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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남 조각 연장展
‘달’을 품은 조각”
장은선 갤러리
2012. 8. 22(수) ▶ 9. 15(토) Opening 2012. 8. 22. pm 4:00-6:00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 | T. 02-730-3533
권창남 조각 연장展
권창남은 바로 그곳 상주 함창 사람이다. ‘부자도 많다.’고 하였지만 7남 2녀(권창남은 막내이다.)의 대가족의 살림살이는 가장 사랑 받았을 늦둥이 막내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녹록치 않은 생활이었음은 물론이다. 대학에의 진학 자체가 무리로 보였던 가세(家勢)에도 그는 조각의 길을 택하였고, 부모님과 다섯의 형을 잃기도 하였지만, 50줄에 접어드는 지금은 두 딸을 거느린 가장으로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고향’, ‘어머니’, ‘아버지’, ‘그리움’, 모두 떠올리기만 하여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단어들이다. 권창남의 작업에는 그러한 먹먹함으로 고향 함창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 들어있다. ‘상주 함창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는 오석 특유의 묵색(墨色)의 변주(變奏)가 고즈넉이 번지는 간결하게 추상화된 연꽃 모습으로, ‘수련을 바라보다’(2005년)에 녹여지고, 두고 온 고향의 집과 산천은 ‘꿈꾸는 집’(2008년)으로 형상화 되고 고달픈 도시생활과의 경계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고향으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그 곳에 가면’(2011년) 무엇이 그를 반겨 줄까를 상상한다. 이제는 가슴에 묻어둔 고향과 부모님,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드러낼 수 없는 사무침이다. 그 사무침이 사랑방에 놓였던 서안, 안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반닫이 등을 통하여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고,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달 항아리의 모습을 빌어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 서안은 윗사람으로서, 가장으로써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곧, 아버지나 형들의 모습일 것이고, 반닫이는 어머니의 모든 추억이 서려있는 보물창고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권창남의 작업 중심재료는 저제나 이제나 돌(石)이다. 그가 그토록 다루기 힘든 돌을 고집하는 것은 돌이 지니고 있는 물성 자체에 천착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성격을 규명해 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돌에 흠집(?)을 내거나 형상을 구체화시킴으로써 단지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두려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작업계획에 따라 채석당시의 쪼개진 면을 그대로 살리거나 정을 들이대고, 끊임없이 연마하여 각기의 돌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과 무늬를 속살까지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과정은 구도자의 수행과정과도 같고, 그 결과물에는 구석구석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거대한 덩어리의 통 돌을 갈고 다듬던 예전의 작업방식과는 달리, 이번의 ‘향-달을 품다’에서는 판돌(板石)이 이용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돌들이 함께 어울러 지고 있기까지 하다. 판석들을 정교하게 짜 맞추고 장석부분이나 고리, 자물통 부분에 성격이 다른 돌들을 붙인 다음 정교하게 다듬는 다거나, 문양 하나하나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고 다루어 나가고, 게다가 보이지 않는 부분(보기 어려운 부분)에 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는 그의 작업과정은 장인정신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장인정신으로 권창남은 돌과 하나가 되어간다.
‘전에는 내가 돌을 다듬었지만 전시를 거듭할수록 돌이 나를 다듬어 간다.’는 작가 자신의 변처럼, 이제는 돌의 성격을 규명해 낼 뿐만이 아니라 그의 성격조차도 돌과 하나가 된 듯하다.
그의 작업은 싯다르타의 일갈과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늘 그렇듯 권창남의 작업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함께 오롯이 그만의 몫이다.
* ‘늘재’는 이중환이 ‘가히 복지(福地)이다’라 한 청화산에 있는 고개로 옛적에는 경북상주에서 충북괴산으로 넘어가서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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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0822-권창남 조각 연장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