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원미술관 가을기획展

 

投影: 시간의 풍경

 

구교수 | 김동기 | 문지연 | 이경임 | 이취원 | 윤홍선 | 최환익

 

 

 

한원미술관

 

2012. 9. 14(금) ▶ 2012. 10. 24(수)

Opening 2012. 9. 14(금) pm 4:00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449-12 한원미술관 | 02-588-5642

 

www.미술관.org

 

 

타자(他者)와의 공존과 만남에 관한 서설(序說):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박옥생,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1. 시간의 탐색,  그 순수시간을 찾아서

시간은 미술의 조형적 해석과 표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순간과 영원과 같은 시간의 존재론적 가치와 시간이 부유하는 가시적, 관념적 공간에 관한 이해는 미술 스토리텔링의 지점이기도 하다. 시간은 순환적 시간(cyclical time), 선형적 시간(linear time), 동시적 시간(simultaneous time)으로 이해될 수 있다. 순환적 시간은 동양적인 사고에서 탄생한 시간으로서 자연이 순환하는 듯 시간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철학적, 종교적 개념이다.

선형적 시간은 시계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듯 순차적이고 과학적인 시간을 말한다. 동시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고 뒤섞이는 꿈, 컴퓨터상의 가상현실, 환상, 문학과 같은 장치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해석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개념이다. 사실, 순환적 시간과 동시적 시간은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관념으로서, 풍부한 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을 열어 준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그의 시뮬라시옹 저서에서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문학에 사용된 우화(偶話)인 ‘제국의 지도’를 예로 들며 실재와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듯이, 현대문화와 중첩되고 공존하는 시간, 초월적 시간에 관해 보르헤스의 문학은 의미 있는 상상력과 언어적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이 현대미술의 시간관념을 적절하게 이해시키고 있는 것은, 그가 그려내고 있는 시간들이 동시적 공존, 끊임없이 갈라지는 시간, 차이를 생성하며 무한히 반복 한다는 특징 때문이다.

이러한 보르헤스의 문학과 순환적이고 동시적인 시간은 현대미술의 많은 부분에서 간취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며 빚어내는 시간의 다층적 겹침과 해석은 시간이 갖는 그 자체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본성을 탐색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즉, 시간의 원형 그 순수시간을 찾기 위한 모색인 것이다.

이러한 순환적이고 원형적인 시간에 관한 해석은 니체의 “영원회귀”, 들뢰즈가 영화를 분석하면서 만들어낸 “순수시간”과 같은 언어로 정리될 수 있다. 삶이 존재하는 현재와 무한히 팽창하고 축적하는 과거, 현재와 과거가 잠재적으로 작동하는 미래에 관한 그 모든 유한한 생명으로서의 인간들은 순수시간을 회복하고 영원히 반복되고 회귀될 수 밖에 없는 존재론적인 위치에 처해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시간의 탐색은 곧 인간 삶을 고민하고 탐색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2012 한원미술관 가을기획전 投影: 시간의 풍경은 7인의 작가가 시간을 매개로 하여 삶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현재와 삶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21세기 서울과 작가라는 관계 항들에게서 빚어지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과 의미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김동기 변신하는 집 #33_32x52cm_종이에 실크스크린, 컷팅_2012

 

 

2. 우주에 관한 하나의 이미지 또는 모든 삶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 7인의 작가론

김동기,구교수, 문지연, 이경임, 이취원, 윤홍선, 최환익은 회화, 공예, 설치, 미디어, 사진에 이르는 각기 다양한 장르를 통해 시간풍경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도시환경, 자연, 추억, 시간, 기억처럼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작품 곳곳에 작동하는 의미들은 시간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모색과 탐구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형태의 표면에서부터 심연에 이르기까지 깊다.  

 

김동기는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의 환경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자르고 오려 붙인 오브제들의 집합체로서 구축된 집들은 어린 시절 옹기종기 보여 붙은 주택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오래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그 과거의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유년기의 추억,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사실, 김동기의 근작에서 보여주는 집 시리즈들은 무한증식하고 구축하는 구조물들을 통해 기억의 층위, 시간의 집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공존 속에서 팽창, 수축하는 기억의 연속적이고 동시적인 운동을 가시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시간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며 또한 우주에 존재하는 시간의 근원적인 속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근원적 본질 속에 내재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들을 반추하고 있다.

 

 

구교수 DOG연작(시간죽이기2010-3)_97x145.5cm_Oil on Canvas_2010

김동기_전망 좋은집_13.5x14x37cm_나무에 연필_2012

 

 

구교수 DOG연작(시간죽이기2012-5)_100x100cm_Oil on Panel_2012

 

 

구교수는 다양한 "DOG" 시리즈들을 선보이고 있다. 색들이 중첩되고 흔들리는 두꺼운 물감들의 집합은 컴퓨터화면과 같이 복합적이고 강화된 가상의 색의 변주를 선사한다. 색이 침투한 화면 사이에 빛이 산란하고 산란한 빛은 음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자리와 지나간 흔적에는 깊고 두꺼운 색의 대비가 이루어진다. 그 대비는 너무도 선명해서 마치 강한 빛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무료한 한낮의 풍경과도 닮아 있다. 이는 곧, 강아지, 동물의 시선에 맞닿은 시간의 흐름, 풍경인 것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이 자신과 세계의 완성을 경험하는 강화된 순간은 완전한 정오의 시간이다. 이 위대한 정오는 인간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면서 세계가 가장 밝아지는 순간이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강아지의 일상의 삶을 그려내면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고 말한다. 니체가 말하는 정오의 시간에 비로소 밝아지는 세계처럼, 작가의 작품세계 또한 빛나고 밝은 강아지의 세계를 통해 작가자신이 경험하는 삶과 실존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깨닫는 여정인 것이다.

 

 

문지연 2 kairos_117x80cm_acrylic on canvas LED_2011

 

 

문지연은 하나의 화면 안에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작가는 라이트 박스 속에 도시의 쓸쓸한 풍경을 그려내지만 불 켜진 풍경은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 인간의 꿈을 담아내고 있다. 불 켜짐과 꺼짐, 낮과 밤의 신화를 통해 있음과 없음, 죽음 속에 존재하는 생명으로 향하는 희망과 꿈들이 두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잉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시가 담고 있는 현재의 부정성과 그 현재 속에 표출된 부정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거의 시간, 자연을 향한 향수와 오지 않은 미래의 꿈을 향한 긍정성이 드러난다.

 

 

문지연_dreaming dream_90x65cm_acrylic on canvasLED_2010

이경임_1000x1000_캔버스아크릴.칠보

 

 

이경임_Dreaming Village-600X600_캔버스에 아크릴, 칠보_2012

 

 

이경임은 어릴 적 서울의 풍경들을 그림을 그리고 칠보를 녹여 붙임으로써 만들어낸다. 그 풍경에는 노란 불이 켜진 집들이 집합되고 검고 푸른 하늘과 둥근 달이 있다. 마치 동화같이 설렘과 동심이 살아 숨 쉰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드러난다. 유리를 녹여 달과 별을 만든 서울의 풍경은 도시의 현실적 고민보다는 도시의 꿈을 담고 있다. 찬란히 빛나는 보석을 대할 때 눈부신 세계가 열리듯, 이경임의 작품에서 유년기의 추억이 살아있는 그리운 우리 동네의 환상과 신화가 새롭게 열린다. 어릴 적 추억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다고 누군가 말하듯이, 과거의 시간은 지금의 시간보다 더 아름답고 증폭되어 실재를 넘어서는 판타지로 다가온다. 작가는 오래두고 변치 않는 영원한 보석처럼 과거의 시간을 응고시키고 있다. 작가의 보석재료의 회화적 응용은 회화에서 느낄 수 없는 보석의 무게감과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비물질의 기억과 과거가 물질의 칠보와 만남으로써 가시화, 형상화되고 지나간 시간성을 미래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되돌리고 있다. 이러한 칠보의 사용은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하고 있는 ‘크리스탈’과 같이 서로를 반복하고 반사하면서 비연대기적인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상호 침투한다는 것과 닮아 있다. 시간에 관한 내용과 모색은 동심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관한 극대화된 표현으로서의 작가의 재료적 모색이 논리적으로 만난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이취원 Flow_14, 72.7x116.8x11cm_Mixed Media_2012

 

 

이취원은 보이지 않고 변화하는 시간의 형상을 실재화하고 육화(肉化)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설치와 영상, 사진, 평면을 넘다 들며 시간의 본질적 모습을 탐구하는 작업들은 직선적, 순환적, 동시적인 시간의 다양한 의미들을 표현한다. 오브제를 붙인 화면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시간의 실재이며 변화의 찰나, 순간이다. 그 오브제를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순환적인 시간이며 “영원회귀”에 관한 가시적 표출이다. 작가는 시간의 실재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범 우주적인 하나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오브제들을 무작위로 붙이고 연출하는 가운데에 끊임없이 자기 분열하는 시간의 속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로써 유한한 생명으로서의 인간 삶을 성찰하게 되고, 빛과 그림자로 드러내는 세계의 본질적인 표정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취원_Flow_13_116x89.1x11cm_Mixed Media_2012

윤홍선_community_Garden_애니메이션_2012

 

 

윤홍선_Swimming_Pool Animation, looping_2011

 

 

윤홍선은 영상작업을 통해 군중의 불안을 보여준다. 그 불안에 속해있는 현재 도시인의 공포를 구체적인 수영장,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의 풍경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불안의 풍경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상의 탈 역사적인 시간으로 탐색되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연대기적인 연속성을 무한 반복함으로써 직선적 시간의 파편화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작품들은 섬세하게 직접 그려낸 일상의 장면들에 움직임을 넣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다. 손 그림이 주는 아날로그의 맛과 움직임이 더해진 작품들은 만화영화와 같이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끄집어내고 있다. 군중과 군중사이에서 존재하는 낯선 존재에로의 불안과 공포는 도시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이러한 불안들은 반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미디어아트에서 내용의 기술적 연출에서 빚어지는 시간성이 윤홍선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간취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반복적이고 동시적인 시간의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이론들이 미디어아트에서 완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환익_Seoul Type-II #1 c-print_2012

 

 

최환익은 한강 주변의 지나 온 시간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한반도의 기적을 이루어 낸 한강의 이야기들은 강변의 아파트와 강물이 맟 닿은 계단 그 강을 바라보는 한 그루 나무로 가시화된다. 오래전 한강의 모습과 현재의 한강은 동일한 물결임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시간의 강물인 것이다. 그것은 강에 반영된 키가 높은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오랜 변화를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에 멈춰진 시선은 곧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멈춰선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존재론적인 자아에게 멈춰진 것이다. 곧 작가는 외부세계의 시간을 담아냄으로써, 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초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에 관한 고민이며 관조인 것이다. 화면의 사물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시간의 흔적들이며 변화하는 순간의 이미지들이고 또한 작가의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의 긴 여정으로서의 사유의 궤적인 것이다.  

 

 

최환익_Seoul Type I #3_80x100cm_pigment ink_2012

 

 

3. 만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러한 7인의 작가가 말하는 시간의 풍경들은 외부를 통한 자아의 내밀한 사유와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들의 말하는 도시, 환경 그 속에서의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외로움, 희망들은 인간 자체가 갖는 유한성에서 빚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유한성에서 우리는 영원회귀를 꿈꾸며, 순수시간을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니체는 영원회귀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주체 즉, 타자와의 무한한 만남을 가능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나와 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와 같은 동일한 생명으로 영원히 되돌아오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하여 시간을 중심에 두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무수히 존재하는 나를 둘러싼 타자를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한 것임을 사유하기를 기대한다. 7인의 작품에서 말해주는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의 갈등과 공존처럼, 시간의 흐름과 의미는 나의 변화와 나와 너의 또 다른 만남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가을에 만나는 사유와 관조로서의 시간 속에서 유한한 인간 삶과  또 다른 너와의 만남에 관하여 성찰하기를 기대해 본다.(2012.9)

 

<<참고문헌>>

김재희,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哲學硏究』vol. 74. 2006

강용수, 「니체의 시간에 대한 해석」『인문과학연구』vol.19, 2008

진 로버트슨, 『테마 현대미술 노트』, 두성 북스, 2011

 
 

 

 
 

vol.201209014-한원미술관 가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