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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야 신웅순展
한국한글서예정예작가 초대개인전
신웅순_메꽃-시&서_33x50cm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012. 8. 29(수) ▶ 2012. 9. 4(화) Opening 2012. 8. 29(수) pm 5:00 서울 종로구 관훈동 21번지 인사아트프라자 5층 | T.02-736-6346
신웅순_무궁화회초리-시,서_85x23cm
끝없는 한글 사랑의 시작
1. 되돌아보며 1973년 7월 5일 월간서예사 발행 『월간서예』창간호 맨 뒷장에 이렇게 나의 결심이 써 있었다. 40년 묵은 조금은 빛 바랜 파란 볼펜 글씨였다.
신웅순_시- 시,서_50x33cm
‘1973년 11월 8일 愛 이 책을 사서 얼마나 기뻤는가는 앞으로 내 글씨의 수준으로 평가하리라. 雄淳
신웅순_시-시&서, 찔레꽃_33x68cm
그 동안 학문을 하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도발적인 문구였다. 그리고는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75년 월간 서예 주최 전국휘호대회에서 ‘셔한연의’로 첫입선을 했다. ’86년도에는 조지훈의 ‘승무’로 전국서예대전에서 특선을 했다. 선생이 없어 일중 선생의 『한글서예』를 스승삼아 공부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만 있었지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로 시 대신 서예를 시작했으나 선친께서 돌아가시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 ‧ 서를 같이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그 때는 서로 다른 예술로 생각했던 것이다. 90년대 중반이었던가 싶다. 유정 선생을 만나면서 다시 한글 서예를 시작했다. 스승으로 모신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생각해보니 서예를 시작한지는 40여년이 되었으나 서예를 제대로 한 것은 30년 남짓 밖에 안되었다. 반은 독학으로 반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으니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신웅순_양귀비꽃-시, 서_33x93cm
2. 한글 사랑의 시작 한글은 천지인 삼재를 기본으로 발성기관을 본 떠 만든 위대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이조 500년은 한문 때문에 아파해야 했고 일제 때는 일본 가나 때문에 숨죽여야했고 지금은 영어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다.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임에도 한글은 이렇게 타언어에 밀려가며 채여가며 모진 세월들을 견뎌내고 있다. 선인들은 한문에서 한글을 빚어 궁체와 판서체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런 한글 서예가 얼마나 아름다운 글씨인가를 나는 보여주고 싶었다. 한글이 한문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는 한글이다. 나만의 서체, 석야체를 쓰고 싶다. 단아하고 아정한 나만의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쓰고 싶다. 그것이 어떻게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꿈꾸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 세계가 무엇이고 어떨지 모르나 하얀 백지에 나의 소박한 꿈을 그려내고 싶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저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집단 무의식 같은,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민족적인 그러면서 누구나 다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세계가 아닐까. 순자의 권학편에는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될 일,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건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하지 않았는가. 첫개인전이다. 언제나 시간에 쫒기어 살았는데 이번 방학은 짧지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했다.
신웅순_진이와 화담-2012대한민국미술대전서예초대작가전_200x70cm
3. 언제나 꿈꾸는 사람 나의 시조 사랑은 좀 유별난 편이다. 시조에 관련된 것이라면 시조 학문이며, 시조 창작이며, 시조창이며 그리고 시조 역사이며 시조 서예에 이르기까지 무모하다시피 무엇이든지 해왔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듯 시조에 대해서만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랑해왔다. 이번 전시회도 시조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시조 「내 사랑은」 50편을 궁체 흘림으로 두루마리 형식으로 썼다. 그리고 별도로 「내 사랑은 50」을 판서체로 썼다. 「진이와 화담」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초대작가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진이와 화담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정자 궁체와 석야체로 꾸몄다. 짧은 시도 몇 편 구성했다. 궁체 흘림으로 「당신」, 궁체 정자로 「무궁화 회초리」,석야체로 「메꽃」,「양귀비꽃」,「찔레꽃」을 썼다. 그리고 석야체로 「언제나 좋은 생각」, 궁체 정자와 석야체로 「침묵하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을 썼다. 이번 첫전시회는 궁체, 판서체 석야체로 구성한 나의 ‘시&서’ 전인 셈이다. 묵상 시간이 길수록 좋은 작품은 나오게 되어있다. 무더웠던 여름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잠시나마 한글서예에 몰입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정년 퇴임을 준비해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전시회가 퇴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시로 나의 서예로 나를 만나러 갈 때가 된 것 같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숨겨둔 고귀한 선물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닐까.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꿈꾸는 소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지개만 바라보며 떠나는, 꿈 많은 순수한 소년이 되고 싶다. 스름 매미가 멀리서 운다. 이제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파도같이 덮쳐왔던 더위도 이젠 바위섬에서 혼자 부서지고 있다. 그 동안 달구어졌던 내 영혼을 오늘은 산바람이 내려와 시원하게 적셔주고 간다. 강호제현의 질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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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야 신웅순
1951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85년 시조문학 시조로 천료, 1995년 창조문학에 평론으로 천료했다. 학술 논문 50여편, 학술서 『한국시조창작원리론 』외 15권을 비롯 시조집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외, 평론집 ,동화집, 수상록 등 10여권의 창작집이 있다. 평론으로 한국창조문학대상(2000)을 받았으며 현재 가곡 무형문화재 전수자, 대한민국미술협회 서예 초대작가이다.『시조예술』주간을 맡고 있다
수상 | 1975 월간 서예 주최 전국휘호대회 행서입선 | 1986 한글서예진흥장학회 주최 전국서예대전 특선
1997 오늘의 문학 창간 20주년 기념 개인 시‧서‧도 서예 전시(삼성갤러리) | 2001 충청서단전 | 2003 한글서예 다양성 모색을 위한 ‘2003 한글서예대축제’(월간서예문화) | 2007.8 제5,6회 가톨릭 서예전 | 2008 한국미술협회 대전광역시지회전 | 2008 세종한글서예대전 초대작가전 | 2009 유정한글서예전 | 2011 세계 전주 비엔날레 축전 시인으로 참가 | 2011 한글서예대축제(월간서예문화) | 2012 한글서예멋전(월간 서예문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전
현재 |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 세종한글서예대전초대작가 | 대한민국한글서예대전초대작가(월간서예) | 한국서예술대전초대작가 | 대전광역시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 한국미술협회회원 | 시인 ‧ 평론가 ‧ 서예가, 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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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0829-신웅순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