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만 展

 

디그니티의 현재적 의미

 

soldiers_210x1080cm_2012

 

 

인사아트센터

 

2012. 6. 20(수) ▶ 2012. 6. 25(월)

서울특별시 종로구관훈동 188 | T.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general Ⅰ_167X195cm_나무, 홀로그램천, 아크릴물감_2012

 

 

디그니티의 현재적 의미

 

초상화와 역사를 연계시켜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저 악명 높은 헤겔의 ‘역사철학(Reason in History)’의 참기 힘든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중국 및 몽고제국의 비판이다. 헤겔이 설명하는 아시아 비판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피할 길이 없다. 아시아의 역사는 역사 그 내부에서 주체(개체)가 자신의 권리에 이르지 못하고 대립을 자기 속에 잉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은 충효에 기반을 둔 부권적 권위에 스스로 종속되고 스스로 굴복시키려는 수동적 결합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른바 그 유명한 ‘산문적 제국(prosaic empire)’이나 ‘지속(持續)의 제국(Ein Reich der Dauer)’라는 용어는 굉장히 수치스럽고 모멸적인 말뜻이 이면에 깔려있다. 자유의식의 결여, 진보를 모르는 힘의 현상적 유지, 개인이라는 의미의 부재, 비역사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식의 결여체인 아시아에서 비롯된 초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어진도사도감(御眞圖寫圖鑑)이라는 관청에 복속된 화원들이 왕을 그렸으며, 때때로 화원들이 왕조에 공헌한 사대부 공신들을 그렸을 따름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초상화의 대상을 일반 서민들에까지 확산시키지 못한 채로 개화나 근대나 서구화를 맞이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초상화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이른바 그 유명한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이라는 말이 그 정신일 것이며 이러한 정신의 형식을 가리켜 ‘전신사조(傳神寫照)’라고 한다.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는다면 이 그림은 다른 사람 그림이지 그리려는 사람의 초상화가 아닐 터’라는 이 문장 속에서 우리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의 눈물겨운 정성과 그윽한 도리를 고찰할 수 있다. 일호불사를 불허하는 대상이라면 얼마나 극한의 디그니티를 지녔던 대상이었겠는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전신사조라는 이념과, 일호불사의 정신으로 기나긴 세월을 이어왔을 뿐 서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한 이후부터 아시아의 초상은 별반 새로운 창신(創新)을 향한 출구를 개척하지 못했다.

 

 

general Ⅱ_160X180cm_나무, 홀로그램천, 아크릴물감_2011

 

 

위에서 설명한 해제(解題)는 박금만 작가가 근 15년 추구했던 작품세계의 이면에 자리잡는 원천적 배경이 된다. 작가는 진정 전신사조라는 형식의 수용과 내면적 체화를 위해 지대한 공을 들였다. 그런데 전신사조라는 형식은 애당초 왕가의 일원이나 공력 높은 사대부의 지극한 디그니티가 아니고서는 성립하지 않는 수직적 위계의 미적 형식이다. 그림을 그리는 나와 그려지는 타인의 대상이 수평적이고서야 도대체 의미성립이 불가능한 형식이다. 그런데 작가가 이 불가능한 전신사조의 디그니티를 가장 평범하고 진부한 일반 대상에 수여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벌써 90년대 말로 소급된다.

이 시기는 IMF의 국가적 동란, 정권교체, 세기말적 불안, 포스트모더니즘의 무비판적 국내 수용의 분위기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착종(錯綜)되어 있었다. 국가적 동란의 이면에 고위층의 부패가 생각나며 정권교체는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준다. 첨단과 경쟁을 지향하는 새로운 세기는 자유의 웅대한 의지보다는 살아남기라는 전략적 선택을 강조한다. 공자의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라는 문구처럼 모더니즘이 채 정의되고 탐구되기도 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행병이 창궐했다. 한마디로 모더니즘도 모르거늘 어찌 그 이후가 있겠는가? 그러나 작가는 엘리티즘의 상실 분위기를 반겨 마지않았다. 작가는 이 어지러운 일상과 시대분위기 속에서 전신사조의 기본 요건인 디그니티를 일반적이며 이름없는 대상들에게 수여하기로 했다. 사실 작가는 사회 상층부에 대한 기대의 상실, 어지러운 국제적 관계, 희망을 돈에 걸어야 하는 세태, 사회 양분화 등으로 치닫는 세기말적 증상 속에서 오로지 진정한 디그니티는 말없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이들이야말로 세계의 가장 중요한 수퍼인프라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첫째, 표면적으로 자유의 증식은 이루어진 것 같다. 그것이 자의적인 것이었건 타의적인 것이었건 관계없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천의 차이는 존재하고 고로(苦勞)의 인생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셋째,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한 사람들에게 전신사조의 정신을 수여하자.”라고. 작가는 이태원에서 사생자로 태어나 춤추는 비보이,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동숭동의 무명배우들, 마땅한 스폰서 없는 레슬러, 동창회 모임의 늙다리 필부필남을 가리켜 우리의 가장 귀중한 디그니티의 현현으로 파악한 것이다.

 

 

general Ⅲ_169X186cm_나무, 홀로그램천, 아크릴물감_2011

 

 

박금만 작가의 2012년도 전시는 한국근현대사의 영욕을 이치관념적 다이커터미(dichotomy)로 표현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천차만별이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세상을 무한히 긍정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판적 이성을 무기 삼아 세상을 지속적으로 고쳐 나아가려는 태도일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나를 버리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평무사(公平無私), 즉 나의 이기심을 없애야 가능하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나 나의 삶에 유리한 방향을 포기했을 때 가능하다. 후자의 삶은 자기 삶의 노선의 방향에 놓인 거스름을 철저히 배격하고 개정하면서 살아가는 태도이다. 우리는 대부분 후자의 삶을 택한다. 그런데 작가는 전자의 삶에 대한 시론(試論)으로써 이번 전시의 주제를 삼았다.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다섯의 군장성들을 다룬 작품들과 전장에서 사라진 무명의 일반 사병들의 평면설치 두 종류가 이번 전시의 다이커터미를 이룬다. 전자는 극도의 존귀한 디그니티의 아우라를 보유한 전신사조 형식의 회화작품 일련이며, 후자는 순식간에 프린트된 흑백의 일시적 사병들이다. 살아남은 존엄과 살아남지 못한 세상에서의 일시적 체류가 긴박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굉장한 정성을 담아낸 군장성들의 디그니티는 일률적인 청룡, 백호, 맹호의 광배(光背)에서 빛나는 천의 현란함에 의해 그 깊이가 중화된다. 그런가 하면 이름 없이 살다간 사병들은 스티로폼 판넬 위에 프린트 용지를 접합해서 그 가벼움을 배가 시켰다. 그런데 이 가벼움은 수많은 사병들의 사방 병렬식 배치로 인해 오히려 장엄해지는 느낌을 자아낸다. 어째서 작가는 대비되는 속성을 하나에 밀집시키는 것인가?

 

 

general Ⅳ_162.5X180cm_나무, 홀로그램천, 아크릴물감_2010

 

 

진정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가치평가를 거부한다. 이것은 높은 군장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우국충정의 오마주도 아니다. 말없는 사병들에 대한 애잔한 센티멘트도 아니다. 그들 두 집단은 우리 현재를 이루고 있는 두 근원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하나는 현재의 문명을 이루고 있는 코스모스이다. 이 코스모스는 매우 이상적이지만 쉽게 경직되고 만다. 또 하나는 역동적인 카오스의 메타포다. 이 역동적인 카오스는 문명의 경직을 막는 코스모스의 청년기적 추억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장성의 근엄한 제스처와 병사의 애잔한 눈빛은 우리 역사를 이끌고 있는 두 가지 추동체의 상징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렇듯 작가는 무명 일반인들의 삶에서, 우리 역사의 현상황에 대한 암시로 작품의 진폭을 넓혀왔다. 다음에는 인간사를 주술과 신화의 세계를 통해 새롭게 조망하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술과 신화, 여신과 신이 등장한다 해도 작가의 세계는 인간의 디그니티, 즉 존엄과 품위의 물음에 대한 영원한 송가일 것이다.

                                                     이진명, 큐레이터

 

 

general Ⅴ_157X200cm_나무, 홀로그램천, 아크릴물감_2010

 

 
 

박근만

 

이메일 | guem@hanmail.net | Blog | blog.daum.net/guem99

 

 
 

vol.20120620-박근만展