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조형공간을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미 그 스스로 상자조차도 의식하지 않은 채 순수한 조형의 변주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이다. 펼친그림과 같은 형식의 그의 작업은 사뭇 화려하다. 육면체의 각 면마다 서로 다른 원색적인 색채로 치장함으로써 마치 꽃밭을 연상시킬 만큼 현란하고 아름답다. 그러기에 화려한 색채의 배열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인 즐거움이 크다. 감정의 비등을 부추기는 원색적인 색채이미지의 조합은 실제의 상자 모양과는 상관없는 조형적인 기교임은 물론이다. 단지 선물상자의 형태만을 가져왔을 뿐, 색채배열이나 구성은 회화적인 이미지를 적극 수용한 결과이다.
꿈꾸는 상자_72x121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또한 상자의 면마다 다른 색채 및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시각적인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가령 연속무늬를 자주 이용하는데 옷감 소재, 즉 천에 그려진 연속무늬를 직접 부착하는 등 콜라지기법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기에 짐짓 화려하다. 회화적인 이미지와 상품화된 디자인적인 이미지를 혼용하여,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육면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유로운 왜곡 및 변형을 통해 기하학적인 차가움을 극복한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꽃이나 나비, 나무는 자연을 상징한다. 상자가 인위적인 조형미인데 반해 꽃, 나비, 나무는 자연미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공미와 자연미를 대비 및 조화시키는 조형어법은 시각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용과도 연관성이 있다. 꽃과 나비, 나무는 생명의 환희를 은유하고 상징하는 까닭이다. 상자가 무생물의 이미지라면 꽃, 나비, 나무는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생명을 의미한다. 이들 생명이 있는 존재를 도입함으로써 화면은 돌연 생기발랄한 공간이 된다. 이는 상자를 원색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 것과도 상통한다.
꿈꾸는 상자_21x32.5cm_miwed media on canvas_2012
원색이나 꽃은 생명의 환희를 상징한다. 그의 작품 전체가 짐짓 화려한 원색의 물결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원색을 구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즉, 원색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 자신의 자연스러운 생활감정의 발로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선물을 연상시키는, 상자를 매개로 하는 독특한 발상의 작업을 통해 내면을 표출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꿈과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감정이 생명의 환희를 암시하는 원색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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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1010-유진영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